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문 34주년 맞은 中, ‘시위장소’ 지우고 인플루언서는 ‘금언령’
지난 1989년 6월 4일 베이징 천안문 민주화 운동 유혈진압 34주년을 맞은 4일 중국 전역에 강도 높은 경계령이 발령됐다. 지난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 반대하며 민주와 자유를 요구하는 플래카드가 걸렸던 베이징 ‘쓰퉁차오(四通橋)’ 표지가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중국판 틱톡(Tic Tok) 더우인(抖音)에서는 인플루언서에게 6·4 천안문을 연상시키는 게시물을 금지하는 ‘금언령’을 담은 내부 통지가 유출됐다. 추모 집회 방지를 위해 6000여 명의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선 홍콩에서는 추모 활동을 벌이려던 민주 인사 8명이 체포·연행됐다.
지난 1일 베이징 도심의 베이싼환시루(北三環西路)와 중관춘다제(中關村大街)가 교차하는 고가 간선도로 쓰퉁차오의 도로 표지판이 돌연 철거됐다. 대만 자유시보는 네티즌을 인용해 이날 중국 대표 인터넷 지도서비스인 바이두(百度)와 가오더(高德)에서 쓰퉁차오 지명이 검색되지 않는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날 바이두 지도에서 쓰퉁차오를 검색하면 “검색 결과를 찾을 수 없다”는 안내만 표시됐다. 쓰퉁차오는 4일에도 여전히 바이두 지도에서 검색되지 않고 있다. 단 쓰퉁차오 이름이 붙은 버스정류장은 여전히 지도에 표시됐다.
쓰퉁차오에는 지난해 10월 13일 펑자이저우(彭載舟)를 아이디로 사용한 베이징 시민 펑리파(彭立發) 씨가 “핵산검사 아닌 밥을, 봉쇄 아닌 자유를, 거짓말 아닌 존엄을, 문혁 아닌 개혁을, 영수 아닌 선거를, 노예 아닌 공민을 원한다”는 등의 반체제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펑 씨는 현장에서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이후 지금까지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2일(현지시간) 미국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ongressional-Executive Commission on China, CECC)의 민주·공화당 양당 대표는 천안문 34주년을 앞두고 쓰퉁차오 플래카드 시위를 벌인 펑리파, 2019년 코로나19 초기 실상을 보도했다가 4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시민기자 장잔(張展), 지난해 11월 26일 교내에서 백지시위를 주도한 뒤 체포돼 역시 행방이 불분명한 리캉멍(李康夢) 난징 전매대학 학생을 2023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 SNS에서 천안문 관련 금언령도 유포됐다. 지난 2일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이 유명 인플루언서를 대상으로 6월 3, 4, 5일 사흘 간 촛불을 켜는 사진, 불분명한 숫자, 탱크, 오래된 사진, 청룽(成龍)·알란탐·쩡쯔웨이(曾志偉)·메이란팡(梅艶芳) 등 당시 시위를 지지했던 홍콩 연예인, 시위 사진, 빅토리아 항구, 천안문, 이화원, 일렬로 늘어선 물체 등이 포함된 글의 발표를 금지한다는 내부 통지문이 확산됐다. 또한 퍼가기, 댓글, 좋아요 등에 민감한 숫자가 표기되지 않도록 지시했다고 트위터리안 ‘리선생(李先生, 트위터 아이디)’이 통지문 캡쳐 화면을 공개했다. 중국 검열 당국이 천안문 민주화 운동을 연상시킬 모든 콘텐트를 원천 차단한 조치로 풀이된다.
당국의 경계령에도 베이징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3일 베이징 올림픽 공원에서는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로 시작하는 “미국독립선언” 발췌문을 뿌리고 성조기를 흔들려던 한 여성이 경비 요원에게 제지당하는 영상이 유포됐다.
홍콩에서는 6·4 천안문 시위를 추모하는 시민을 경찰이 연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홍콩 경찰은 3일 밤 성명을 내고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해치거나 선동적 행위를 한 혐의로 4명을 체포했고, 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로 다른 4명을 연행했다고 발표했다.
이날 저녁 오후 6시 4분(홍콩 시간) 전 홍콩 지련회(支聯會, 시민지원 애국민주화운동연합회) 소속 활동가 관전방(關振邦)과 천안문 어머니회 활동가 류자이(劉家儀)는 빅토리아 공원 분수대에서 “6·4 사상자를 애도하며 천안문 어머니회에 경의를 표함” “금식 8만 9643.4초” 등의 구호가 적힌 A4 용지를 들고 입에 테이프를 붙인 채 여섯 송이의 흰 장미와 네 송이의 붉은 장미를 들고 무언 시위를 시작했다. 시위 시작 즉시 20여 명의 홍콩 경찰이 현장을 봉쇄하고 이들을 ‘형사 조례’ 9조 ‘선동의도’ 등의 죄목으로 경찰차에 태워 연행했다고 홍콩 명보가 4일 보도했다.
미국도 성명을 내고 천안문 34주년을 추모했다. 미국 국무부는 3일(현지시간) “1989년 6월 4일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파견한 탱크가 천안문 광장에 진입해 평화롭게 시위하던 중국 시위대와 행인을 잔혹하게 진압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피해자의 용감한 정신은 잊혀질 수 없다”며 “미국은 중국과 세계 각지에서 인민의 인권과 기본적인 자유를 계속 제창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중 독일 대사관은 3일 밤 웨이보(微博·중국판 트위터) 공식 계정에 추모의 의미로 촛불 영상을 올렸지만 곧 검열로 삭제당했다.
한편 독일에 망명 중인 작가 저우칭(周勍)은 중국의 압박이 도리어 천안문 추모를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4일 페이스북에 “홍콩이 아직 자유 도시였을 때에는 해마다 6월 4일이면 수십 만 시민이 거리에서 추모 집회를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개최했다”며 “홍콩이 넘어간 뒤 많은 홍콩 시민들이 세계 각지로 망명해 그들이 6·4 기념 활동을 세계 곳곳-베를린, 런던, 파리, 뉴욕 등으로 확산시키고 있다. 용감하고 강인한 홍콩 시민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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