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존윅4·라스베이거스·크리스찬디올'을 관통하는 랜드마크
얼마 전 서울시가 하늘공원에 서울링(Ring)을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링은 원형 전망 관람차다. 런던 템즈강변의 런던 아이(London Eye)나 빈 프라터공원의 페리스 휠(Ferris wheel)과 같은 원형 전망관람차를 하늘공원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서울링이 세워지면 한강의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서울시는 기대한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서울링은 표절 논란에 휘말렸고 건축가, 조각가 등 일부 전문가들은 실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서울링 논란’은 실현 여부와 관계없이 랜드마크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은 딱히 내세울 만한 랜드마크가 없었다. 남산 N타워는 예술성이나 시대성 모든 면에서도 크게 모자란다. 하지만 2016년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타워(555m)가 들어서면서 서울의 랜드마크 갈증이 조금 해소된 듯하다. 롯데월드타워의 전망대 ‘서울 스카이’에 올라가 보면 모든 것이 설명된다.
세계 주요 도시의 랜드마크를 일람해보자. 뉴욕 자유의 여신상, 런던 빅밴, 베를린 부란덴부르크 문, 파리 에펠탑, 로마 콜로세움, 바르셀로나 성모교회, 프라하 프라하성,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피사 사탑(斜塔)…. 도쿄는 웬일인지 이거다 할만한 게 떠오르지 않는다. 메이지 진구(神宮) 정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도쿄타워라고 하기에도 미흡하다.
어떤 도시의 조형물이나 빌딩이 세계적 랜드마크로 자리 잡으려면 어떤 조건과 과정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시대성·예술성·기능성이 삼위일체가 되어야 한다. 시간의 파도 속에서 문화예술에 지속해서 등장하고 문화상품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스토리텔링의 옷을 겹겹이 입어야 한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다니다 보면 세상의 흐름에 민감해진다. 버스 광고는 특히 가독성이 높다. 얼마 전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액션 영화 ‘존 윅 4’가 서울 시내를 휘젓고 다녔다. 주인공이 권총을 겨누고 있는 ‘존 윅 4’ 광고의 뒷배경은 에펠탑이었다. 에펠탑 후광으로 인해 ‘존 윅 4’가 파리를 배경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에펠탑은 ‘존 윅 4’처럼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는 영화들에 등장한다.
얼마 전 TV에서 제목에 끌려 ‘시크릿 세탁소’라는 영화를 보았다. 10여분 지나고 보니 오래전에 본 영화였다. 어떻게 영화 제목을 까맣게 잊을 수 있을까. 메모하지 않아서일까. 어이없어 하는 데 영화에서 라스베이거스 장면이 나왔다.
주인공이 딸과 손녀들을 데리고 라스베이거스의 한 호텔에 들어간다. 창가로 다가가 손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저기 에펠탑 보이니?”
“네? 보여요”
“꼭 파리 같지?”
“케일런, 저기 봐라. 밤새 불을 켜둬서 엄청 예쁘단다.”
에펠탑 축소형이 세워진 곳은 라스베이거스 중심가인 스트립(strip)가다. 이곳은 고대 이집트, 고대 로마, 프랑스 파리, 미국 뉴욕 등을 테마로 조성되었다. 단연 눈에 띄는 게 에펠탑이다. 도박 도시에서 여행객들은 세계적 랜드마크를 축쇄로 경험하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마르크 샤갈(1887~1985). 벨라루스가 고향인 그는 파리로 와서 화가로 꽃을 피웠다. 파리에서 피카소, 브라크 등과 함께 입체파 운동을 이끈 샤갈. 그의 작품에는 배경으로 파리가 자주 등장한다. 그중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이 ‘에펠탑의 신랑 신부’다. 신랑은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몸에 밀착해 있다. 신랑의 입술이 신부의 귓불에 닿는다. 신랑의 두 발은 둥 떠 있다. 인간과 동물이 하나가 되는 꿈같은 초자연적 상황.
유대인 샤갈은 정통파 유대교를 믿었다. 정통파 유대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혼이 동물에게로 들어간다고 믿는다. 이런 종교적 믿음으로 인해 그의 작품에는 말, 닭, 양, 염소 같은 동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 그림의 중심에 에펠탑이 자리한다.
‘에펠탑의 신랑신부’는 샤갈이 히틀러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 가기 직전인 1938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신부는 그의 아내인 벨라. 이 작품은 퐁피두 센터 소장품이다. 1913년 작 ‘창문을 통해 본 파리’에도 에펠탑이 중심부를 차지한다. 샤갈의 작품을 볼 때마다 우리는 에펠탑 환상에 빠지게 된다.
사무엘 베케트의 불후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 베케트에게 1969년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작품이다. 나는 서울 산울림극장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차를 두고 두 번 보았다. 블라디미르가 에스트라공과 말을 주고받는다.
에스트라공 : 듣기 싫다! 이놈의 신이나 좀 벗겨줘.
블라디미르 : 손을 마주 잡고 에펠탑 꼭대기에서 뛰어내렸겠지. 맨 처음에 뛰어내리는 자들 틈에 끼어서 말이야. 그땐 제법 풍채도 좋았는데. 하지만 이젠 너무 늦었어. 이젠 우리 같은 건 올라가지도 못하게 할걸. (에스트라공은 구두를 벗으려고 기를 쓴다) 뭘 하는 거야?
에펠탑은 이렇게 회화와 문학에서 불쑥불쑥 등장한다.
그렇다면 음악에서는? 뮤지컬 영화 ‘맘마 미아’에 나오는 노래 중의 하나가 ‘우리들의 지난 여름(Our last summer)’이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 샘 마이클이 여주인공 도나와 보냈던 즐거웠던 시간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나온다.
“센 강을 따라 에펠탑 옆을 걸었던 지난 여름을 나는 모두 기억하네.”
에펠탑은 곧 사랑과 낭만의 이음동의어(異音同義語)다.
내가 좋아하는 밴드 중의 하나가 ‘핑크 마티니(Pink Martini)’다. 핑크 마티니 결성 20주년 기념 앨범이 ‘심파티크’다. 이 앨범 표지 이미지가 에펠탑이다. 소년 세 명이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있고, 코치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이를 지켜본다. 저 멀리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걸어온다.
소년들이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곳은 트로카데로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 보는 에펠탑이 가장 아름답다. 연인들 뒤쪽으로, 에펠탑이 마치 안개 기둥처럼 서있다. 앨범 ‘심파티크’에서 에펠탑은 몽환적이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삼으면 모든 상품은 최고급이 된다. 크리스찬 디오르는 종종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패션쇼를 한다. 모델들이 광장을 런웨이 삼아 워킹을 하면 그 뒤로 에펠탑이 잡힌다.
전망탑인 에펠탑의 매력은 미학적으로도 아름답고 기능적으로 뛰어나다는 것 외에도 손과 발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위치에서든 철골 구조를 만져보면 천재 엔지니어의 통찰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구나 에펠탑을 경험하면 에펠탑이 잊히지 않는다.
한번은 지하철 9호선을 탔는데, 앉아 있는 젊은 여성의 귀에서 금빛 에펠탑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파리 바게트의 이미지는 에펠탑이다. 에펠탑이 비닐백에 흔들거리며 이 시간에도 전국을 활보한다. 에펠탑은 8천㎞ 떨어진 파리에 있지만 우리네 일상에 스며든 지 오래다. 그러니 누군들 에펠탑에 올라가 보고 싶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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