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옛터에서 희망을 양식 삼고

김삼웅 2023. 6. 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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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 22] 조국독립을 위해 더욱 단결하고 힘을 모을 것을 청한다.

[김삼웅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
ⓒ 이항증
 
이상룡은 만주에서 조국독립을 위해 부민단과 신흥무관학교에서 활동하면서 동포사회의 여러 가지 사정을 알고 있었다. 외교력을 통해 중국과의 큰 문제는 풀렸으나 곳곳에서 한인들은 어려운 처지에서 고투하고 있었다. 마적떼에 희생되거나 납치당한, 그리고 재물을 빼앗긴 일도 벌어졌다.

그는 1914년 〇월 〇일 〈남만주에 교거하는 동포들에게 공경히 고하는 글(敬告南滿州僑居同胞文)〉을 지어 힘겹게 살아가는 동포·학생들을 위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았다. 이 글을 남만주지역 한인학교를 통해 보내면서 고통을 극복하며 조국독립을 위해 더욱 단결하고 힘을 모을 것을 청한다.

이 시기 그의 신념과 철학, 동포사랑 정신이 오롯이 담긴 매우 주요한 문건이어서 전문을 세 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 

단조(기원 4246년 계축년(1913) 〇월 〇일에 어리석은 아우 석주는 눈물로 붓을 적시면서 남만주에 이주하신 동포 형제들에게 공경히 한 말씀을 올립니다. 제가 일찍이 신문에 실린 인구조사 기록을 보았는데 봉천성 내의 각 지방에 교거하는 한인의 실수(實數)가 28만 6천 여인이 넉넉하였습니다. 거주지의 원근이나 친면(親面)의 유무를 막론하고 이 많은 한인들 중 누군들 같은 우리의 동포가 아니겠습니까? 슬픔에 겨워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아아. 제군들이여! 이국의 산천이니 낙토가 아닐 것이요. 만리(萬里)의 노정(路程)이니 근린(近鄰)이 아닐 것입니다. 친척을 이별하고 분묘를 버린 채, 남자는 등에 지고 여자는 머리에 이고 이 땅으로 건너왔습니다. 다소의 금전은 노상에서 모두 허비하였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역인의 토지와 방(房)을 조차하여 죽을 때까지 부지런히 움직여도 입에 풀칠하기에 부족하니, 그 구차함과 쓰라림은 피차간에 차이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2~3년 이래로 압록강을 건너는 자가 날로 더욱 증가하여 마치 시장으로 돌아가듯이 하니, 어찌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 심정은 대개 "촘촘한 그물 속의 물고기는 도망쳐 벗어나는 것이 좋은 계책이고, 불타는 숲의 새는 날아가 버리는 것이 옳은 계책이다. 더구나 이 만주는 단조의 유허이고 고구려의 옛 강역이니, 우리들이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할 땅으로 이곳을 두고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그래서 희망을 양식으로 삼고 곤경을 기반으로 삼아 온갖 풍상을 무릅쓰면서,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제군이 그 땅을 버리고 온 것은 지려(志慮)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용단이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몸을 편안히 하고 목숨을 보존하는 것은 절로 도리가 있으나, 결코 이 지역으로 건너온 것을 가지고 선뜻 마침내 행복을 얻었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고산자 신흥무관학교 옛 터로 옥수수 밭으로 변해 있다.
ⓒ 박도
 
서양 철학자가 일찍이 상제(上帝)의 말씀을 말하기를, "너희 중생들이 원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하나하나 들어줄 것이다. 다만 너희들은 반드시 대가를 내어야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제군들은 우리들이 오늘날 어떠한 방법을 써야 장래에 행복이라는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문제는 제군들이 평소에 강구하던 바이거니와, 대개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두 개의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산업입니다. 사람이 거북이나 뱀이 아닌 이상 공기로만 호흡하며 살 수는 없으며, 새나 짐승이 아닌 이상 날개나 털을 덮은 채 살 수는 없으니, 추위나 굶주림을 면하고자 하면 할 수 없이 음식과 의복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산업은 우리 사람들의 기혈이나 명맥이 아니겠습니까? 재산이 넉넉하면 능력이 절로 생겨나서 신체가 건강해 질 수 있고 자손이 번성해 질 수 있으며, 재산이 궁핍하면 만사가 군색하여 질병이 그로인해 침범하고 인구가 그로 인해 감소하게 됩니다. 

우리들의 고국에 있을 때는 전장(田庄)·제택(第宅)이 자체적으로 산림과 과수원을 겸비하였는데도, 산업이라는 한 가지만은 오히려 허술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물며 지금 이역에서 떠돌면서 송곳 꽂을 땅조차도 자신의 소유로 된 것이 없어서 한 톨의 곡식, 한 가닥의 포(布)도 반드시 금전을 지불한 뒤에야 얻을 수 있는 경우이겠습니까? 산업이 어찌 오늘날 우리들이 먼저 마음을 쏟아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두 번째는 '교육'입니다. <맹자>에 이르기를, "인간에게는 도리가 있는데,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고서 편안히 거처하며 가르침이 없으면 금수에 가깝게 된다."하였습니다. 저는 그 내용을 반대로 하여 "사람이 교육이 없으면 배부름과 따뜻함, 안일함을 누릴 수 없다."고 말할 것입니다. 어째서이겠습니까? 세계는 인류의 일대 경쟁의 장입니다. 우수한 자는 승리하고 열등한 자는 패배합니다. 교육은 지식을 계발하고 덕성을 기르며 체력을 단련하여 그 우승권을 차지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만약 교육을 받지 못하여 지식과 기능이 타인에게 미치지 못한다면 제반 권리는 모두 타인에게 점탈당할 것이니, 배부름과 따뜻함, 안일함을 무엇을 통해서 누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까닭에 동일한 인류라도 교육이 있는 경우는 문명족이 되고 교육이 없는 경우는 야만족이 되니, 야만족이 문명족에게 제어를 받는 것은 자연적인 법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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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암흑기의 선각 석주 이상룡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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