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와 관능으로 관객 유혹하는 뮤지컬 ‘시카고’
배금주의·황색언론 부패상 드러나
美 브로드웨이 최장기 공연 작품
영화로도 잘 알려진 뮤지컬 ‘시카고’는 1920년대 여죄수들이 수감된 시카고 쿡카운티 교도소를 배경으로 한다. 불륜관계인 남편과 여동생을 살해한 보드빌 배우 벨마 켈리 그리고 자신의 정부를 살해한 코러스걸 출신 록시 하트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두 미녀 죄수를 담당한 교활한 변호사 빌리 플린이 얽히면서 배금주의와 황색 언론 등 부패한 미국 사회상이 드러난다.
‘시카고’는 현재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가장 오래 공연 중인 뮤지컬이다. 지난 4월 ‘오페라의 유령’이 막을 내리면서 그 영예를 차지하게 됐다. 1975년 처음 뮤지컬로 만들어진 ‘시카고’는 1996년 리바이벌된 이후 27년째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2021년 브로드웨이 25주년 기념 투어가 기획됐다가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지난해 10월에야 시작됐는데, 8개월간의 북미 투어를 마치고 한국에 날아와 지난달 27일부터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8월 6일까지)에서 공연 중이다. 오리지널 프로덕션의 내한공연은 2003년, 2015년, 2017년에 이어 네 번째. 국내에서 이뤄진 ‘시카고’ 공연은 2000년 초연 이후 올해 16번째 시즌이며, 조만간 누적 공연횟수 1500회와 누적 관객 150만명을 돌파할 예정이다.
뮤지컬 ‘시카고’는 1926년 여성 극작가 모린 달라스 왓킨스(1896~1969)가 쓴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했다. 왓킨스는 기자 시절 취재했던 2건의 살인 사건에서 영감을 받아 희곡을 썼다. 1926년 브로드웨이에서 연극으로 공연된 ‘시카고’는 비평과 흥행 모두 성공했다. 그리고 1927년 흑백무성영화 ‘시카고’, 1942년 여주인공의 이름을 딴 흑백영화 ‘록시 하트’ 역시 모두 히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카고’는 오늘날 브로드웨이의 전설적 안무가 겸 연출가 밥 포시(1927∼1987)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포시는 뮤지컬, 영화, TV 부문을 오가며 재능을 뽐낸 ‘쇼비즈니스의 제왕’이다. 1973년 한 해에 영화 ‘카바레’로 아카데미상을, 뮤지컬 ‘피핀’으로 토니상을, 영화배우 라이자 미넬리의 TV 스페셜 ‘라이자 위드 Z’로 에미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포시는 13살의 어린 나이에 나이트클럽 무대에 설 만큼 춤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보드빌, 벌레스크 그리고 스트립쇼를 공연하던 나이트클럽의 어두우면서도 자유분방한 분위기는 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954년 뮤지컬 ‘파자마 게임’과 1955년 뮤지컬 ‘댐 양키스’의 안무로 잇따라 토니상을 받은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손꼽히는 안무가 겸 연출가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그의 아내인 뮤지컬 스타 그웬 버돈은 남편의 끝없은 여성 편력에도 불구하고 평생을 든든한 조력자로 남았다. 두 사람의 관계는 지난 2019년 미국 케이블방송 FX에서 드라마 ‘포시/ 버돈’으로 만들어졌으며, 버돈 역의 배우 미셸 윌리엄스는 이듬해 골든글러브 미니시리즈 부문 여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포시 스타일’로 불리는 포시의 안무는 고난도 테크닉을 바탕으로 관능적인 움직임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뮤지컬 ‘시카고’에서도 볼 수 있듯 엄지와 중지를 튕기는 것, 어깨와 엉덩이를 비스듬히 돌리거나 흔드는 춤, 중절모와 흰 장갑을 이용한 제스처,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검은 팬티스타킹, 점잔빼는 듯한 걸음걸이 등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뮤지컬 ‘시카고’는 버돈이 포시에게 왓킨스의 동명 희곡을 추천하면서 시작됐다. 리허설 중 포시의 심장수술로 개막이 미뤄지기도 했지만 ‘시카고’는 1975년 초연 당시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았다. 버돈이 여주인공 록시로 출연했으며, 버돈이 1년 반 후 하차하자 포시의 제자 겸 애인 앤 레인킹이 투입됐다. 하지만 ‘시카고’는 두 달 먼저 무대에 오른 뮤지컬 ‘코러스 라인’의 폭발적인 인기에 밀렸다. 토니상도 ‘코러스 라인’이 9개나 가져갔고, ‘시카고’는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됐지만 하나도 받지 못했다. 어떤 작품보다 ‘시카고’에 애착을 가졌던 포시는 실망이 컸다.
포시가 1987년 심장마비로 죽은 후 잊혀가던 뮤지컬 ‘시카고’는 1996년 월터 바비가 연출을, 레인킹이 안무를 맡은 콘서트 버전으로 특별 공연됐다. 1975년 초연 대본을 토대로 포시 스타일의 안무를 재현했지만 무대세트나 의상은 완전히 다르다. 콘서트였던 만큼 무대 위에 14인조 밴드를 배치한데다 포시가 좋아하던 검은 색 의상을 채택했다. 그런데, 이 버전이 평단과 대중의 환호를 이끌어내자, 약간의 수정을 거쳐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르게 됐다. 록시 역으로 적당한 배우를 찾지 못해 당시 46세의 레인킹이 한동안 출연하기도 했다. 리바이벌된 뮤지컬 ‘시카고’는 이듬해 토니상 시상식에서 연출상, 안무상, 여우주연상 등 6개를 가져갔다.
‘시카고’의 성공에 힘입어 1999년 브로드웨이에서 포시를 기리는 트리뷰트 뮤지컬 ‘포시’가 만들어졌다. 버돈이 예술자문을 맡고 레인킹이 공동 연출 겸 안무를 맡은 ‘포시’는 토니상 7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돼 최우수작품상 등 3개를 받았다. 참고로 버돈과 레인킹은 아내와 애인이라는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사이가 좋았다. 포시의 재능을 사랑했던 두 여자는 포시 사후 그의 유산을 알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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