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해외 머글들이 뉴진스와 피프티피프티의 노래를 듣게 된 걸까?
초등학생이던 1998년, 아파트 상가에서 S.E.S. 1집 테이프를 구매한 것이 아마도 시작이었다. 중간중간 소홀했던 시기는 있을지언정 이후 나는 K팝과 멀어진 적 없다. 20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제법 진지한 ‘덕질’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음악방송을 열렬히 시청하고 눈에 띄는 팀이 출연한 방송(이제는 유튜브)을 찾아보며 유의미하다고 느껴지는 앨범을 구매하거나 궁금한 팀의 콘서트를 보러 가는 ‘나 홀로 덕질’이 대부분이었다. 지난 연말, 비행이 잔뜩 예정된 출장에 맞춰 만든 스무 곡 남짓한 플레이리스트에는 S.E.S., 클릭비, 인피니트, 2PM, 샤이니, EXO, BTS, 오마이걸, 세븐틴, NCT, 투모로우바이투게더, 피원하모니의 노래들이 섞여 있었다. 극한의 비행시간에 집중해 듣고 싶은 곡들이(저가 비행기에 잔뜩 ‘구겨져’ 실린 채 도시와 도시를 오갈 때 정말 큰 도움이 됐다!) 오로지 K팝 아이돌 곡뿐이었음에도 나는 K팝을 ‘듣는 음악’이라고 여겼던 적은 딱히 없다. 그도 그럴 것이 K팝의 성공과 차별점에 대해 말할 때 항사 강조됐던 것은 비주얼적인 측면이었으니까. 음악적인 요소는 멜로디와 가사로 축약되고, 그나마도 분석과 기술에 관해서는 말을 얹기 어려운 한편 시각적인 부분은 쉽게 물고 뜯을 것이 넘쳐난다. 컨셉트 포토, 티저 트레일러, 뮤직비디오, 퍼포먼스, 무대장치, 의상, 누가 어떤 색으로 염색했고 머리를 어떻게 잘랐다는 헤어나 메이크업, 스타일까지.... K팝 그룹의 새 앨범을 리뷰할 때 킬링 파트의 안무나 컨셉트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소스 없는 샐러드를 씹어 먹는 것처럼 밋밋한 평론을 보는 마음도 들었다.
수년 전부터 HYBE는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엔하이픈, 르세라핌 같은 자사 아이돌의 새 EP나 앨범의 발매 시기에 맞춰 음악 평론가들을 초대하는 사전 음악감상회를 진행해오고 있다. 순수하게 사운드적인 결과물을 음악적으로 평가받는 것에 의미를 두기에 진행하는 일이겠지만, ‘굳이?’하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음감회에 다녀온 대다수의 남자 평론가들이 SNS에 흘린 말들을 여성 팬들이 섬기는 듯한 구도 자체에 대한 반감일 수도 있다!). 4세대 걸 그룹들의 활약에 대한 기사가 쏟아져 나오던 지난해에도 나는 시큰둥했다. 앨범 판매량이나 월드 투어처럼 ‘알짜’는 여전히 보이 그룹의 몫처럼 보였으니까.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던 뉴진스도 마찬가지. ‘원래 대형 소속사 걸 그룹들은 국내 음원은 잘 나오지 않나? 이미 탄탄한 팬덤을 가진 아이즈원 멤버들이 소속된 아이브나 르세라핌처럼 코어 팬 있는 그룹이 될 수 있을까?’ 같은, 그야말로 ‘K팝 고인 물’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말 노래가 좋아서 뉴진스의 음악을 듣는다는 주변인들, 그리고 모든 게 빠르게 바뀌는 국내 음원 차트에서 아직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있는 뉴진스의 곡을 보며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다. 뭔가 다르다는 것을 확실히 느낀 것은 별다른 해외 프로모션도 없던 ‘Ditto’와 ‘OMG’가 빌보드 핫100에 차례로 진입했을 때다. 지금까지 단 여섯 곡을 발표한 뉴진스는 급기야 올해 3월, K팝 그룹 중 최단 기간인 데뷔 209일 만에 스포티파이 누적 재생 수 10억 건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이후 누적재생수는 순조롭게 15억 건을 돌파했다. 스포티파이의 90%에 가까운 사용자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라틴아메리카에 분포돼 있다. 정말 전 세계 사람들이 뉴진스 노래를 진짜 노래로 듣고 있는 것이다!
음악방송에서 본 기억도, 어트랙션이라는 소속사 이름도 생소한 ‘피프티 피프티’의 ‘Cupid’라는 곡이 빌보드 핫100 차트에 입성했다는 사실을 뉴스로 접했을 때, 나는 내가 고여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Cupid’는 차트에 진입한 지 8주 차인 5월 20일 주 현재 17위까지 올라왔다. 이대로라면 ‘Ice Cream (with Selena Gomez)’으로 8주 동안 빌보드 핫100 차트에 머물렀던 블랙핑크의 기록을 무난히 깰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올해 2월 공개된 ‘Cupid’의 뮤직 비디오 누적 조회수는 현재 5천5백만 뷰. 지난 11월 데뷔한 소형 기획사 소속의 신인 그룹이 세운 기록 치고는 훌륭하지만 이들보다 늦게 곡을 발표한 4세대 걸그룹들 엔믹스(JYP), 아이브(스타쉽), 르세라핌(HYBE), 에스파(SM)의 타이틀곡 조회수와 비교했을 때는 비슷하거나 훨씬 낮은 수준이다. 발매 첫 주 전략적인 스트리밍과 영상 조회가 이어지는 팬덤 기반으로 음악이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리스너들이 음원으로서 곡을 듣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긴 걸까? 정말 보는 음악이나 팬덤 기반이 아니라 음악 자체가 좋아서 듣는, 새로운 방식의 K팝 소비가 시작되고 있는 걸까? 그동안 믿어왔던 공식에 균열이 생기는 것을 느끼면서 지금 상황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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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이 ‘듣는 음악’이라는 것에 동의하세요?
“K팝을 오래 들어온 사람 사이에서도 대중과 음악의 접점이 어느 정도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조금씩 나오고 있었어요. 제 안에서 정점은 스트레이 키즈가 2020년 발표한 ‘神메뉴’로 기억되는데요. 꼭 이에 대한 반작용이라 할 수는 없지만 엔하이픈의 ‘Polaroid love’ 같은 소프트한 팝이 소셜 미디어에서 바이럴되며, 눈에 띄는 현상을 만들기도 했죠. 물론 본격적인 붐은 뉴진스겠지만요.” 점심시간을 맞아 직장인들이 쏟아져 나오던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김윤하의 명확한 진단이 소란함을 뚫고 귀에 들어왔다.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으로 방송과 잡지, 네이버 NOW, 라디오 등 매체와 방식을 가리지 않고 K팝부터 인디까지 아우르는 김윤하는 잔뼈 굵은 음악평론가 중 한 명이다. 티빙 다큐멘터리 시리즈 〈케이팝 제너레이션〉(2023) 스토리 프로듀서로 활약하기도 했다.
“웃긴 말일 수도 있지만 K팝에 정말 음악이 돌아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뉴진스를 기점으로 음악적 분석과 이야기가 엄청나게 늘어난 것도 사실이고요. 뉴진스의 음악은 명확해요. 어느 순간 공식화된 K팝적 요소를 거의 고려하지 않았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정말 듣기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어요.”듣기 좋은 음악,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이 말은 멤버들의 구성과 특성을 고려해야 하고, 댄스 브레이크와 브릿지의 존재 등 어느 정도 도식화된 K팝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이기도 하다.“실제로 뉴진스가 잘된 이후 트리플S나 XG,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알려진 하이키, 피프티 피프티처럼 퍼포먼스와 분리해서 음악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을 선보이는 팀들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김윤하의 진단이다. 음악적으로 편하게 들을 수 있는 곡. 실제로 피프티 피프티의 노래는 가사가 한국어라는 것을 제외하면 그냥 팝음악처럼 들린다. 데뷔 초의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떠오르는, 하이틴 드라마의 배경음악으로 나오면 좋을 것 같은 노래들.
프로듀서 드레스(Dress)도 같은 의견을 보탠다. “뉴진스가 대단한 점은 음악적으로 ‘이지 리스닝’을 고집했다는 거예요. 어떤 부분에서는 민희진 디렉터가 SM에서 해오던 기존 문법을 고수하되 추상적으로 K팝 답다고 하는 근래의 음악 요소를 따르지 않은 거죠. 그 뒤에 따라온 것이 트리플S나 피프티 피프티 같은 팀이고요.” 10년 넘게 이 업계에서 일하고 있는 드레스는 YG 더블랙레이블 인하우스 프로듀서 출신으로 〈쇼미더머니5〉에서 프로듀서로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다. 소금, 키드밀리, 안다영, 빅나티처럼 성격이 명확한 아티스트의 앨범 작업도 하지만 NCT 마크, (여자)아이들 미연 같은 K팝 아티스트의 개인 작업에도 관여하고 있다. 넓은 스펙트럼과 열린 태도를 갖춘 그에게 K팝은 항상 ‘듣는 음악’이었다.
“중학생 때였을 거예요. TV에서 틀어주는 동방신기의 ‘Hug’ 뮤직비디오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잘생긴 형님들이 나와서 ‘하루만 네 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는 가사도 가사지만 곡 자체가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돌 음악은 쉽게 무시받지만 입시음악을 한 저는 이곡들의 수준이 높다는 걸 알았어요. 샤이니의 ‘누난 너무 예뻐’ 같은 곡도 마찬가지죠. 그동안 한국에서 K팝을 소비하는 방식이 예쁘게 보여야 하고, 컨셉트가 또렷해야 하는 게 공식처럼 돼 있다 보니 지금 같은 현상을 과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음악이 좋지 않았다면 애초에 K팝이 전 세계적으로 잘될 수 없었겠죠.”
뉴진스가 게임 체인저임은 분명하다. 그런 한편 김윤하와 드레스 모두 뉴진스는 ‘치트 키’라는 사실 또한 명시한다. “생각해 보세요! 민희진 아트 디렉터가 만든 걸 그룹이, 그것도 하이브에서 나온다는데 누가 관심을 갖지 않겠어요? 멤버들의 뛰어난 비주얼도 그렇고요. 뉴진스가 이 신의 뭔가를 바꾼다면 세계관이나 컨셉트를 어필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에 집중하는 활동 방향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해요.” 김윤하의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있다. 대체 왜 미 대륙과 유럽의 평범한 리스너들이 굳이 머나먼 나라, 그것도 BTS나 블랙핑크도 아닌,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한국 걸 그룹들의 노래를 듣는 걸까? 어쩌다 이들의 노래는 해외 ‘머글’들의 플레이리스트에 안착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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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 미디어는 K팝을 좋아해
답은 역시 틱톡, 즉 소셜 미디어를 통한 바이럴이다. 음원 사이트나 유튜브에서 제공하는 플레이리스트에 의존해 음악을 듣는 경향이 있는 최근 리스너들의 호감을 즉각적으로 사는 것은 듣기 편하거나 세련된 요소가 있는 곡들이다. 라운지바나 셀렉트숍의 BGM에 어울릴 법한 음악들. 체인스모커스, 혼네나 Lauv의 음악이 아마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리스너들의 귀를 사로잡고 소비된 사례일 것이다. ‘힙한’ 플레이리스트에 꾸준히 등장하며 국내에서도 친근한 곡이 된 태국의 싱어송라이터 품 비푸리트의 ‘Long Gone’이나 최근 퍼져 나가는 한국 내 제이팝의 인기에 일조한 이마세 혹은 후지이 카제의 곡들도 마찬가지다.
“알고리즘에 잘 맞는 음악들이 있어요. 취향을 강요당하는 것 같아 리스너 입장에서 별로 달갑지 않기도 하고, 댄스 챌린지같이 바이럴을 위한 시도에 피로감도 느끼지만, 또 이런 노력이 국내 음원 차트 순위에 분명 영향을 미치거든요. 그렇다 보니 알고리즘에 편승하기 위해 곡 길이도 3분 미만으로 짧아지고, 챌린지를 위한 포인트가 음악에 존재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해요.” 드레스의 말이다. 김윤하는 피프티 피프티의 전략은 명백하게 의도적인 면이 있다고 본다.
“소셜 미디어에서 주목받은 곡을 소개하는 스포티파이 데일리 바이럴 차트에 노출되면 차트에서 순위가 높아지고, 이게 빌보드에서의 성과로 이어지기도 해요. ‘Cupid’는 이 흐름을 타려는 명확한 욕구를 가진 싱글이라고 봅니다. 유저나 리스너들이 갖고 놀기 쉬운 인스투레멘탈(Instrumental) 버전이 함께 나왔고, 발매되자마자 틱톡 챌린지에 최적화된 스페드 업(Sped Up) 버전과 영어 버전을 선보였죠. 물론 이렇게 모범적으로 움직인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건 아니에요. 이 곡은 어떤 면에서 선택받은 거죠.”틱톡에서 흥한 곡의 음악적 가치를 얼마나 인정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의문과 반감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뉴진스의 ‘Hype boy’의 성공과 화제성을 견인하는 일에 틱톡 챌린지가 미친 영향은 없나?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18년 AMA에서 BTS가 최초로 수상한 항목은 ‘소셜 미디어에서 가장 사랑받는 아티스트(Favorite Social Artist)’였다. 공연이나 페스티벌은 음악 애호가들이 순수하게 음악을 즐기는 가장 대표적 방법으로 여겨진다. 서머 소닉이나 코첼라, 롤라팔루자 같은 해외 뮤직 페스티벌의 라인업에서 K팝 아티스트들의 영향력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는 관객 동원력과 국경을 막론한 소셜 바이럴이 쉽게 이뤄질 수 있다는 흥행적 측면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K팝의 파급력이 존중받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김윤하는 해당 부분을 분명하게 짚는다. “대형 음악 페스티벌이 순수하게 음악적인 이유만으로 헤드 라이너를 섭외하거나 라인업을 꾸린 적은 드물거라고 생각해요. 찰리 푸스가 왜 정국과 협업하고, 제이콜은 왜 제이홉과 작업할까요? 음악적인 면과 파급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이죠. 그리고 K팝, 정말 신나잖아요. 페스티벌 기간 동안 뇌를 비우고 춤추며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않을 수 없죠. 설령 그들이 K팝 팬이 아니라 해도요.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오히려 우리가 K팝의 음악적 측면을 과소평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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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음악으로 K팝은 어떤데?
K팝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흥미로운 현상이 됐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들이 있다. 바로 해외 자본들이 진지한 탐구자의 자세로 K팝을 다룰 때다. 유튜브 뮤직은 BTS, 세븐틴, 르세라핌의 다큐멘터리뿐 아니라 2021년 7부작 다큐멘터리 〈K팝 에볼루션〉을 선보인 적 있고, 넷플릭스는 블랙핑크를, 디즈니 코리아는 제이홉과 슈가의 음악적 여정을 지켜본다. 올해 상반기 ‘누구도 말한 적 없는 진짜 K-POP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총 8부작으로 구성된 티빙 〈케이팝 제너레이션〉은 K팝 산업에서 이뤄진 발화와 맥락에 꾸준히 관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충분히 재미와 학술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콘텐츠다. 그중에서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송캠프 등을 통해 K팝 제작에 참여하는 해외 음악 프로듀서들이 등장하는 4화였다. 이들에게 지금의 K팝 신은 가장 재미있는 놀이터처럼 보였다. “정말 재미있고 좋은 음악을 만들면 되는 것 같아서 프로듀서로서 즐겁다”라는 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K팝의 음악적인 측면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은 혹시 내쪽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프로듀서로서 여러 번 송캠프에 참여한 바 있는 드레스는 이런 궁금증에 현실적 답변을 내놓았다. “함께 송캠프에 참여해도 소속사가 국내 작곡가들에게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주는 반면, 해외 작곡가들에게는 그런 가이드라인이 없어요. 곡을 꼭 팔아야겠다는 의지보다 재미있게 작업하고 싶다는 마인드에서 오는 온도 차가 있죠. 요즘은 그들도 어떻게 하면 곡이 팔리는지 어느 정도 체득한 것 같긴 하지만요.” 김윤하 또한 비슷한 지점을 짚어낸다. “기본적으로 작곡가는 아티스트의 주문대로 곡을 만드는 사람들이잖아요. 송캠프에 참가하는 해외 작곡가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게 미국시장에서는 자신의 멜로디나 톱라인이 쓰일 일이 이제 별로 없다는 거예요. 완전한 싱어송라이터나 래퍼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런 멜로디 메이커들이 가진 감성, 달콤한 멜로디를 필요로 하는 가장 큰 시장이 K팝 시장이거든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여 같이 밥 먹고, 음악을 하고, 여러 시도를 해보는 송캠프가 이들에게는 여름휴가 같지 않을까요?”
송캠프에서 채집된 데이터들은 소속사 A&R 팀의 편곡을 통해 ‘조립’된다. 최근 K팝 아티스트들의 앨범 크레딧을 보면 5~6명 혹은 그 이상의 이름이 동시에 올라가 있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때로는 작곡과 작사가 구분돼 있지 않고 ‘Produced by’라는 표현으로 ‘퉁’ 치는 경우도 있다. 리스너로서는 흥미로우면서도 혼란스러운 부분이다. 의아함은 드레스의 설명을 듣고 다소 해소됐다. “트랙을 만들고, 해외 작곡가들에게 데이터를 뿌려요. 그럼 그 사람들이 만든 완곡 데이터에 후편곡 작업을 하는 거죠.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대해 합의하긴 했지만 자기들이 만든 음악이 의도와 달리 너무 많이 바뀌어서 아쉽다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표면상으로는 어쨌든 협업이죠. 크레딧에 대한 지분도 균등하게 나눠 갖고요. 이렇게까지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디어적 측면에서 재미있는 음악이 나올 확률이 높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죠.”
속도! 수많은 아티스트가 쏟아져 나오는 K팝 신에서 잊히지 않기 위해 신인 그룹은 최소 1년에 두세 번은 컴백해야 한다. 미니 앨범 수록곡은 보통 4~6곡, 정규 앨범의 경우 10~13곡 정도. 1년에 한 그룹을 위한 곡이 적으면 10곡, 많으면 20곡 이상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상장한 대형 기획사들은 주주들을 납득시키기 위한 연간 플랜을 발표한다. 어느 시점에 어떤 팀 앨범이 나와야 하는지 사전계획하고, 다른 아티스트들과도 활동 시점을 조율해야 하기 때문에 이 플랜은 뒤틀어지지 않는 게 좋다. 그렇다면? 속도를 내는 것이 정답일 수밖에. “하이브는 팀에 대한 이해도를 가진 인하우스 프로듀서가 있어요. 모아진 아이디어를 내부 팀이 정리하는 게 아마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겠죠.” 드레스는 덧붙인다. 최근 구매한 앨범들을 펼쳤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최근 타이틀곡인 ‘Sugar rush ride’의 앨범 크레딧에는 하이브(빅히트)의 인하우스 프로듀서 슬로우 래빗의 이름 아래, 무려 8명의 이름이 표기돼 있다. NCT127의 ‘Ay-yo’는 어떤가. 유구한 SM 인하우스 프로듀서 켄지의 이름 밑에 네 명의 해외 작곡가 이름과 그들의 소속 팀이 한글과 영문으로 장황하게 적혀 있다. “유영진과 켄지의 음악에서 상상되는 SM만의 세계가 있고, 그게 또 가수들만큼이나 ‘핑크 블러드(SM 음악 팬을 일컫는 말)’들의 자신감을 충족시켜 주기도 하죠. 이런 인하우스 프로듀서는 최근 5~6년 사이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작곡가는 작곡가대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쌓으면서 깊이 있는 작업을 해나가고, 멤버들은 같이 트레이닝하면서 곡 참여도를 조금씩 높여나가는 구조죠.” 김윤하의 설명이다. 한 팀과 보다 긴밀한 관계를 가진 인하우스 프로듀서는 없을까? “에이티즈의 프로듀서 이든 씨는 어때요? 에이티즈의 연습생 시절부터 함께했고, 얼마 전 데뷔한 싸이커스도 프로듀싱했어요.” 이번에도 김윤하는 빠르게 정답을 제시했다. 감사합니다! 에이티즈의 소속사로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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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키워드, 인하우스 프로듀서
KQ엔터테인먼트 소속의 에이티즈는 해외에서 빠른 반응을 얻은 팀이다. 데뷔 100일 만에 월드 투어를 시작하고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반응을 얻으며 금세 공연장의 규모와 개수를 넓혀나갔다. 에이티즈가 데뷔했던 2018년 당시 워너원이라는 막강한 적수가 있었던 국내 팬덤을 공략하는 대신, BTS의 달라진 위상과 함께 K팝에 대한 관심도가 덩달아 커져가던 해외시장의 틈새를 잘 파고든 덕이다. 현재 여섯 명으로 구성된 프로듀싱 팀 이드너리의 수장으로 에이티즈의 음악을 책임지는 프로듀서 이든은 팀 시작부터 함께해왔다. 팀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이해는 물론이고 멤버와의 교감을 토대로 한 곡 작업은 아티스트가 음악을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팬에게 성공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음악은 K팝의 출발점이에요. 따라서 인하우스 프로듀서에게는 큰 책임감과 고민이 따릅니다. 해당 아티스트에 집중해서 시간을 쏟을 수 있고, 음악의 색과 퀄리티를 적극적으로 조율할 수 있다는 것은 강점이죠. 결과물에 대한 책임도 지는 만큼 그야말로 장인 정신과 애정을 담을 수밖에 없고요. 결국 이것이 설득력을 지닌 음악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개인의 음색이나 강점을 결과물에 반영하는 것도 수월하다. 파워플한 가창력으로 잘 알려진 멤버 종호가 하이라이트 구간에서 폭발적인 고음을 보여주기 전에 여상이나 윤호의 저음으로 긴장감을 주는 것처럼 말이다. 가사를 쓸 때도 마찬가지. “세계관의 유기성을 보여주기 위해 앞서 발매했던 데뷔 앨범의 내용은 물론 다음 앨범에서 풀어낼 부분까지 모두 파악하면서 가사를 씁니다. 가사를 유심히 살피며 곡을 듣는다면 한층 더 재미있을 거예요.” 에이티즈의 음악 전반에 걸친 치밀한 노력과 애정이 짐작되는 답변이었다.
음악시장의 흐름을 읽지 못하거나 아티스트의 음악이 신선함을 잃는 것은 이든이 가장 경계하는 것이다. 인하우스 프로듀서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묻는 질문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높은 기준과 자기객관화죠. 이는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필수 요소이기도 해요. 그 다음은 적절한 업무 배분 능력입니다. K팝 신은 하루 24시간, 1년 365일 쉬지 않고 돌아가요. 크리에이터, 아티스트, 스태프 모두 다양하고 새로운 것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만들어내야 하죠.” 멤버들과 음악적인 면은 물론, 인간적으로도 많은 교류가 오가는 만큼 작곡에 관심을 가진 멤버가 있다면 이를 이끌어주는 것도 인하우스 프로듀서의 역할이다. 피독과 랩 라인 멤버들을 중심으로 곡을 만들어온 BTS, 세븐틴의 거의 모든 곡을 작사·작곡하는 프로듀서 범주와 멤버 우지의 관계가 대표적.
아티스트가 본인의 음악을 만드는 것에 이든은 긍정적이다. “자기 자신은 물론 함께 생활하는 팀 멤버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 음악 요소들이 결합되기 때문에 더욱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죠. 팀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가장 어울리고 잘 맞는 음악을 만들 수도 있고요. 자연스럽게 애정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죠.” 에이티즈 내에서 작사·작곡에 가장 큰 흥미를 보이고 있는 멤버는 리더 홍중이다. 지난 4월 정식으로 데뷔한 동생 그룹 싸이커스의 데뷔 앨범 크레딧에도 이든과 함께 전곡 작사·작곡에 이름을 올렸다. “에이티즈 앨범에도 꾸준히 작업해 온 홍중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훌륭한 작가입니다. 팀의 음악을 만들더라도 객관성은 필수예요. 멤버들의 음악적 역량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개인의 능력을 잘 어우러지게 만들거나, 본인의 확고한 음악적 주관과 신념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든은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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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프로듀싱은 필수일까?
권지용(빅뱅)이나 BTS 이야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세븐틴, (여자)아이들, 스트레이 키즈 등 데뷔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그룹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곡의 작사·작곡에 멤버들이 관여하고 있다. 곡 작업 능력은 K팝 아티스트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능력은 아니지만, 멤버들의 아티스트다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사실이다. ‘플레이어’인 아티스트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부여되는 진정성은 음악에 대한 몰입 또한 돕는다. “아티스트가 직접 음악을 만드는 것은 긍정적으로 봐요. 직접 음악을 만들면 정체성이 돋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최근 발표한 세븐틴의 ‘손오공’처럼요. 팀 정체성을 명확하게 담은 곡인데 멤버가 관여했기 때문에 더 설득력을 갖죠.” 확실히 ‘I luv my team, I luv my crew, 여기까지 달리면서’라는 손오공의 후렴구를 외부 작곡가가 썼다면 드레스의 말처럼 지금 같은 설득력과 감동은 없을 것이다. 한편 김윤하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싱어송라이터 신화는 ‘서태지와 아이들’ 때부터 존재해 왔습니다. 자신의 음악을 직접 만들 경우 시너지가 생긴다는 사실은 아티스트도, 관계자들도 다 인식하고 있어요. 르세라핌이 허윤진의 싱어송라이터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키우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죠. 그러나 곡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높게 평가하는 시대는 지났어요. 중요한 건 결과물의 수준이죠. 소속사가 아티스트의 프로듀싱 능력에 의존해서도 안 되고요. 기획사의 충분한 지원 아래 좋은 곡이 나오는 것이 팬에게도, 팀에게도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연차가 어느 정도 찼을 때 음악적 욕심이 큰 멤버가 자기 음악을 하고 싶어 하고, 믹스테이프나 개인 곡을 발표하고 싶어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최근에는 유튜브나 라이브 방송으로 작업 중인 곡이나 음악적 시도를 캐주얼하게 팬들과 공유하는 경우도 많다. NCT 마크는 K팝 신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 플레이어다. NCT127과 NCT Dream, Super M 등 무려 3개 팀에 속한 누구보다 ‘성실한 아이돌’이면서도 랩 가사를 비롯해 NCT 음악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캐나다 출신으로 영어에 능숙하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2022년 2월 첫 개인 곡 ‘Child’를 선보인 것에 이어 얼마 전에는 ‘Golden hour’를 발표한 마크는 외부 프로듀서인 드레스와 긴밀하게 개인 음악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최우선시해야 하는 팀 활동이 존재하고, 높은 인지도와 그만큼 높은 팬들의 기대치를 받고 있는 K팝 아티스트의 개인 음악 작업은 어떻게 진행될까?
“중요한 건 아티스트가 좋아해야 한다는 거예요. 직접 노래를 부르고, 영상을 촬영했을 때 ‘내 옷처럼’ 느끼고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어야죠. 그러려면 음악적으로 아티스트를 납득시켜야 하고요. 함께 살을 붙여가는 과정에서 아티스트의 정체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아티스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균형감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팝스타잖아요. 우리끼리만 좋은 음악을 만들면 안 돼요. 많은 아이돌 친구들이 상상보다 ‘딥하게’ 음악을 들어요. 그 방향만 고려하다 보면 어렵거나 매니악한 음악이 나오죠. 소속사는 이를 원치 않고요. 아티스트가 원하는 것을 만들면서도 교집합을 찾는 것은 프로듀서의 역량이기도 합니다. 엄청 서브 컬처스러운 음악을 낼 수도 있겠지만 팀 활동을 하는 아티스트가 솔로를 낼 때는 왜 이런 음악을 했는지 설득력이 있어야 해요.” 드레스는 말한다. 작업하면서 겪는 가장 큰 고충은 바로 K팝 아티스트들이 너무 바쁘다는 것! “마크는 항상 녹음 장비를 챙겨 호텔로 가요. 메신저로 대화를 많이 나누고, 가이드를 보내주고, 녹음 전까지 상황을 다 만들어놓고 한국에 잠깐 들어왔을 때 녹음에 들어가죠.” 그런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자기 음악’을 만들고 싶다는 아티스트의 의지가 강하기에 진행될 수 있는 작업이다. 전소연에 이어 (여자)아이들 중 두 번째로 솔로 앨범을 발표한 미연의 경우 ‘Tomboy’ 활동을 앞두고 솔로 앨범 작업에 주어진 시간이 한 달 반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K팝 아티스트와 작업하는 이유는 결과물이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좋아해줄 때,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납득하게 되죠.” 드레스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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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기 위한 노력, 만드는 노력
K팝 신은 치열하다. 반면 리스너는 선택권이 많다. 투모로우바이투게더의 멤버 범규는 'Sugar Rush Ride' 활동을 앞두고〈엘르〉와의 인터뷰에서 활동 전 생겼던 불안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 있다.“저조차 새로운 곡이 나왔을 때 조금 들어보고 ‘별로다’ 싶으면 플레이리스트에서 지우거든요. 이번 타이틀곡은 여러 번 들었을 때 비로소 매력이 느껴지는 곡이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여러 번 들어줄까 싶더라고요.”
‘수록곡 맛집’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자본과 고민이 총집중되기 마련인 타이틀곡만이 아닌 앨범 내 다른 곡의 수준도 전체적으로 높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이는 자부심이 되어, 코어 팬의 존재를 견인하기도 한다. 내 경우 좋은 수록곡의 힘을 공연 때 실감한다. 타이틀곡의 하위 호환 버전 같은 곡들이 이어지고, 음악적 방향이 다채롭지 않다면 2~3시간에 달하는 공연시간을 즐기면서 버티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K팝의 동향을 파악하거나 팀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타이틀곡 위주로 진행된다. “SM과 하이브는 수록곡 단위까지 수준 높게 잘 뽑는 대표적인 기획사죠. 아마 그럴 수 있는 데에는 자본의 힘이 크겠지만 그래도 샤이니, f(X)로 꼽히는 SM 황금 시대의 명맥을 지금은 NCT와 레드벨벳이 잘 이어오고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타이틀곡은 우리가 생각했던 종합 엔터테인먼트적 K팝을 지향하는 곡이 되기 마련이죠. 음반 단위로 K팝을 듣는 사람이라면 어떤 팀의 색깔이 하나로만 보이는 것이 아쉽지 않을까요.”김윤하의 말이다. ‘듣는 사람’으로서 조금 더 노력한다면 최고의 인력과 자본이 집중된 신이 만들어내는 다채로운 음악을 제대로 누려볼 수 있지 않을까?
반가운 소식은 K팝을 음악으로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달릴 준비가 돼 있다는 사실이다. 프로듀서로서 드레스가 최근 흥미롭게 본 것은 K팝에서 한글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코카콜라 CM송 ‘Zero’를 선보인 뉴진스가 “코카콜라 맛있다. 맛있으면 또 먹지”라는 문구를 그대로 차용한 것이 신선한 영감이 됐다. “위켄드가 일본 시티 팝인 아란 토모코의 ‘Midnight pretenders’의 인스트루멘탈을 활용해서 발표한 ‘Out of time’이라는 곡이 있어요. 위켄드의 이 곡은 완전 70~80년대 미국 팝처럼 들리는데, 일본어 원곡은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그러나 K팝은 영어 가사의 비중이 높다. 아티스트들의 레코딩 비하인드 영상을 보면 한글 가사도 발음이 한글처럼 들리지 않게 일부러 뭉개도록 가이드를 주는 장면이 종종 보인다. “한글이 너무 한글처럼 들리면 ‘짜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디렉터들에게 있는데, 좀 더 모험적이고 도전적이어도 좋지 않을까요? 최종적으로는 인디, 얼터, 서브 컬처 신의 요소를 많이 흡수해서 K팝적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그런 희소성이 K팝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 타이밍이 맞아떨어진다면 프로듀서 250과 뉴진스 같은 좋은 선례를 만들 수도 있겠죠. 이런 균열이 생길 때 K팝 또한 계속 재미있어질테고요.” 여전히 음악을 만드는 것이 즐겁다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 싶은 드레스의 포부다.
프로듀서 이든에게 K팝은 단순한 음악의 한 장르가 아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K팝을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종합 엔터테인먼트 서비스에 가깝다. “쇼핑 공간이 함께 있는 멀티플렉스에 빗대어 말하자면 ‘무슨 영화를 상영할지, 어떤 가게를 입점시킬지, 고객들에게 어떤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지금 K팝이 하고 있는 음악의 역할 같아요. 소비자, 즉 리스너가 K팝을 즐길 때 어떤 부분에 의미를 두는지에 따라 ‘듣는 음악’으로서 K팝이 가지는 의미도 달라지겠죠.” 빌보드, 스포티파이, 유튜브 조회 수, 앨범 판매량 같은 숫자와 기록에 파묻혀 있는 사이 K팝은 음악이라는 본연에 충실하면서 풍요로운 세계를 꾸려왔다. 닻은 이미 팽팽하게 펴진 지 오래다. 이 항해에 어떤 식으로 뛰어들지는 당신의 몫이다. 하지만 곧 알게 될 것이다. 넓고 막막해 보이는 바다에는 생각보다 아름답고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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