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필의 인공지능 개척시대] AI시대, 기술주권 보호에 힘써야
인공지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패러다임은 본래 ‘패턴’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비슷한 일이 계속 일어나는 모습을 일컫는다. 그러니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것은 이전까지 흔하던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게 되고, 그 대신 종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지금 인공지능 분야에서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가. 인공지능의 성능이 개선되거나, 활용 사례가 증가하는 일을 두고 패러다임이 바뀐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10년 동안 진행되어 온 인공지능 혁신의 연장선에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두고 현재 인공지능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고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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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거대 AI의 발전 규제론 일어
한국은 예외적 토종 AI 보유국
우리의 잠재력 키울 전략 중요
」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기반모형’이라는 말에 담겨 있다. 기반모형은 종전과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방대한 데이터로 학습된 대규모 인공지능을 일컫는다. 오픈AI의 챗GPT나 구글의 바드 같은 것들이다. 이러한 기반모형 인공지능은 이제껏 인류가 축적해 온 수많은 지식을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다.
기반모형이 특별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범용성(汎用性)이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작업마다 그에 특화된 인공지능을 별도로 구축하는 일이 당연시됐다. 언어번역 인공지능과 X-선 사진 판독 인공지능은 전혀 다르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누군가 두 과제를 모두 아우르는 인공지능을 만들겠다고 하면 무모한 시도라 하거나 사기꾼으로 의심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기반모형 시대에 이르러 불가능한 꿈이 아니게 되었다. 기반모형은 다양한 과제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범용성을 갖추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반모형을 이용하면 인공지능을 도입하는 범위가 비약적으로 넓어지리라는 기대가 높다. 이제 인공지능을 도입하기 위해 직접 인공지능을 설계하고 학습시킬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자신이 필요한 활용 사례에 맞추어 그저 기반모형에 적절한 지시어만 입력하면 된다. 인공지능에 입력되는 지시어를 흔히 ‘프롬프트’라 부른다. 프롬프트에 기반한 인공지능 도입 전략을 잘 활용한다면 막대한 비용 절감과 도입 기간 단축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
기반모형이 특별한 두 번째 이유는 창발성(創發性)이다. 이는 인공지능이 그 개발자가 지시하지 않은 새로운 능력을 갖출 수 있다는 뜻이다. 기반모형의 근간이 되는 인공지능 구조는 2017년 번역 작업을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기반모형은 번역 작업을 능숙히 수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변호사 시험 문제를 풀며, 사진을 보고 설명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당초 인공지능을 개발한 이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능력이다. 그저 인공지능의 용량을 키우고 더 많은 데이터로 학습하였더니 새로운 능력이 생겨난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기반모형이 어떠한 능력을 더 갖추게 될지 예측하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 되었다.
기반모형이 보이는 창발성은 인류에게 새로운 도전이 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수퍼인텔리전스’로 발전하여 인류 문명의 존속을 위협할 위험성, 기반모형이 권위주의 독재자나 테러리스트에 의해 오용될 위험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시점이 도래했다고 보기도 한다. 그래서 일정 능력 이상을 갖춘 기반모형 기술의 확산을 막는 국제적 인공지능 감독 기구를 창설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보장하고 핵무기 확산을 막기 위해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만든 것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기술을 통제하는 국제기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기반모형에 관한 우려가 현재 기술 수준에 비추어 그 위험성을 지나치게 과장한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러한 국제적 규제는 이미 기술적 우위를 갖춘 소수 기업의 지위를 공고히 하려는 정치적 노림수라는 것이다.
이처럼 기반모형이 초래하는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가 어떠한 입장을 견지해야 할 것인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우선 기반모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초래되는 거시적인 국제 질서 변화를 이해하고 그 위험에 대비하는 국제적 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때 우리 관점에서 유의할 점은 강력한 기반모형 인공지능이 소수 강대국이나 거대기업의 손에만 쥐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자국어로 된 기반모형을 보유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이는 한국의 미래 경쟁력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니 기반모형에 대한 국제적 규제로 인해 우리의 잠재력이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한국의 기반모형 인공지능을 유지하고 키워낼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김병필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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