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청 다음은 열린 대한민국 만들 '이민청'[장세정의 시선]

장세정 입력 2023. 6. 5. 00:55 수정 2023. 6. 5.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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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동포청, 732만 네트워크 활용
이민청 신설 속도 내 시너지 창출
다양성 포용 '컬러풀 대한민국'을
장세정 논설위원

재외동포청(초대 청장 이기철)이 5일 공식 출범한다. 윤석열 정부 들어 어렵사리 지난 2월 27일 정부조직법이 개정됨에 따라 외교부 산하에 재외동포청이 신설됐고, 국가보훈처가 국가보훈부(초대 장관 박민식)로 승격해 같은 날 새로 출발한다. 국가보훈부 승격과 재외동포청 신설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큰 획을 그을 사건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의미가 크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월 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가보훈부 승격과 재외동포청 신설을 담은 개정 '정부조직법' 공포안에 서명하고 있다. 이 개정법에 따라 현충일을 하루 앞둔 6월 5일부터 국가보훈처는 국가보훈부로 승격되고, 외교부 산하에 재외동포청도 같은날 출범한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박민식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 이기철 초대 재외동포청장. [중앙포토, 연합뉴스]

재외동포청 신설로 그치지 말고 내친김에 '이민청'(가칭)을 조속히 설립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심각한 저출산 현상을 극복하지 못하면 농촌 소멸을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폭넓게 공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한민족 이민의 역사는 짧게 잡아도 160년을 넘는다. 19세기 말 왕조의 무능·부패·수탈을 피해 조국을 등지고 만주와 연해주로 이민 행렬이 시작됐다. 1902년 조정의 공식 이민 기구 수민원(綏民院) 설치 이후 미국 하와이를 필두로 멕시코와 쿠바 사탕수수 농장으로 인력 송출과 이민이 이어졌다.
정부 수립 이후 1962년 '해외이주법'이 제정되면서 현대적 의미의 해외 이민 바람이 불었다. 그 결과 전 세계 179개국에 흩어져 사는 재외동포는 732만 명(2021년 말 기준)으로 불어났다.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 공동체는 유대인과 중국 한족보다 더 많은 나라에 널리 퍼져 있는 셈이다. 서울 하늘에 태극기가 하강해도 지구 반대편에 여전히 태극기가 펄럭인다. 말하자면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이 형성된 것이다.
해외 이민과 정반대 방향으로 대한민국 땅에 들어오는 외국인의 유입 이민 규모도 만만찮다. 농촌 남성과 동남아 여성의 결혼 붐이 불었고, 최근엔 BTS로 대표되는 한류의 영향 등으로 한국인과 선진국 남녀의 국제결혼도 증가 추세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224만 명을 넘었다. 코로나19 비상사태가 해제되면서 문화 강국 대한민국의 매력을 느끼려는 외국인 관광객도 늘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 공동체의 구성원은 인종적으로 단색이 아니라 다채로운 컬러를 갖추고 다양성이 강화되고 있다.

2022년 11월 20일(현지시간) 미국 LA에서 열린 아메리칸 뮤직 어워즈에서 2관왕에 올랐던 방탄소년단. BTS는 문화 강국 대한민국의 매력을 지구촌 팬들에게 널리 발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빅히트 뮤직]

이런 시점에 한민족 글로벌 네트워크를 관리할 재외동포청과 함께 대한민국 국민의 용광로 역할을 하게 될 이민청으로 듬직한 두 축을 세우는 일은 시급한 시대적 과제다. 두 기관을 전략적으로 잘 꾸려 시너지를 내면 지구촌 곳곳으로 평화와 번영을 공유하고 전파하는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 G5(주요 5개국) 비전'은 꿈이 아닐 것이다. 과거 약소국을 침략한 서구 열강이 이권을 노리고 지구촌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면, 해가 지지 않는 대한민국은 경제적 번영, 문화적 풍요, 그리고 평화를 전파하고 공유하는 모델이다.
이런 원대한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먼저 재외동포청은 단순히 정원 151명의 외청 신설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실질을 구비해 존재 이유를 입증해야 한다. 첫째, 재외동포 정책은 재외동포청장이 맡지만 재외동포 보호는 앞으로도 외교부가 맡아 이원화된다는데 이에 따른 문제가 없을지 따져봐야 한다. 둘째, 중국동포와 고려인 등 국내에 들어온 동포는 재외동포청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법무부 소관이다. 재외동포청과 법무부의 역할 분담이 원활할지 점검해야 한다. 셋째, 기존에는 총리가 맡던 재외동포정책위원회를 외교부 장관이 맡기로 했는데 위원회가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살펴야 한다.
이민청은 안타깝게도 아직 첫걸음조차 내디디지 못하고 있다. 이명수 의원('이민청')과 김형동 의원('국경이주관리청')이 지난해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지만, 여전히 진전이 없는 상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총인구 대비 외국인의 비율이 5%를 넘으면 '다문화·다인종 국가'로 분류한다. 지난해 총인구(5141만 명)를 고려하면 이 비율은 4.3%를 넘었고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15%에 육박하고 있다. 외국인 정책을 총괄하고, 예상되는 사회·문화적 갈등을 최소화할 컨트롤 타워 신설을 더 미루기 어렵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추진력을 발휘하길 기대한다.

한국이민법학회(회장 문재완)가 법무부 및 이민정책연구원과 공동으로 '제16회 세계인의 날'을 기념해 5월 26일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주최한 이민청 신설 관련 포럼에서 전문가들이 토론하고 있다. 장세정 기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이민청 설립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 주목된다. [뉴스1]

한국사회에는 '우리민족끼리'라는 전근대적 담론이 퍼져 있다. 민족을 앞세워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는 단일 민족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민족에서 국민으로, 열린 국제주의로 과감히 진화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을 준수하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외국인에게는 지금보다 더 과감하게 문호를 열어야 한다. 다양성을 포용하고 존중하며 문화적 매력을 갖춘 대한민국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세계적 강대국이 될 수 있다. 평화와 번영의 열쇠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장세정 논설위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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