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욱의 슬기로운 금융] 정부 재정건전화 위해서라도 ‘포퓰리즘’ 경계해야

2023. 6. 5.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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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무역적자에도 재정 지출 확대
현금고갈 직전에야 ‘부채한도 유예’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감 드리워

한국도 15개월째 무역적자 지속
위기상황 속 포퓰리즘 정책 금물
정부, 재정지출 총량관리 외에도
지속적 성장 사업 추진에 힘써야

미국 정부가 부도가 날 뻔했다. 지난주 미국 정치권은 연방정부의 현금이 완전히 말라버리는 날(X-date)을 코앞에 두고서야 겨우 정부의 부채한도 유예에 합의했다. 2011년에도 이런 일이 발생해 당시 금융시장이 큰 혼란에 빠진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이 작지 않게 출렁였다. 다들 정치적 타결은 낙관하면서도 그 이후에 벌어질 상황, 예를 들면 밀렸던 국채 발행이 재개되면서 자금 경색이나 금리 상승이 유발될 가능성을 우려했고 사실 지금도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앞으로도 이런 정치적 서커스가 계속 일어날 거라는 점이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고착화된 상황에서는 재정적자가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악조건에서도 미국 경제가 잘 굴러가는 이유는 미국이 기축통화국인 동시에 세계 최고의 생산성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웬만한 나라라도 미국처럼 재정 지출을 늘리다가는, 특히나 그 사업이 포퓰리즘에 의한 것이라면 거덜이 나는 것은 시간문제가 될 터이다.


미국 재정적자 원인은 무역적자

미국은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이니 정부의 부채한도를 좀 넉넉히 해도 좋으련만 매번 조금씩만 조정하고 있다. 그러니 주기적으로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 금융시장에 불안감이 높아지는 사달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국 정부의 빚이 엄청난 속도로 늘어나게 되므로 차라리 고육지책으로 봐야 할 것이다.


미국이 상시적인 대규모 무역적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다. 그런데 무역적자라는 것은 미국으로 외국 상품이 들어오는 대신 미국 달러가 해외로 나간다는 의미다. 이렇게 되면 미국 내 유동성은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바로 정부가 지출을 늘려 돈을 공급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세수를 넘어서는 지출은 당연히 빚을 내어(국채 발행) 충당하게 되므로 정부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무역적자가 심해질수록 정부 부채가 늘어난다는 말이다.

다만 미국채가 원만히 소화되는 것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기축통화국이기도 하지만 세계를 선도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미국채가 세상에서 가장 믿을 만한 투자 자산이 되는 것이고, 다들 앞다퉈 이를 사려고 한다. 31조 달러(약 4경원)라는 천문학적 빚을 떠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잘 돌아가는 이유인 것이다. 반대로 만일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다면 미국채 인기는 떨어지고 미국은 몰락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포퓰리즘에서 시작될 공산이 크다고 하겠다. 놀고먹기 위해 빚을 내겠다는 나라가 생산성이 높아질 리도 없겠지만 아무도 그런 나라에는 투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협상에서 학자금 융자 탕감, 저소득층 복지 프로그램 등이 논의됐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겠다.

재정준칙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미국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벌써 15개월째 무역적자가 지속되고 있고 재정적자도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지난 3월까지 관리재정수지(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장성 기금을 포함한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것) 적자 규모가 54조원에 달해 정부의 금년도 전망치(58조원)에 근접했다. 이번 정부가 중점 추진하고 있는 재정준칙 설정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재정준칙이란 알기 쉬운 지표를 가지고 재정 지출을 관리하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랏빚이 국내총생산(GDP)의 60%를 넘어서면 관리재정수지를 3% 이상 늘리지 못하게 법으로 정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이런 제도를 시행하고 있기도 하지만 재정 지출이 크게 늘 조짐을 보이는 우리에게는 꼭 필요한 제도라고 여겨진다. 다만 그 선진국들도 재정 상태가 여전히 온전치 않다는 것이 함정이다. 굳이 미국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법으로 아무리 정해놓아도 재정적자라는 것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정준칙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말인데 여기에는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문제가 도드라져 보인다.

첫째는 코로나와 같은 특수 상황에 대비한 예외 적용이 악용될 개연성이 높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특정 사안을 본인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재정을 동원해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큰 범주에서 보면 포퓰리즘이 준동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1고장 1공항 갖기 운동’이 그것이다. 땅도 좁은 나라에 공항이 15개나 된다. 여야가 치열하게 대립하던 지난봄에는 대구와 광주에 공항을 건설하기 위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이런 상황에서는 재정준칙 아니라 그 할아버지가 와도 재정건전화는 달성 불가능하다.

둘째는 기후 문제, 고령화 문제, 차세대 선도산업 육성과 같은 정부가 감당해야만 할 분야가 너무나 많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국민 일부의 희생으로 이런 문제를 돌파해왔으나 이제는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결국 재정이 나설 수밖에 없는데 처음 당해보는 이런 일들에는 논란이 끊이지 않게 된다. 급기야 당장 급해 보이지 않는 이 문제들을 외면하고 싶어질 것이고, 여기에 재정준칙 준수가 핑계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진정 앞장서야 할 사업이 재정 취약성 때문에 발목 잡혀서는 안 될 일이다.

재정건전화를 위해서는 지출을 총량적으로 관리하는 것만큼이나 사업의 내용도 중요하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정부가 꼭 감당해야 할 사업을 선정해내고 이를 과감하고도 꾸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이제는 속 보이는 포퓰리즘 사업은 그만둘 때도 됐다. 멀쩡하던 보도블록을 몽땅 갈아치운 우리 동네 사거리에 예산을 따왔다고 자랑하는 국회의원의 현수막이 펄럭이고 있다.

안희욱 LUX경제그룹대표·경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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