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호떡값 500원

김철오 2023. 6. 3.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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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목적지 없는 산책에서 관악산 밑자락 주택가 골목길로 들어갈 때쯤 들려온 두 청년의 대화를 그냥 흘려 넘길 수가 없었다. “그 가게 봤어? 호떡값이 500원이야.” 서울에서 500원짜리 호떡이라니…. 1500원을 잘못 봤던 것은 아닐까. 두 청년이 걸어온 골목길로 조금 더 들어가니 간이 의자 3개를 놓은 가게에서 할머니가 기름을 두른 철판에 호떡을 굽고 있었다.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벽에 붙은 차림표다. 조금 전 지나간 두 청년의 말대로였다. ‘호떡 하나에 500원.’ 그 옆에 나열된 음식값도 서울 물가와 동떨어진 것은 마찬가지였다. ‘떡볶이 한 접시에 2000원, 어묵 한 꼬치에 500원, 튀김 3개에 1000원.’ 초등학교 주변 분식집답게 슬러시를 팔았지만, 기계는 없었다. 할머니만 아는 시간만큼 냉동실에 열려 살얼음을 낸 과일향 음료수를 척척 흔들어 종이컵에 담아내는 슬러시는 1000원이었다. 20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차림표에서 그나마 낯익은 가격의 음식은 3000원짜리 순대뿐이었다.

“할머니, 호떡값이 정말 500원이에요?” “맛있어요. 하나 잡숴봐요.” 할머니는 방금 구워낸 호떡 한 장을 반으로 접어 종이컵에 담아 건네줬다. 500원짜리의 타산을 맞추려면 소박한 재료를 사용했을 텐데, 할머니의 호떡은 다른 가게와 비교해도 맛과 양에서 별로 빠지는 게 없었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조금 적은 설탕의 양이었다. 뜨거운 호떡 속에서 녹은 설탕물이 뚝뚝 떨어져 입천장과 입가를 데는 통증을 500원짜리 호떡에서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그 아쉬움도 서울 한복판에서 20년 전 가격의 호떡을 찾은 행운과 맞바꿀 것은 아니었다.

‘국민 간식’들이 일제히 몸값을 올려 우리 곁에서 조금은 서먹하게 멀어진 건 지난겨울의 일이다. 서울에서 호떡값은 1000원에서 1500원으로, 조금 더 좋은 목에 차린 가게에선 2000원으로 올랐다. 붕어빵 가격에 합의하는 과정은 호떡값을 논의할 때보다 요란했다. ‘2개당 1000원’과 ‘3개당 2000원’ 사이에서 팽팽한 가격의 줄다리기가 벌어졌다. 장사를 포기한 가게와 노점이 속출한 틈에 어느 상인은 1000원짜리 붕어빵을 팔며 승부수를 던졌다.

밀, 달걀, 우유부터 식용유에 쓰이는 콩까지 거의 모든 식자재 가격이 상승했다. 공급망 붕괴와 작황 부진을 동시에 겪은 설탕값은 지난 5월까지 최근 12년 상승률이 87%로 치솟았다. 호떡, 붕어빵은 물론이고 빵,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수 가격을 일제히 끌어올린 설탕값 상승은 ‘슈거플레이션’(설탕 인플레이션)으로 불린다.

그 혹독한 겨울을 견뎌내고 늦봄에서 초여름으로 넘어갈 무렵 서울 골목에서 찾아낸 500원짜리 호떡은 반갑다 못해 고마웠다. “할머니. 이렇게 팔아도 남는 게 있어요? 500원짜리 호떡을 맛본 게 10년도 넘은 것 같아요.” “오늘만 그 말을 열 번 넘게 들었어.” 호떡과 어묵을 2개씩 먹고 2000원을 내밀자니 염치가 없어 1000원을 더 얹어 돈통에 넣고 떠났다.

며칠 뒤 퇴근길에 다시 찾아가니 할머니는 단박에 알아보고 “왜 돈을 더 내고 갔냐”고 면박을 줬다. 그렇게 두세 번을 더 찾았을 때 할머니는 가격을 유지하고 장사하는 ‘비법’을 들려줬다.

“500원, 1000원짜리 먹는장사에서 월세로 55만원을 내면서 세 끼니를 먹을 돈이라도 벌려면 여기저기 돌아다녀야지. 저기 지하철역 10번 출구 앞에 있는 채소 가게가 제일 싸. 나이 칠십 넘은 할머니가 장사한다고 매일 찾아가니 싸게 주는 날도 있고, 덤을 주는 날도 있어. 고구마, 파, 양파, 당근은 모두 거기서 사.”

부지런하게 발품을 파는 할머니에게도 오징어 튀김은 고민거리다. “오징어값이 너무 올랐어. 그래도 어떡해. 꼬마들이 찾으니 팔아야지. 오징어 트럭이 종종 우리 가게에 오는데, 그 아저씨랑도 십몇 년을 알고 지내니 나에게는 덜 남기고 팔아줘. 내가 살아야 아저씨도 푼돈이나마 손에 쥘 테니까. 서로 돕고 도움받으며 사는 거지. 잘 버티자고 서로 다독이고 격려하면서….”

할머니가 수십년 장사를 지탱해온 또 하나의 힘은 지역사회에서 끈끈하게 쌓아온 신뢰와 공생 의지였다. 각자도생을 일상화한 세상이 호떡값 500원을 지켜줄까. “가격을 200원이라도 올려보세요.” 할머니는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오늘만 그 말을 열 번 넘게 들었어.”

김철오 온라인뉴스부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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