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양실에서] 흑암 가운데서도

2023. 6. 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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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늘 매우 독특한 한 시편의 말씀을 빌려 이 칼럼을 쓰고 싶습니다.

다만 비슷한 배경 가운데 쓰인 다른 시편들과는 달리 이 시편은 결론에 가서도 아무런 빛을 붙잡지 못한 채 끝나고 맙니다.

이러한 아픔 가운데서 저는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말씀이 바로 시편 88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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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암실’을 통해 드러나는 기이한 빛을 발견할 수 있다. 픽사베이


저는 오늘 매우 독특한 한 시편의 말씀을 빌려 이 칼럼을 쓰고 싶습니다. 바로 시편 88편의 말씀입니다. 시편 88편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에서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는 한 시인의 기도입니다. 다만 비슷한 배경 가운데 쓰인 다른 시편들과는 달리 이 시편은 결론에 가서도 아무런 빛을 붙잡지 못한 채 끝나고 맙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시편을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상황이 우리 앞에 종종 나타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저에게 성도들에게 닥친 아픔의 소리가 더욱 뚜렷하게 들려왔습니다. 그중 하나는 전혀 예상치 않았던 가족의 죽음으로 인해 생겨난 절망의 소리였습니다. 또한 사업 현장에서 생긴 뜻밖의 사고로 인해 들려온 안타까움의 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더 이상 피해갈 수 없는 삶의 한계를 받아들임으로 인해 나온 체념의 소리였습니다. 이러한 아픔 가운데서 저는 우리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싶었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말씀이 바로 시편 88편입니다. 이 말씀에서 주시는 교훈 세 가지를 우리 성도님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첫째, 믿는 자들에게도 흑암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성경은 현재 모든 피조물이 탄식하고 있으며, 우리 또한 같은 피조세계 안에 살면서 함께 탄식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롬 8:22~23) 이 말은 우리에게도 충분히 병이 생길 수 있고, 사고가 날 수 있으며 어려운 일이 닥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주님으로 따르고 있는 예수님께서도 아픔과 고난의 길을 친히 걷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충분히 흑암이 찾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고 어려움 중에 우리를 도와주시는 주님의 은혜도 새로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 기도는 우리의 솔직한 표현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시편 88편의 표본을 통해 우리도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슬프면 슬픈 대로, 아프면 아픈 대로,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대로 솔직히 표현하며 나올 수 있다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예를 갖추는 것이 아니고, 나의 모습 그대로 그분 앞에 나오는 것이다(Praying is not being nice before God but being open before God)”라고 강조합니다. 이 시편에서 시인은 분명 넋두리하고 있지만 하나님께 넋두리하고 있습니다. 불평과 원망도 쏟아내고 있지만 하나님께 쏟아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의 이러한 표현까지도 기도로 받아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마지막으로, 흑암 가운데서 우리는 주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시편의 마지막 단어는 ‘흑암’입니다. 다른 시편과는 현저하게 다른, 전혀 예상치 못한 마무리입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하나님의 메시지가 된다면 우리에겐 분명 흑암 가운데서만 찾을 수 있는 빛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시 139:11~12)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 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을 때는 반드시 암실이 필요했습니다. 암실에서만 필름에 찍힌 형상을 사진으로 인화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암실’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는 그분의 빛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어두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주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려 보십시오. 앞을 내다볼 수 없을지라도 한 걸음 한 걸음을 주님께 위탁하며 걸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결단코 놓지 않으실 것입니다.

김승욱 목사
할렐루야교회
국민일보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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