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서 ‘천안문 시위’ 추모 시민들 체포…美 “용기 잊지 않을 것”
中 ‘정치 풍파’ 규정하고 흔적 지우기 속도
美의회 단체, 中반체제 인사 3명 노벨평화상 후보 추천
홍콩에서 천안문 민주화 시위 34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던 시민들이 경찰에 체포됐다. 중국은 1989년 6월 4일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진 민주화 시위와 인민해방군의 유혈 진압을 ‘정치 풍파’로 규정하고 흔적 지우기에 속도를 내고 있다.
4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당국은 전날 저녁 공공장소에서 질서를 해치거나 선동적 행위를 한 혐의로 4명을 체포하고 공공의 평화를 해친 혐의로 다른 4명을 연행했다고 밝혔다. 희생자 유가족 모임인 ‘천안문 어머니회’의 라우 카이와 민주 활동가 콴춘풍은 빅토리아 파크 주변에서 촛불 그림과 ‘진실’ 단어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우리는 천안문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오후 6시 4분에 단식을 시작할 것”이라고 외치다가 체포됐다. 행위 예술가 산무 찬과 찬메이텅도 “홍콩인들이여 두려워하지 말라”고 소리치다가 경찰에 끌려갔다. 시위 유혈 진압 관련 슬로건이 적힌 물건을 갖고 있거나 추모를 상징하는 흰 꽃을 들고 있던 시민 4명은 연행됐다.
빅토리아 파크는 시위 이듬해인 1990년부터 2020년까지 31년 동안 매년 6월 4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대규모 촛불 집회가 열렸던 곳이다. 그러나 2020년 6월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집회는 원천 차단됐다. 중국에선 천안문 시위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돼 있고 6·4 등의 단어는 온라인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채택한 제3차 역사 결의에서 천안문 민주화 시위와 유혈 진압을 ‘엄중한 정치 풍파’로 표현했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1일 정례 브리핑에서 정부가 시위 참가자들을 학살한 책임을 인정하고 유족에 사과하라는 국제 인권단체의 요구에 “일찌감치 정론이 나온 일”이라며 “우리는 이런 조직이 인권 문제를 빌미로 중국 내정에 간섭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홍콩 유력지 명보는 이날 사설에서 “당국은 6·4 사건의 구체적인 사상자 수 등 역사적 사실을 발표한 적이 없고 희생자 가족들의 고통은 치유되지 않고 있다”며 “과거의 잘못을 포함한 역사를 직시하고 진실을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초당적 협력체인 ‘의회·행정부 중국위원회’(CECC)는 성명을 내 중국의 반체제 인사 펑리파, 리캉멍, 장잔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다고 밝혔다. CECC는 “이들은 중국 지도자들을 향해 인권을 인식하고 존중할 것을 평화로운 방식으로 역설했다”며 “세계는 영웅의 용기를 기리고 국제사회는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우리는 천안문의 비극을 매년 추모한다”며 “이는 잊기에 너무 중요하고 중국, 이제는 홍콩에서도 이를 추모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다”고 덧붙였다.
펑리파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3연임을 확정한 지난해 10월 공산당 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베이징 시내 고가도로에 “봉쇄 말고 자유” 등이 적힌 현수막을 내건 뒤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수막 사건 이후 중국에선 코로나 봉쇄에 반대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벌어졌다. 대학생인 리캉멍은 중국 당국의 일상적인 검열과 통제에 저항하는 뜻으로 흰색 종이를 들어 ‘백지 시위’에 불을 붙였다. 장잔은 2020년 2월 중국에서 코로나가 처음 발생한 후베이성 우한 상황을 취재한 뒤 당국이 정보를 충분히 공개하지 않고 도시를 봉쇄했다고 비판하는 글을 올렸던 변호사이자 시민기자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천안문 시위 진압을 ‘학살’(Massacre)이라고 표현하며 “우리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 침묵 당한 사람들의 권리와 근본적 자유 요구에 용감하게 나선 사람들의 기억을 계속 존중하고 옹호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 명의 성명에서 “희생자들의 용기는 잊히지 않을 것이며 전 세계에서 이러한 원칙을 옹호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영감을 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이징=권지혜 특파원 jh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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