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가치 외교, 文은 이념 지향 외교? [신율의 정치 읽기]

2023. 6. 4.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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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정치권 이념, 가치, 행동마다 괴리 커
이념 지향성 몰두하면 중요한 가치 등한시
‘언행일치’ 없으면 국민 정치권 불신 커져

포털 사이트 지식백과에서 ‘가치’를 찾아보면 ‘인간 행동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바람직한 것, 또는 인간의 지적·감정적·의지적인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는 대상이나 그 대상의 성질을 의미한다’로 정의돼 있다. 반면 이념은 ‘이상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생각이나 견해’로 정리된다. 가치와 이념은 완전히 분리하기는 힘든 개념이다. 단지 가치는, 욕구라는 ‘주관성이 강한 존재’와 관련돼 있지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이 강한 반면, 이념은 가치보다 주관성은 덜하지만 가치보다는 추상적이라는 개념적 차이는 존재한다.

요새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면 가치를 주장하는데 정작 추구하는 가치는 알 수 없고, 이념 지향성을 띠는 것 같기는 한데 도대체 어떤 이념을 추구하는지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윤석열정부는 윤정부 외교를 ‘가치 외교’라고 칭한다. 반면, 과거 문재인정부 시절 외교는 이념 지향적 외교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문재인정부 외교가 이념 지향적이었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당시 상황을 놓고 보면, 문재인정부 외교가 이념 지향적 외교였다고 단언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문재인정부 외교가 성공적이었나를 평가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문재인정부 외교를 기준으로 현재의 윤석열정부 외교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라는 내용이다.

당시 상황과 작금의 상황은 다르다. 일각에서는 중국과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현 정부 외교 노선을 비판하지만, 이는 ‘과거의 기억으로’ 현재를 판단하는 주장이다. 중립국 핀란드와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했거나 가입하려는 사실만 봐도, 현재의 국제 상황은 과거와는 매우 다르다. 중국과의 관계도 좋고 일본과 미국과의 관계도 좋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현재의 국제 질서 아래서 그런 관계를 설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신(新)블록화, 신(新)냉전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요즘에는 이른바 ‘등거리 외교’가 매우 힘들게 됐다.

현 정권의 외교를 이념 지향적이라고 비판하는 것도 옳지 못하다. 윤석열정부 외교가 이념 지향적 외교라면, 현재의 변화하는 국제 질서에 적응하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이념 지향성에 빠지면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념 지향성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가치를 등한시하기도 한다. 한 진보 정당 원로 정치인이 우크라이나에 물자를 지원하는 우리 정부를 향해 “우크라이나는 우리가 신세질 게 아무것도 없는 나라”라며 “왜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말려 들어가야 하나”라고 말했는데, 이런 언급 속에서 진보의 중심 가치인 ‘인권 의식’을 발견하기란 어렵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의해 침공당한 국가다. 지금도 러시아 군포격과 공습에 의해 수많은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무고한 시민이 희생되고 있다. 일반적인 진보적 시각에서는 눈감고 지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 전쟁에 왜 말려드냐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이들이 추구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런 언급과 추구하는 이념은 어떤 관계에 있는지 설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실용적 가치를 추구한다면 상황이 다르다. 실용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듯, 실용은 ‘주관적이지만 구체적 욕구’를 가치의 중심에 놓기 때문에 설사 이율배반적인 현상이나 논리적 부정합이 발생해도 ‘실용’이라는 단어에 의해 덮일 수 있다. 하지만 이념 지향성을 강조하면서 이념의 중심 가치를 등한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이는 동조하기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이념 자체가 갖는 의미는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상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논리적 부정합이 발생하면 이념 추구 행위 자체의 진정성마저 의심받을 수 있다.

종합편성채널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혐의로 기소돼 면직된 한상혁 전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5월 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면직 처분을 재가했다. 한 위원장 임기는 7월 말까지다. 임기를 두 달여 정도 남긴 상황에서 면직 처리된 것이다. 한 위원장을 면직 처리하면서 밝힌 정부 입장은 “한 위원장에 대한 공소장과 청문 자료에 의하면 한 위원장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평가 점수를 조작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방통위 담당 국·과장과 심사위원장을 지휘·감독하는 책임자로서 그 의무를 전혀 이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은 법적으로 논란의 소지가 있다. 방통위법 8조를 보면, 방통위원 신분 보장과 관련해 ‘방통위법 또는 다른 법률에 따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 등을 제외하고는 면직되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역으로 해석하면, 방통위법이나 다른 법률에 따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하면 면직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여기서 문제는, 한 위원장이 TV조선 재승인 과정에서의 의혹으로 불구속 기소됐지만 아직 대법원 최종 판결이 있기 전이기에, 공소 사실만으로 ‘법률에 따른 직무상 의무를 위반한 경우’라 단정할 수 있는가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공소 사실이 곧 ‘사안의 진실’을 의미하는 것인지 논란이다. 이런 차원에서 보면, 두 달 정도 후면 임기를 마치고 물러날 위원장을 서둘러 면직시킨 것이 과연 합리적 결정이었나 싶다.

한 위원장은 “영장실질심사 단계에서도 (다툼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이 받아들여졌다”면서, 신속하게 면직 처분 취소 청구 그리고 효력 정지 신청까지 병행해서 들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국정이 오히려 혼란스러워진다. 윤 대통령이 강조해온 ‘법치’라는 가치에 입각해보더라도, 차분히 한 위원장 재판 결과를 기다리고, 두 달 후 자연스럽게 새로운 위원장을 임명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 있다. 이 역시 추구하는 가치와 현실적 행위 사이에 괴리가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의구심이 드는 부분이다.

MBC 사옥 경찰 압수수색 시도도 마찬가지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개인정보 유출 의혹과 관련해 지난 5월 30일 오전 MBC 기자 임 모 씨 주거지를 압수수색했고, 상암동 MBC 사옥에도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정당한 법 집행 절차의 일환이냐 아니냐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법률적 사안으로 외부에서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 단지,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언론사를 압수수색하려는 시도는 일반 국민에게는 언론에 대한 도전으로 비춰진다. 따라서 정당한 법 집행이라 하더라도, 여론의 ‘오해’를 살 만한 일을 자제하는 것이 정권 차원에서 합리적 선택이다. 수사는 진행하되, 언론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요사이 정치권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면 이처럼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 그리고 행동 사이에 괴리가 있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이게 반복되면 국민은 정치권을 더욱 불신할 것이다. 언행일치가 지금 정치권에 가장 필요한 가치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2호 (2023.06.07~2023.06.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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