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음식이 대구 더위를 잊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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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원 기자]
더위로 유명한 도시에 살다 보면 타 도시 사람들로부터 꼭 듣게 되는 얘기가 있다. 그것도 여름이 다가올 무렵이면 어김없이.
"세상에, 여기도 더운데 대구는 얼마나 더워요?"
'흠, 글쎄요.'
사실 이 '더위'라는 물리적인 자극도 너무나 상대적인지라 타 도시에 사는 이들의 고정관념에 각인된 몸서리쳐지는 무시무시한 더위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 이른 더위가 찾아왔던 날 여기저기서 "대구는 얼마나 더워요?"라는 안부 아닌 안부를 많이 들었다. 그 안부 끝에 '이 정도가 덥다고 느끼면 대구 사람 아니죠'라는 괜한 '더위부심'이 대답으로 올라오는 걸 꾹, 꾹 누르느라 애를 먹었다.
물론 분지 특성상 항아리 같은 대지에 한 번 갇힌 뜨거움은 다른 지형에 비해 잘 사라지지 않는다. 게다가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끈적함을 더하는 이 도시의 더위는 처음 대하는 이들이라면 깜짝 놀랄만큼 변별성이 있긴 하다. 다만 내 경우 나고 자란 곳이어서 적응이 됐고, 견디는 내성이 생겼을 뿐.
더위 대비는 이렇게
아무튼 예년에 비해 이른 더위가 찾아온 올해 같은 해에는 일찍부터 더위에 대한 대비를 해야만 한다. 선풍기를 꺼내서 닦아두고 에어컨 필터 청소나 점검도 서둘러야 한다. 여름밤의 다정한 친구 '죽부인'도 창고에서 꺼내고 인견이나 시어써커 원단의 이불도 식구수대로 챙겨서 채비를 한다. 여기까지는 타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것도 없다.
하지만 예로부터 더위로 악명 높은 도시에 살다 보면 이런 기본적인 것들 외에 건강한 여름 나기를 위한 '섭생' 또한 신경을 써야 하는 법이다. 이를 두고 내 엄마는 "여름 사람은 무조건 잘 먹어야 탈이 안나는 법이다"라는 말로 당위성을 강조하곤 했다.
더운물 샤워보다 찬물의 청량감이 더 몸에 와닿으면 그때부터가 여름이다. 찬물로 샤워를 한 지 벌써 며칠째, 엄마 말대로라면 기나긴 여름을 대비할 보양식을 챙겨 먹어야 할 시점이 온 것이다. 가장 상식적인 것은 뜨거움으로 더위를 다스린다는 '이열치열'이겠지만, 이곳의 사람들은 그 공식에서 조금 더 나아가 '매운 음식'으로 '그까짓 더위'에 맞서곤 한다.
고추기름이 둥둥 뜬 '육개장'이나 '닭개장'을 먹거나, '매운 갈비찜'을 먹으며 굵은 땀방울을 흘리는 것이다. 그런 다음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을 쐬면 몇 배의 시원함이 절로 느껴짐이다. 물론 이 음식들을 꼭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먹는 것은 아니지만 대구를 대표하는 '10미'에 유난히 매운 음식이 많이 들어 있는 것을 보면 더위를 매운 음식으로 한 번 물리쳐보겠다는 심산이 어느 정도는 있지 않았을까, 합리적인 추론도 해보게 된다.
매운 양념은 듬뿍, 왜냐면요
'매운 갈비찜'을 처음 먹어본 건 남편과의 연애시절이었다. 당시 남편이 일하던 사무실이 '매운 갈비찜' 골목과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한 번도 갈비찜을 맵게 먹는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빨간 양념범벅이 된 채 양푼이에 담겨 나온 '매운 갈비찜'이 내겐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고기를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늘이 많이 들어간 시뻘건 양념에 밥을 비벼 먹으니, 땀을 잘 흘리지 않는 내 콧잔등에도 금세 땀빵울이 맺히는 게 아닌가. "맛있재?"를 연발하던 남편의 말갛던 얼굴과 '맵찔이'에 가까운 둘이 앉아 입안이 얼얼해질 정도의 매운 갈비찜을 아무 일 없다는 듯 먹던 풍경이 가끔은 그립다. 그때도 여름이었던가.
사 먹는 음식을 즐기진 않으므로 부드러운 식감의 한우갈비를 사다가 아주 오랜만에 '매운 갈비찜'을 하기로 한다. 해놔 봤자 또 혼자만의 식탁이 될 게 뻔하지만 그래도 기나긴 여름을 별 탈 없이 지나가려면 '여름사람 모드'로 정비를 해놓아야 하기에 품을 아끼지 않을 참이다.
이곳의 '매운 갈비찜'엔 마늘도 듬뿍, 매운 청양고춧가루도 아낌없이 듬뿍이어야 한다. 춥고 더운 지방의 식음료들이 보다 자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 어쩌면 생존과도 관련이 있기에 그런 건 아닐지. 양푼이에 담아야 제 맛이겠지만 부족한 대로 집에 있는 널찍한 그릇에다 먹기 좋게 담아본다. 슬쩍 양념을 기미 해보니 얼추 비슷하게는 된 듯하다.
▲ 매운 갈비찜 |
ⓒ 김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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