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인어공주가 동심 파괴? 어른들이 틀렸다
[이진민 기자]
▲ <인어공주> 주인공 '에리얼'을 연기한 할리 베일리 |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
말 많던 '흑인' 인어공주가 찾아왔다. 2019년 디즈니가 <인어공주> 실사 영화 제작을 발표한 지 4년 만이다. 1989년에 제작된 애니메이션은 안데르센의 원작과 다르게 인어공주의 주체성을 보여주기 위한 OST < Part of your world >와 행복한 결말로 변주를 주었다면, 2023년의 영화에는 과감히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였다.
온라인에서 캐스팅을 반대하는 '#Not my ariel(내 에리얼이 아니야) 해시태그 운동이 벌어질 정도로 반발은 거셌다. 그리고 지난 5월 24일, 영화 개봉 이후 '흑인 인어공주가 어린이들의 동심을 파괴한다'는 평이 쏟아졌다. <겨울왕국2> 개봉 때는 노키즈존 영화관을 건의하던 어른들이 <인어공주> 앞에서는 동심을 찾는다. 과연 누구의 동심이 깨졌다는 걸까?
아이들의 다름, 자부심이 되다
디즈니는 아이들의 동심을 깨기 위해 흑인 인어공주를 캐스팅한 걸까? 아니다, 그들은 단지 '다양성'을 추구할 뿐이다. 수동적인 여성상과 백인 캐릭터만 내세운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해 디즈니는 실사화 영화와 애니메이션 모두 편견을 깬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 "그녀는 흑인이야!(She's a black girl)", "그녀는 나랑 닮았어!(She's like me)" 등 환호하는 아이들 |
ⓒ TikTok |
디즈니가 선보인 다양성은 아이들의 다양성까지 포용하였다. 2022년 <인어공주> 예고편 공개 후, 틱톡과 트위터 등에서 어린 흑인 소녀들이 인어공주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진짜 인어공주가 흑인이야?"라며 환호하는 영상들이 조회수 수백만 회를 기록하였다. 미디어가 소수자성을 주류 캐릭터로 내세우자 줄곧 차별당한 아이들의 '다름'이 새로운 자부심이 된 것이다.
▲ 다양한 인종의 인어공주가 그려진 티셔츠 |
ⓒ amazon |
이제, 아이들은 흑인 인어 공주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다. 미국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서는 흑인 인어공주가 그려진 티셔츠, 피규어가 베스트 셀러를 기록하고 있고 공식 예고편 영상은 2천만 뷰 돌파 직전이다(5월 28일 기준). "모든 흑인 및 유색의 소녀와 소년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고 싶다"는 인어공주 역 할리 베일리의 말처럼 흑인 인어공주는 새롭게 자라나는 동심의 일부다.
편견 부추기는 어른들의 '동심'
▲ <인어공주> 네이버 평가 |
ⓒ Naver |
특히 '아이들이 원작과 달라 실망하였다', '인어공주가 예쁘지 않아서 아이들이 놀랐다'는 식의 부정적인 평가에는 '아이들'이 언급되었다. 하지만 이는 <인어공주>의 미스 캐스팅을 뒷받침하는 진실한 아이들의 반응이 아닌 어른들이 만든 차별적인 세상을 여과 없이 드러내는 반응이다.
만일 백인 캐릭터가 등장하는 원작과 달라 아이들이 실망하였다면, 이는 지금껏 백인 캐릭터만을 아동용 작품에 등장시켰던 어른들의 편향된 시선이 아이들에게 반영된 셈이다. 혹은 아이들이 주연 배우의 얼굴이 마음에 안 든다고 말하였다면, 상대방의 외모를 함부로 지적하거나 평가해도 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끈 반응일 것이다.
설령 아이들이 흑인 공주를 싫어한다 해도, 어른들은 아이들의 불호에 동조하는 것이 아닌 다양성과 다름을 존중하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우리들의 동심에는 백인 공주만 살아있지만, 아이들의 동심에는 다양한 인종, 문화권의 공주가 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흑인 인어공주를 불편하게 느끼는 건 변화한 시대를 수용하지 못하고 정체된 옛날 옛적 동심일지 모른다.
변하지 않은 건 인어공주의 용기
원작과 1989년의 애니메이션, 그리고 2023년의 영화까지 조금씩 변화한 극 '인어공주'에서 변하지 않은 건 인간 세계에 대한 인어공주의 동경과 존중이다. 인간이 자신의 어머니를 죽였다는 아버지의 말에도 "그 나쁜 인간과 나머지 사람들이 모두 똑같지 않아요!"라고 답하는 인어공주. 그가 동경하는 건 새로운 모험을 하게 될 육지와 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실사 영화 <인어공주>에서는 더욱 용감해진 인어공주와 그의 모험에 반한 왕자,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포용하는 육지와 바닷세계가 나온다. 세상의 일부가 되고 싶다며 노래하는 인어공주 앞에선 모든 반대도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 그가 꿈꿨던 인간 세계의 따뜻함이 2023년에 깨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한상혁 찍어내고 네이버·다음 손보기? '관제 포털' 시대 오나
- 쿠팡 택배 20일 일하고 1100만 원? 실상은 이렇습니다
- 전현희 "감사원 표적감사 실패, 윤 대통령 책임져야"
- 육백마지기 개발에 앞서 우리가 알아야할 것들
- [사진으로 보는 일주일] "전두환 시대로 되돌아간 민주주의"라니
- 프랑스어 문맹이 낳은 9만 원짜리 식사
- 인천 쌀로 만든 라면, 인도·영국·미국 사로잡다
- '동료 성추행 의혹' 부천시의회... 이번에는 갑질·폭언 논란
- '담배유해성분 공개' 법안 또 무산되나... 기재부 반대 '암초'
- 인도 열차 탈선 후 맞은편 열차와 충돌, "사망자 최소 207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