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훈 칼럼] “악마와의 거래”, 그러나 AI에 올인해야 하는 이유

최훈 입력 2023. 6. 5. 01:01 수정 2023. 6. 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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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주필

“인간은 지금 전능을 얻어 신이 되려는 욕망에 악마와의 어떤 흥정도 불사하는 포스터스 박사(크리스토퍼 말로의 희극 중 인물)를 닮아간다. 인간은 포스터스 박사다. 동시에 악마인 메피스토펠레스이다. 이 때문에 악마와의 거래인 AI(인공지능) 혁명은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의 비유다.

「 PC·스마트폰 넘는 챗GPT의 충격
일자리, 윤리·가짜뉴스 위협까지
AI 특성은 ‘전 분야 발전의 플랫폼’
시대의 게임체인저 AI혁신 총력을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챗GPT의 충격이 거세다. ‘기회’와 함께 일자리 불안, 윤리·오류·가짜뉴스 등의 ‘위협’이 뒤섞인 파장이다. 사상 최초인 미 의회의 AI 청문회에 불려 나온 챗GPT의 창시자 샘 올트먼(오픈AI의 CEO)조차 “우리 삶의 모든 측면을 개선할 것이란 믿음으로 시작한 AI지만 동시에 심각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빌 게이츠는 “내 인생에서 혁명적이라 생각한 두 가지 기술은 1980년 PC의 윈도 운영 체제 근간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UI)의 시연, 그리고 두 번째가 챗GPT”라고 했다. PC 이후 인류의 진화가 AI라는 얘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도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선보인 순간과 비슷한 충격”이라며 “이제 컴퓨터에 뭔가 말하기만 하면 모두 프로그래머가 될 수 있는 세상”이라고 규정했다.

AI의 기술 척도는 인간 뇌의 시냅스(신경세포인 뉴런 사이를 연결하는 접합부)와 비슷한 역할인 파라미터(매개변수)의 숫자다. 2020년 공개된 챗GPT 3.0은 1750억 개의 파라미터였지만 올 초 출시된 챗GPT 4는 1조 개로 인간 시냅스(성인 기준 100조~150조 개)의 1%까지 쫓아온 것으로 국내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그런데 “이 파라미터가 5조~10조 개 이상(인간 시냅스의 5~10%)을 넘어서면 어떤 일이 생길지, 얼마나 빨리 거기 도달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김병필 KAIST 교수)는 예측이 나온다. 샘 올트먼이 ‘심각한 위험’으로 걱정한 통제 불능의 그 지점이겠다.

사람들의 근심이야 물론 일자리다. 인간의 직업과 자동화 기술혁신과의 관계를 심층 분석한 데이비드 오터 MIT 교수 등의 보고서(‘뉴프런티어:새로운 일자리의 기원과 내용’ 2022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일자리의 60%가 1940년에는 없던 직업들이다. 1980년 이후 40년 동안엔 대졸자의 경우 중위직업에서 전문직으로의 이동이 증가했다. 비대졸자는 저소득 직장으로의 하향 이동이 가팔랐다. 중간이 비어가는 양극화 현상이었다. 지난 40년간은 자동화가 일자리 수요를 억누르는 쪽의 영향이 훨씬 더 컸다는 결론이다. 마틴 울프는 “1900년 영국엔 동력, 기병용인 말이 330만 마리(1910년 조선의 말은 4만 마리)였으나 지금은 75%가 사라졌다”며 “인간 역시 보다 지능적, 창의적인 기계에 대체돼 말처럼 시대에 뒤처진 기술이 되진 않을까”라고 되묻고 있다.

올 4월 골드만삭스의 보고서 역시 “AI는 3억 개의 정규 일자리를 자동화에 노출시킬 것”이라며 “미국 일자리의 3분의 2가 어느 정도 자동화에 노출되고, 그중 4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가 대체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면에 “AI가 전 세계 GDP의 7%(7조 달러)를 상승시키고, 노동생산성 역시 향후 10년간 연 1.5%씩 올라갈 것”이라며 “대부분의 일자리는 부분적으로 노출되기 때문에 모두가 정리해고되는 대체보다는 보완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위로의 말’을 잊지는 않았다.

AI의 역사적 의미와 그에 따른 통찰을 제공해 준 이는 에릭 슈밋 전 구글 회장이다. ‘이노베이션 파워’란 기고(포린어페어스 4월호)를 통해 그는 AI를 시대의 ‘게임체인저’로 선언했다. “이전 청동에서 강철, 증기동력에서 핵분열까지 지정학의 우위를 좌우한 기술에는 명확한 문턱이 있었다. 한 국가가 그곳에 도달하면 다시 경기장이 평평해졌다. AI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더 빠른 비행기가 더 빠른 비행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하지만 AI는 자기 자신은 물론 모든 다른 분야의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플랫폼이다. 온 세상을 재편한다. 자신의 생성적(generative) 특성 때문이다. 이는 산업·경제·군사 등 모든 권력의 토대가 돼 5~10년 내 전 세계 패권 경쟁을 좌우할 것이다. 하지만 정치와 정부란 늘 표를 얻을 단기 성과에만 집중한다. 그러니 미래를 좌우할 신기술에의 만성적인 과소 관심, 과소 투자를 못 하도록 하는 게 이 시대 우리의 과제다.”

한국은 세계 7위의 AI 국가다.(영국 토터스 인텔리전스, 2022년) 앞이 미·중·영국·캐나다·이스라엘·싱가포르다. 기술 개발 역량 자체는 3위, 인프라는 6위다. 그런데 인재는 28위, 운영 환경은 32위다. 교육 시스템의 업그레이드, 적극적 이민과 인재 유인이 관건이다. 데이터 규제 환경의 혁신도 급하다. 초거대 규모의 AI 경쟁보다는 스마트폰부터 심어서 쓸 실용적 경량화, 저전력, 빠른 속도 특성의 ‘한국형 AI’ 전략의 목소리도 들린다. 피할 수 없는 악마와의 흥정이라면 차라리 먼저 가자. 이제 AI의 진도를 늘 점검할 상설 ‘NSC on AI’(인공지능 국가안전보장회의)도 필요해질 시대다.

최훈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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