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국판 ‘아우토슈타트’는 불가능한가
독일 중부의 공업 도시 볼프스부르크에 ‘아우토슈타트(Autostadt)’라는 테마파크가 있다. 우리말로는 ‘자동차 도시’쯤으로 번역된다. 세계 2위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그룹의 본사와 공장에 인접한 관광 명소다. 폭스바겐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 등이 전시된 박물관과 고객센터가 자리해 있다. 이곳에서 방문객들은 새 차를 살 수 있고, 거대한 공장 내부를 견학할 수도 있다.
폭스바겐의 주력 공장도 바로 옆에 있다. 아우토슈타트는 한 마디로 폭스바겐이란 기업과 그 제품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는 열린 공간이다. 기업 활동의 일부인 자동차 생산과 출고를 관광 자원으로 묶어 테마파크로 만들었다. 2000년 6월 개장한 아우토슈타트를 찾는 관광객은 한 해 200만명 이상이다.
4일 서울 양재동에 있는 글로벌 3위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그룹 본사 인근에는 장례식장을 방불케 하는 20여 개의 만장(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아우토슈타트와는 전혀 딴판이다. 이곳에서 수년째 시위 중인 A씨가 걸어놓은 것이라고 했다. 어지러이 걸린 만장 옆에 경비요원들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다. 소음을 동반한 확성기 시위도 수시로 열린다. 현대차그룹 입장에선 분통이 터질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제재할 수단이 없다고 했다.
아우토슈타트는 고사하고 삼성이나 SK 등 다른 대기업도 본사 사옥 인근에서 열리는 시위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개인의 주거공간 인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경범죄처벌법상 ‘인근 소란 등’의 이유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 본사는 사정이 다르다. 불법과 합법을 넘나드는 ‘변칙 시위’가 기승을 부린다.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다는 한탄이 나온다.
기업이나 보행자 등은 불편함을 넘어 고통스러움까지 감내해야 한다. 사옥이 무단 점거 당하거나(CJ대한통운), 만성적인 시위 장소로 악용되기도 한다. 사옥 앞에 시민들을 위한 너른 공간을 만들려던 일부 대기업은 이 공간이 시위 장소로 악용될 것을 우려해 설계 변경을 검토하기도 한다.
물론 합당한 이유가 있는 집회나 시위는 얼마든지 보호받아야 한다. 하지만 법원의 최종 판단까지 마무리됐거나, 명확한 고용 관계가 없는데도 대기업이라는 이유로 ‘찾아다니면서’ 괴롭히는 현실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집회나 시위와 관련한 느슨한 법 적용과 그로 인한 불편이 반복되는 현실 역시 바뀌어야 한다. 무엇보다 ‘기업=악당, 시위자=약자’란 등식은 바뀔 때가 한참이나 지났다.
이수기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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