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외국인 노동자

최현주 입력 2023. 6. 5. 00:44 수정 2023. 6. 5.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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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주 증권부 기자

‘한국인=단일민족’ 개념이 등장한 건 대한민국 정부 수립 무렵이다. 1948년 역사학자 손진태가 쓴 『조선민족설화의연구』에서다. ‘한 민족에서 어떤 종족의 혈액이 80~90%를 점유한다면 단일민족’이라고 봤다.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후 1300년간 단일민족·단일국가가 전승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학계에선 지나친 단순화라고 지적한다. 막 태동한 정부를 돕기 위한 정무적 전략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실제 옛 문헌에 외국인이 종종 등장하는데 『삼국유사』가 대표적이다. 서기 42년 김해 김씨 시조인 수로왕은 배필을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망산도(진해)에 배 한 척이 정박했다. 배에는 선녀 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고, 그중 아유타국(인도) 공주 허황옥(16세)이 있었다. 국내 첫 국제결혼으로 꼽힌다.

이런 설화도 있다. 신라 제49대 왕인 헌강왕이 875년 동해 용을 위해 절을 세우자 용의 일곱 아들 중 한 명인 처용이 지상에 남아 왕을 도와 정사를 돌봤다. 처용의 아내는 아름다웠는데 역신이 이를 흠모해 밤에 몰래 들어와 동침했지만, 처용은 화를 내지 않고 도리어 노래를 불렀다. 감복한 역신은 처용의 얼굴 그림이 있는 집은 역병을 퍼트리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처용가’를 부르며 건강을 기원하는 관습이 생겼다 한다. ‘처용가’를 부를 때 쓰는 처용탈은 큼직한 코, 짙은 쌍꺼풀, 주걱턱 등 이국적인 느낌인데 학계에선 처용을 귀화한 아랍인으로 본다.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규제를 잇달아 완화하고 있다. 계절 외국인 노동자 체류 기간 연장, 외국인 가사 도우미 시범사업 등이 도마 위에 올랐는데 부정적인 반응도 적지 않다. 내국인의 일자리 감소, 치안 등과 같은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은 이미 한국 사회에 없어서 안 될 존재다. 내국인이 기피하는 더럽고 위험하고 힘든 일(3D)을 도맡고 있다. 건설현장 인력 70%는 외국인이고 국내 주요 조선소의 외국인 인력 비율도 20%에 이른다. 농촌은 수확기 노동 인력의 90% 이상이 외국인이다. 세계 110곳이 넘는 나라에서 20만 명 넘게 한국인으로 귀화했지만, 관련 제도는 여전히 미비하고 배척은 강하다. 불과 50여 년 전 파독 간호사·광부로 설움을 겪었던 우리의 아픔을 잊지 말자.

최현주 증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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