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셋 코리아] 위험 원인과 대피 방법 빠진 재난문자

입력 2023. 6. 5. 00:57 수정 2023. 6. 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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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멀리서 슬금슬금 다가오는 늑대를 발견했다. 그 늑대가 양들을 향해 돌진할지, 그냥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때 양치기 소년은 일단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쳐야 한다. 그래야 소리를 듣고 달려온 마을 사람들이 늑대를 쫓아내거나, 그 전에 늑대가 사라져 사람들을 헛걸음시키더라도 양들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 늑대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위험으로 판단하고 조치하는 것이 상책이다.

이 관점에서 본다면 이번 북한 발사체 발사와 관련한 서울시의 긴급경보발령은 부정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그러나 시민 입장에서 보면 갑작스러운 불안과 혼란에 대해 불만과 불신을 토로하는 것도 당연하다.

「 서울시 긴급경보에 시민 혼란
군·정부·지자체 소통부족 노출
국민 불신 줄이는 계기 삼아야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이번 경보 발령과 해제 과정에서 확인된 문제점을 누군가의 책임으로 돌리거나, 이런 문제점을 왜 미리 알고 보완하지 않았는지 질타하는 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비상상황 판단과 대응, 조치 등은 법률에 근거하여 지침과 매뉴얼 등으로 갖춰져 있으나 실제 상황에서는 부족함이 발생할 수 있기 마련이다. 완벽한 교과서라기보다 계속 정리하고 보완해나가야 하는 ‘오답 노트’인 셈이다. 이번에 발생한 문제를 왜 미리 대처하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가 중요하다.

첫째, 긴급 상황에서 지자체와 행정안전부 간 정보 공유와 소통을 보다 긴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발사체가 발사된 후 군에서 행안부-지자체로 경계경보 발령이 전달되는 과정에서 행안부와 서울시의 경보 발령 권한·절차 등의 해석 차이로 혼란이 발생했다. 보다 긴밀하게 소통하고 상황을 확인·공유하는 연락 체계나 확인 과정이 있었다면 두 기관 간 판단이나 절차 해석의 간극,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둘째, 발송되는 긴급재난문자의 내용을 보다 구체화하여 제시할 필요가 있다. 시민들이 혼란을 겪은 것은 갑작스러운 경보 발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긴급재난문자의 정보 부족도 한몫했다. 경계경보를 발령하면서도 어떤 긴급 상황인지 설명이 없어 불안감을 더 키웠다. 또 대피 준비를 하라고 하면서 어디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내가 없었다. 시민 입장에서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도록 위험 상황의 원인, 대피 장소·방법 등의 정보를 긴급재난문자에 포함해야 한다. 이러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웹사이트·앱을 링크하는 방법도 필요하다.

셋째, ‘경보 발령-오발령 안내-해제’ 과정에서 나타난 국민과의 소통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필자가 이번 일을 겪으면서 가장 아쉬운 점은 경보 발령이나 시민 혼란이 아니라 ‘오발령’ 안내 과정에서 충분한 고려가 없었던 점이다. 서울시에서 송출한 긴급재난문자의 내용에 위험 상황에 대한 정보, 대피 장소, 대피 방법 등이 부족했다면, 이후 행안부에서 송출한 문자 메시지에는 ‘오발령’이라는 내용 이외에 왜 오발령인지 설명이 없었다. 어떤 과정에서 어떤 문제로 오발령이 발생했는지, 오발령으로 판단한 이유는 무엇인지 보다 친절하게 알릴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이번 경보 발령이 ‘오발령’이라는 한 단어로 지자체 잘못 또는 실수로 이해된다면 앞으로의 재난 상황, 비상 상황에서 경계경보가 발령되더라도 국민 중 상당수는 이를 믿지 않고 즉각적인 행동이나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자체나 행안부도 국민에게 정보를 전달할 때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전달할 뿐 아니라 국민이 충분히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의 경우 ‘오발령’이라고 하기보다 ‘긴급한 상황에서 선제적으로 경보가 발령되었으나 현재 확인된 상황으로 볼 때 긴급대피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되어 상황을 해제한다’고 알렸으면 어땠을까.

이번 일로 긴급경보 발령 판단이나 절차, 문자 제공 정보 등은 바람직한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다. 다만 걱정되는 것은 위급 상황에서 정상적인 판단과 절차에 의해 발령된 경계경보라 하더라도 많은 국민은 즉각적 반응보다 “또 오발령 아닐까?” 하는 불신과 안이함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늑대로부터 양들을 지켜주는 것은 양치기 소년이 아니라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듣고 달려가는 마을 사람들이다. 마찬가지로 내 안전을 지키는 것은 비상경보가 아니라 비상경보에 따라 행동하고 조치하는 ‘나’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영주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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