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총 1조 달러’ 엔비디아의 성공에서 배울 것들

2023. 6. 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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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SW 개발자들 ‘가두리 양식’해 AI 생태계 구축


R&D 인력이 75%, 기술 중시의 문화 돋보여


1993년 설립된 미국 반도체 회사 엔비디아가 얼마 전 시가총액 1조 달러(1310조원)의 거대기업 반열에 올랐다. 반도체 기업이 시총 1조 달러를 찍은 건 처음이다. 시총 1조 달러는 시대를 상징하는 신기술과 혁신의 상징이다.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1조 달러 시총에 이르렀던 기업은 9개에 불과하다. 현재 시총 1조 달러를 유지하고 있는 회사는 애플·아마존·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5곳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기업인 사우디 아람코를 제외하면 스마트폰·전자상거래·클라우드(가상서버)라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한 기술 변곡점에서 등장했다. 엔비디아가 인공지능(AI)이라는 신시장의 총아로 떠오른 셈이다.

창립 30년의 젊은 회사가 급속도로 몸집을 키운 데엔 세계적인 AI 열풍 덕에 엔비디아의 주력 제품인 그래픽처리장치(GPU)가 품귀 현상을 빚을 정도로 수요가 몰렸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최신 제품을 받으려면 6개월 이상 기다려야 할 정도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스마트폰 시대를 연 아이폰에 비유해 지금을 ‘AI의 아이폰 모멘트’라고 표현했다.

최근 언론이 분석한 엔비디아의 성공 요인은 이렇다. 첫째, AI 생태계를 주도했다. 엔비디아는 2006년 GPU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쿠다(CUDA)’를 출시했다. 초반엔 실적이 부진했고 투자자들도 회의적이었지만 AI 혁명이 본격화하면서 AI 개발자에게 쿠다는 필수불가결한 도구가 됐다. 쿠다는 엔비디아 제품에서만 작동한다. AI 엔지니어들은 엔비디아의 ‘가두리 양식장’을 벗어나기 힘들어졌다.

둘째,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했다. 계산 능력을 높이는 컴퓨팅에 집중하기 위해 2010년대 스마트폰 시장에서 발 빠르게 철수했다. 셋째, 기술 중시 문화가 강했다. 2만6000여 명의 임직원 가운데 75%가 연구개발(R&D) 인력이다.

엔비디아 주가가 오르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도 덩달아 올랐다. AI 열풍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성능 메모리(HBM) 수요도 늘어나겠지만 GPU 수요에 비할 바가 못 된다. AI 활황에 우리는 곁불만 쬔다는 소리가 괜한 걱정이 아니다. 우리도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인 팹리스의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토종 팹리스 스타트업을 적극 지원해 시스템 반도체의 생태계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젠슨 황 CEO는 최근 미국 정부의 반도체 대중 수출규제를 강도 높게 비판해 주목받았다. 자국 정부에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엔비디아 경영자와 달리,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부대끼면서도 양쪽 눈치를 봐야 하는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우리에겐 왜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없냐며 부러워하기 전에 정부가 먼저 외교력을 발휘해 우리 기업이 숨 쉴 공간부터 충분히 열어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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