손준호-홍현석 있고, 주민규 없었다... 클린스만이 보낸 메시지
[이준목 기자]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클린스만호'의 진정한 1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위르겐 클린스만 축구대표팀 감독은 6월 5일 오전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월 A매치 평가전 2연전(엘살바도르-페루)에 나설 대표팀 명단을 발표했다.
클린스만호는 지난 3월 콜롬비아·우루과이전을 통하여 데뷔전을 치렀다. 다만 3월 평가전의 경우, 감독 선임 나흘 만에 대표팀 명단을 꾸려야 했기 때문에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선수들을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부족했다. 때문에 전임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이끌었던 2022 카타르 월드컵 멤버들이 고스란히 유지됐다.
이후 클린스만 감독은 국내와 유럽을 돌며 직접 선수 파악에 나섰다. 유럽 현지에 머무는 코치진도 선수들의 경기력을 체크했고,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김민재-오현규 등 해외파 선수들을 일일이 방문하여 면담을 갖고 격려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K리그 경기들을 꾸준히 체크하며 대표팀에 발탁할 만한 인재들을 점검했다.
이번 클린스만호는 공식적으로는 2기지만, 지난 3개월간 새로운 코칭스태프 체제에서 파악한 정보들을 토대로 클린스만 감독이 직접 선발한 첫 대표팀이라는 데서 사실상의 1기나 마찬가지다.
▲ 한국 축구 국가대표 손준호 |
ⓒ KFA |
일단 클린스만 감독은 전체적인 틀에서는 이번에도 3월에 이어 카타르월드컵 대표팀 출신 선수들을 대거 중용했다. 손흥민(토트넘)-이강인(마요르카) 등 주요 해외파들은 예상대로 변함없이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기존 멤버들의 기량에 합격점을 준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편으로는 몇 가지 예상을 뛰어넘는 파격적인 선택과 함께, 클린스만 감독만의 차별화된 색깔과 리더십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도 나타난다. 가장 놀라운 점은 역시 중국에 있는 손준호(산둥 타이산)가 명단에 포함된 것.
손준호는 카타르월드컵 국가대표로 활약했고 지난 3월 클린스만호 1기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베테랑 선수다. 하지만 중국 리그에서 활약하다가 지난달부터 중국 랴오닝성 공안에 붙잡혀 3주가 넘도록 구금 상태에서 조사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중국 정부는 그가 '비국가공작인원 수뢰죄(뇌물죄)'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는 입장이다.
클린스만 감독과 축구협회가 밝힌 바에 따르면 손준호의 이번 대표팀 발탁은 그의 석방 가능성과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장기간 구금 상태에 있던 손준호가 석방된다고 해도 당장 대표팀에서 뛸 만한 경기력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표팀 입장에서 보면 평가전을 앞두고 굳이 귀중한 엔트리 하나를 일부러 낭비하는 꼴이 될수 있다.
하지만 클린스만호는 이를 모두 감수하고 손준호를 과감히 대표팀에 발탁함으로 확실한 '메시지'를 던졌다. 첫째는 한국축구계가 손준호의 결백을 확신하고 그를 여전히 대표팀의 중요한 일원으로 여기고 있다는 '응원'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보가 철저히 제한된 타국에서 어려운 처지에 몰려있는 선수의 이슈를 대내외적으로 '공론화'시킴으로써 손준호의 구명을 돕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속적으로 손준호를 응원하고 지원하고 있다. 그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알 수 없는 상태다. 하지만 지난 3월 콜롬비아, 우루과이를 상대로 그가 보여줬던 경기력은 훌륭했다. 손준호를 위해 기도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우리가 할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주전들의 공백과 함께 '새로운 얼굴'들의 발탁도 눈에 띈다.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김민재(나폴리), 부상을 당한 김영권(울산)과 정우영(알사드) 등 붙박이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리던 중앙 수비수 듀오와 수비형 미드필더가 모두 이탈했다.
대신 홍현석(KAA 헨트)과 안현범(제주), 박용우(울산) 등이 태극마크 첫 발탁의 영광을 누렸다. 특히 '제2의 이재성'으로 꼽히는 중앙 미드필더 홍현석은 이번 시즌 벨기에 리그와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에서 9골 8도움의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며 클린스만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안현범과 박용우도 K리그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로, 국내파라도 리그에서 활약하면 얼마든지 대표팀에 발탁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친선경기 명단 발표 나선 클린스만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6월 페루, 엘살바도르와의 평가전에 나설 선수 명단을 발표하고 있다. 클린스만호는 16일 부산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페루와, 20일 대전월드컵경기장에서 엘살바도르와 평가전에 나선다. |
ⓒ 연합뉴스 |
연령대별 대표팀과의 선수 조율도 중요한 변수였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은 올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다. 클린스만 감독은 홍현석을 A팀으로 부르는 대신, 정우영(프라이부르크)을 황선홍호에게 양보한 것도 조율의 일환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연령대별 대표팀과의 대화와 협력을 통하여 최선의 안배를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변화가 없었던 포지션은 골키퍼(김승규, 조현우, 송범근)와 공격수(황의조, 조규성, 오현규)였다. 골키퍼의 경우 특수 포지션이고 현재 선수들의 기량도 안정적이라는 점에서 당연한 선택이었지만, 공격수는 기존 주전급인 황의조와 조규성이 K리그와 소속팀에서도 좋은 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데도 여전히 자리를 지켰다는 것은 다소 반응이 엇갈린다. 황의조는 올시즌 FC서울에서 15경기나 출전했지만 2골에 그치고 있으며, 조규성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장기간 결장하며 7경기 2골에 머물렀다.
다만 올해초 유럽무대로 이적한 오현규가 시즌 중반부터 합류했음에도 셀틱에서 첫 시즌부터 우승을 차지하며 20경기 7골로 연착륙한 것은 호재다. 손흥민, 황희찬, 나상호 등은 소속팀에서 종종 최전방 스트라이커도 소화할 수 있는 선수들이다. 올시즌 물오른 폼을 보여준 공격형 미드필더 이강인을 선발 혹은 어떤 포지션에 활용하느냐도 벤투호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줄 변수로 꼽힌다.
반면 K리그 득점선두를 달리고 있던 주민규(15경기 8골)는 또다시 대표팀에 낙마했다. 슈틸리케와 벤투 감독 시절, K리그에서의 맹활약에도 번번이 외면받았던 주민규는 연령대별 대표팀을 포함한 성인대표팀 A매치 출전 경력이 '0'이다. 클린스만 감독 체제로 접어들면서 한번쯤은 기회를 받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이번에도 'K리그 득점왕의 대표팀 불운 징크스'를 피하지 못했다. 뛰어난 골결정력과 포스트 플레이에 비하여, 느린 스피드와 제한된 포지션 소화능력 등 대표팀이 요구하는 현대적인 원톱의 스타일과는 거리가 있다는 게 외면받는 이유로 꼽힌다.
본인이 세계적인 공격수 출신인 클린스만 감독은 "스트라이커는 특별한 포지션이고, 득점으로 평가받는다. K리그에 더 많은 득점을 올리는 선수들도 있지만 우리가 원하는 스트라이커만의 역할이 따로 있다"고 설명하며 "이번 명단에 든 3명의 공격수는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들이다. 공격수에겐 득점하지 못하는 시기도 있지만,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이라며 기존 선수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냈다.
새롭게 단장한 클린스만호는 오는 16일 페루(부산)- 20일 엘살바도르(대전)와의 2연전을 앞두고 있다. 3월 2연전에서 좋은 경기력에도 아쉽게 1무 1패에 그쳤던 클린스만 감독의 첫 승, 그리고 벤투호와는 또 달라질 클린스만호의 진짜 색깔을 확인할 수 있는 무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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