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띄운 ‘자녀죽음을 마주한 신앙인 부모님께’

신은정 2023. 6. 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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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무관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단장지애(斷腸之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묘사하곤 한다. 그만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상담 전문가는 자녀의 죽음을 마주한 신앙인 부모에게 각자의 시간표대로 충분히 슬퍼할 애도의 시간을 가지라고 조언한다.

자녀와 건강한 이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김기철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 심리 상담학 교수와의 일문일답이 슬픔에 잠긴 신앙인 부모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신앙인 유가족에게 건강한 이별은 무엇일까.

‘왜 나에게 이런 고난이 닥치는가?’ 우리는 왜냐고 물으며 누구 탓인지 알고자 하지만 쉽고 명쾌하게 책임 소재가 가려지지는 않는다. 시련 속에서 무언가 답을 얻으려는 시도는 고통에 대처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을 겪으며 납득할만한 어떤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칫 이 과정에서 자신의 마음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현실을 외면하기 쉽다. 이로 인해 건강한 이별을 하지 못할 수 있다.

건강한 이별을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울며, 슬퍼하는 일’이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단장지애(斷腸之哀), 즉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묘사한다. 건강하지 못한 상실 대처 중 하나는 애도를 생략하는 일이다. 자식을 잃은 고통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일은 ‘슬픔’이고 그 고통을 밖으로 드러내는 일은 ‘애도’이다. 애도는 상실의 아픔과 슬픔으로 인한 다양한 행동들도 포함하고 어색함, 그리움, 미안함, 절망감, 무의미함 등의 정서도 포함하지만, 주로 ‘슬퍼함’이라고 할 수 있다. 슬픔을 덮거나 숨기거나 억누르기보다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아파하고 슬퍼할 때 언제까지 애도할 건지 따져 묻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애도에는 시간표가 따로 없고 저마다 다르다. 그래서 그 사람만의 방식으로 그 사람만의 기간 동안 슬퍼하고 아파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이별은 자녀 상실에 대한 건강한 대처라고 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하면, 건강한 이별은 자식을 온전히 떠나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건강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식을 기억하며 마음에 품는 일이다. ‘내 마음과 열정’이 자식에게 집착된 채로 굳어져 버린다면, ‘내 마음과 열정’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자식을 잃은 경험이 ‘나’를 잃어버리는 경험이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나의 마음과 열정’을 다른 사람에게 온전히 전할 수 없기에 다른 사람들과도 온전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 대인관계를 회피하고 세상과 단절하며 나 자신에게로 움츠러들 수 있다. ‘내 마음과 열정’이 자식에게 달라붙은 채로 냉동되는 셈이다. 자식에게 달라붙은 채 얼어붙은 ‘내 마음과 열정’을 뜨거운 눈물과 꿈틀거림으로 녹여내야 한다.

이렇게 순식간에 마비된 마음과 열정을 녹이는 과정이 애도이다. 이러한 애도 작업은 자식을 온전히 떠나보내고, 자식과 관계를 맺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과정이다. ‘철사 코끼리’라는 동화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는 코끼리가 죽자 ‘거대한 철사 코끼리’를 만들고 그 코끼리를 힘겹게 끌고 다니며 죽은 코끼리가 곁에 있음을 느끼고 싶어 했다. 그런데, 그 철사 코끼리를 품에 안아도 따뜻하지 않았고 죽은 코끼리와도 전혀 닮지 않았다고 느끼곤 했다. 이제 주인공의 손은 철사에 찔려 온통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다, 결국 철사 코끼리 끌고 다니는 일을 멈추고 철사 코끼리를 대장간 용광로에 넣어 대장장이의 도움으로 ‘작은 종’으로 만든다. 드디어 주인공은 죽은 코끼리에서 벗어나 살게 되고 바람불면 소리를 내는 ‘작은 종’을 통해 죽은 코끼리가 곁에 있음을 느끼게 된다. 애도란 ‘거대한 철사 코끼리’를 ‘작은 종’으로 만드는 과정이다. 철사 코끼리를 끌고 다니느라 점점 사람들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철사 코끼리 때문에 아무도 곁에 다가오지 않는 경험을 하던 주인공은 드디어 새로운 방식으로 죽은 코끼리와 관계 맺는 법을 찾아내어 자기 자신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이 과정에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애도의 사건이 아니라 애도의 여정이라고 부른다. 신앙인은 애도의 여정에서 동반자가 필요하다. 성령 하나님을 동반자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가면과 가식을 벗고 자신의 진면목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마음껏 슬퍼하고 아파해야 한다. 하나님 탓으로 돌리며 원망할 수도 있고 하나님께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거칠게 몰아세우거나 따지기도 하며 하나님 앞에서도 충분한 애도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애도하며, 자신이 잃은 것들과 새롭게 관계 맺는 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둘째, 건강한 이별을 위해서는 ‘말하며, 의미를 찾아내는 일’이 필요하다. 기억은 선택이다. 무엇을 기억할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떠나보낸 자녀와의 좋은 경험들을 떠올리며, 먼지 쌓인 채 가려진 의미 조각들을 찾아내야 한다. 자녀와 있었던 소소한 일들을 떠올리고 나누면서 그 ‘작은 이야기’들의 몸집을 키워야 한다. 이별이라는 절망이 ‘거대한 이야기’가 되어 자녀와의 관계 경험을 온통 뒤덮지 않도록 밝은 ‘작은 이야기’들이 점차 힘을 얻어야 한다. 어두움을 저주하는 일에 매진하기보다는 빛을 드러내는 일로 밝게 만드는 것이다. 그럴 때 울다가 웃고 웃다가 우는 일이 일어난다. 슬픔이 사라질 수는 없지만, 그 아픈 현실에 비견될 수 있는 좋은 기억도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작은 이야기’들이 힘을 얻어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슬픔에 잠식당하지 않고 슬픔을 안고 갈 힘이 생길 수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며 숨겨진 하나님의 손길과 은총의 흔적을 찾아낸다. 고통 가운데 의미를 찾아 더듬거리는 우리의 손을 하나님께서 살며시 잡아주며 도와주실 것이다. 빅터 프랭클이 말하듯 사람은 자연스럽게 의지를 가지고 의미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어떤 시점에서 그 의지가 흐릿해질 수 있다. 그 흐릿함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단편적인 해결로서가 아니라 계속 유지되는 모호함과 긴장감 속에서 의미를 경험하고 의미 안에 머물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에 기초하여 하나님만이 아시는 ‘큰 의미’에 참여하게 된다. 내가 내 의지를 가지고 의미를 추구하는 과정의 끝자락에서 하나님의 ‘큰 의미’가 나에게 다가오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세상 말로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한다. 신앙인은 이와 달라야 할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세 개의 자아가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나인 부모, 미래의 나인 자녀, 현재의 나가 있다. ‘나’를 하나만 가지고 살기도 만만치 않은데, 세 개의 나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한국인이다. 이 세 개의 나는 ‘나’ 안에서 마치 하나처럼 묶여 있다. 이런 이유로 자녀를 잃은 부모는 ‘나’를 잃은 것이다. ‘나’를 잃고 ‘나’ 없이 내가 살아가고 있으니 죽은 듯 살아있는 것이고 살아있는 듯 죽은 것이다. 누구도 이러한 마음을 제대로 가늠할 수 없다.

그래서 자녀를 잃은 신앙인은 결국 하나님을 주목한다. 하나님 눈을 바라보고 하나님 입을 바라본다. 그때 하나님의 눈에 맺힌 눈물을 보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깊은 한숨을 볼 수 있다.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누가 온전히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 심정은 아무에게나 토로 될 수 없다. 심정 토로를 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사람이 온전히 믿을만한 사람이고, 나와 한편인 사람이며, 나와 가까운 사람이어야 한다. 하나님이 바로 그분이시다. 자식 잃은 하나님은 자식 잃은 부모 심정을 읽어주실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식의 죽음이 누군가 죽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를 대신한 죽음으로 이해될 때에, 대속의 죽음으로 자식을 잃은 하나님과 마주하며 함께 울고, 함께 한숨을 나눌 수 있다. 그러면, 내 심정이 하나님 심정이 되고 하나님 심정이 내 심정이 된다. 하나님과 심정을 나누며 우리 영혼의 깊은 상처가 만져진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이끄시는 방식으로, 즉 우리의 지각이나 경험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의외적인 방식으로 이 상처가 다루어지며 아물 수 있다. 자녀를 잃은 부모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그 심정을 고스란히 하나님께 쏟아놓고 하나님의 심정과 만나야 한다.

-자녀(가족)의 죽음을 경험한 유가족을 위해서 교회 등 교계가 무엇을 해야 하나. 더 나아가 국가나 사회적으로 필요한 도움이 무엇일까.

우리는 천재나 인재, 고독사, 과로사, 생활고나 병리적인 집단 문화로 인한 자살 사고, 고도화된 기술 문명으로 인한 예측할 수 없는 사고 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고를 당하거나 외상(트라우마)을 입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교회는 더 온전한 돌봄을 위해서 개인 돌봄에만 머물지 말고 사회 돌봄과 공동체 돌봄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사후 돌봄뿐만 아니라 사전 돌봄의 차원에서 예방적인 조치와 예방적인 상담 분야(결혼 예비 상담, 자살 예방 상담 등)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상담실에 앉아서 기다리는 상담뿐만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상담에도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교회는 세상을 치유하는 돌봄 사역을 더 온전히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개교회에서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비롯하여 애도가 필요한 유가족을 온전히 품어주고 체계적으로 돌봄을 제공하도록 준비되어야 하는 데, 이를 위해서는 교회 안에서 목회상담적인 지원이 더 폭넓게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교회가 유가족의 애도를 돕는 일에 힘을 쏟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주는(doing) 돌봄에만 치우치기보다는 함께 곁을 지켜주는(being) 돌봄에도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교회는 자녀를 잃은 부모나 유가족에게 사람들이 만들어낸 신앙인다움, 유가족다움, 피해자다움을 부과하며 강요해서는 안 된다. 신앙인다움에 매몰되면 유가족은 온전한 애도를 하지 못하고 아직 펼쳐지지 못한 슬픔을 봉인해서 마음 깊은 곳에 가둘 수 있다. 그럴 때 겉으로는 신앙인다워보일지는 몰라도 그 마음과 영혼은 점점 아파지기 시작한다. 이보다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자신의 방식대로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해야 한다. 교회에는 그 어떤 단체나 기관보다 풍성한 인적 자원이 있는데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 교회는 교인들이 심리적, 정서적, 영적 지지 그룹을 제공할 수 있는 목회 돌봄 지원 체계를 잘 갖추어야 한다. 전문 돌봄 사역자와 맞춤식 긴급 돌봄 제공 팀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교계에서 유가족을 위한 돌봄 제공 모델을 몇 가지 소개한다. 첫째, 기독교 정체성에 기초한 전문적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사단법인 한국상담서비스네트워크의 두 주체인 한국목회상담협회(kapc.or.kr)와 한국기독교상담심리학회(kaccp.org)에 소속된 상담센터들이 전국에 100여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기독교 신앙에 기초한 전문 심리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특히, 글로벌엘림재단(globalelim.com) 트라우마센터와의 MOU를 체결한 두 기관 소속 40여개의 상담센터들을 통해 트라우마나 유가족 상담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둘째, 기독교 기관에서 체계적으로 유가족 돌봄을 제공할 수 있다. 사단법인 두드림자살예방중앙협회(dudurim.net)에서는 애도 전문 상담가들이 이끄는 기독교인 유가족 돌봄을 위해 『토닥임』이라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재를 중심으로 8회기에 걸쳐 유가족을 위한 심리적, 영적 돌봄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셋째, 기독교인 유가족 돌봄을 위한 실제적인 매뉴얼을 제작할 수 있다. 최근 라이프호프기독교자살예방센터, 두드림자살예방중앙협회, 한국목회상담협회는 공동으로 긴급 유가족 돌봄 매뉴얼을 제작하여 전국 교회에 배포했다. 이 매뉴얼은 자살 유족을 위한 구체적인 목회돌봄과 긴급 지원에 대한 정보 및 방법과 함께, 장기적인 대응으로 교회에서 실행할 수 있는 목회 돌봄에 대한 구체적 안내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유가족 돌봄 매뉴얼을 더 다양하게 제작하고 배포하고 교육할 수 있도록 교계에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 넷째, 유가족들이 일상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과 함께 자신의 시간을 갖도록 안내할 수 있는 리트릿(retreat) 경험이 필요하다. 교계에는 숙박이 가능한 리트릿 장소가 많이 있기 때문에, 이를 도울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과 정보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개교회의 전문 돌봄 사역자들이 적극적으로 안내해주고 교회에서 지원해 줄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가족 단위로, 혹은 집단 유가족 돌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리트릿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국민 마음 건강 돌봄이라는 차원에서 국가가 할 일은 상실 대처, 외상 회복 등의 전문적인 상담 영역의 서비스가 제공될 수 제공될 수 있도록 종합적이고 유기적인 돌봄 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상담서비스와 관련된 법률을 제정하고 마음 돌봄의 사각지대에 머물기 쉬운 유가족들을 실제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사회복지와 상담학, 종교계의 영적 돌봄, 의료적 지원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효율적인 돌봄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자녀(가족) 죽음을 맞이한 신앙인 유가족에게 해주고 싶으신 조언 말씀을 해달라.

자녀를 잃은 유가족에게는 너무 조급한 마음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거나 일상을 회복하거나 의미를 찾아내려 하는 일보다는 상실로 인한 슬픔 속에서 가장 중요한 마음 돌봄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죄책감에 사로잡히거나 신앙적인 이유로 그 죄책감이 더 커지는 일이 생기지 않아야 한다. 자녀를 잃은 책임 소재를 외부에서 찾았다고 해도 여전히 심한 자책과 자기비난에 이끌리기 쉽다. 그런데 이 죄책감은 부부 사이나 가족 간에 서로를 향한 비난과 갈등으로 발전될 수도 있고 유가족이 극심한 무기력감, 무의미함, 우울감에 빠지는 일로 이어질 수 있다. 끝으로, 기독교 심리상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유익하다. 일반적인 심리상담은 건강한 상실 대처에 치중하지만 신앙이나 영혼 돌봄의 영역을 다룰 수 없다. 하지만, 신앙인들에게는 상담적인 지원과 함께 무엇보다도 신앙이나 영혼 돌봄의 문제를 함께 다루어주는 것이 필요하고, 그럴 때 신앙 안에서 더 건강한 상실 대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김기철 교수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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