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킬로 단짝 잃은 검둥개를 구조했습니다” [개st하우스]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길에 시골 기찻길 부근에서 두 유기견을 만났습니다. 동네 주민들이 말하기를 박스에 담겨 철로 옆에 버려진 녀석들이고 하더군요. 그 뒤로 녀석들은 매일 아침저녁으로 저를 반겨줬습니다. 제가 ‘밥언니 왔다’고 하면 쪼르르 달려와서 챙겨준 밥을 먹고는 했습니다.”
유기동물 구조는 일생에 한번 찾아오는 드문 기회라고들 합니다. 보람만큼이나 감당해야 할 부담도 크죠. 최소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고 몇개월씩 입양자를 찾는데 진을 빼야 하거든요. ‘일생에 한번’이라는 말에는 두번은 못할 거라는 경고가 담겨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제보 영상을 보면 지혜씨는 매일 아침 “밥언니 왔다”며 두 유기견을 부르더군요. 고요했던 시골 기찻길에 반가운 목소리가 울리면 잠시 뒤 누렁이와 검둥개 시루가 달려와 밥언니 곁을 맴돌았죠.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구조는 엄두도 못냈습니다. 유기견을 품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거든요. 새 식구를 맞을 상황도 아니었습니다.
지혜씨가 마음을 바꾼 건 누렁이가 로드킬을 당한 뒤였습니다. 지혜씨는 “단짝을 잃고 혼자 남은 검둥개가 순수한 눈망울로 품에 안기는데 더는 외면할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국민일보 개st하우스가 오늘 전해드릴 검둥개 시루의 사연입니다.
시루와 지혜씨의 인연은 지난 3월 시작됐습니다. 충남 예산의 외딴 기찻길. 평소처럼 출근길에 나선 지혜씨의 자가용 앞으로 두 마리의 개가 나타났습니다. 한 8㎏ 정도 될까. 스피츠 크기의 어린 누렁이와 검둥개였죠. 인근 밭에 비료포대를 나르던 동네 어르신에게 물어보니 며칠 전 외지인들이 박스에 담아 버리고 간 녀석들이라고 알려줬습니다. 어르신은 “음식 수거함을 뒤지고 다녀서 골칫거리”라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두 녀석은 겁은 많지만 사람을 따르려는 사회성이 없는 건 아니었습니다. 낯선 지혜씨의 곁으로 함부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5~6m 간격을 두고 맴돌며 졸졸 따라왔죠. 마침 지혜씨의 차량에는 굶주린 시골개들에게 부어주던 구호용 사료와 물이 실려 있었고, 지혜씨는 두 마리에게 넉넉한 분량을 챙겨줬다고 합니다. 녀석들은 지혜씨가 멀어지자 허겁지겁 사료를 핥아 먹었습니다.
그날부터 시루와 누렁이에게 아침을 챙겨주는 것은 지혜씨의 일과가 됩니다. 지혜씨가 사료봉지를 흔들며 “얘들아 밥먹자”고 부르면 기찻길 자갈밭에서, 혹은 밭두렁에서 누렁이와 시루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죠. 매일 두 유기견과 만나면서 지혜씨를 알아보는 주민들도 생겼습니다. 지혜씨는 “인근 어르신들이 나를 ‘밥언니’라고 부르더라”며 “그 덕분인지 주민들이 두 친구를 덜 구박하고 나 대신 사료를 챙겨주는 동네 분들도 생겼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지혜씨가 두 유기견에게 줄 수 있는 도움은 여기까지였습니다. 직장생활로 바쁜 사회 초년생인데다 이미 유기견 출신을 포함해 3마리의 개를 돌보고 있어 한 마리를 더 보살피는 건 무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아침 지혜씨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습니다. 검둥개 시루와 항상 함께 다니던 누렁이가 그날따라 나타나지 않은 겁니다. 두 녀석이 종종 뛰놀던 텃밭의 주인이 말하기를 누렁이가 전날 도로를 가로지르다가 그만 로드킬을 당했다더군요. 그렇게 시루는 절친을 잃고 홀로 남겨졌습니다.
기댈 데 없어진 시루는 그때부터 지혜씨에게 부쩍 더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경계심을 내려놓지 않고 2~3m씩 거리를 유지하던 녀석이 어느새 손 위에 올려둔 간식을 받아먹고, 쓰다듬는 지혜씨 손길을 허락했습니다. 지혜씨가 떠나려고 하면 먹던 사료를 내려놓고 졸졸 따라오기까지 했습니다. 그 모습이 지혜씨의 마음을 바꾸게 했습니다. 지혜씨는 “유기동물 구조에 따르는 책임이 버겁게 느껴졌지만 나를 믿고 따르는 시루를 꼭 지켜주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포획·치료와 돌봄·입양모집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의 시작이었습니다.
첫 단추인 포획은 뜻밖에 순조로웠습니다. 앞서 수차례 포획 민원이 제기된 탓에 예산군 측은 시루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검토 결과 ‘경계심이 강해 포획을 확신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었죠. 하지만 지혜씨와 오랜 기간 신뢰를 쌓은 덕분일까요. 시루는 의외로 순순히 지혜씨의 품에 안겼습니다. 지혜씨가 구조를 결심한 지난달 11일, 시루는 사료를 먹던 중 지혜씨 품에 안겨 그대로 위태로운 떠돌이 삶을 마칩니다.
이튿날 동물병원을 찾은 지혜씨는 예상치 못한 소식을 듣습니다. 알고보니 시루는 만삭의 몸이었습니다. 새끼 6마리의 출산을 앞두고 있었죠. 게다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증상은 경미했습니다. 동물병원 측은 우선 시루가 출산을 무사히 마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습니다. 치료는 수유를 마친 뒤로 미루기로 했습니다.
구조 1주일 뒤인 지난달 19일, 시루는 6마리의 새끼를 출산했습니다. 시루 한 마리를 책임지는 것도 쉽지 않은데 여섯 마리의 새끼까지 돌봐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던 지혜씨. 하지만 건강하게 태어난 새끼들은 시루의 모유를 먹으며 생후 6주 만에 2㎏ 남짓한 퍼피로 성장했고, 지혜씨 노력 덕에 무사히 보금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현재 여섯 마리 퍼피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한 전국 각지의 임시보호 혹은 입양가정에서 따뜻한 돌봄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달 30일 취재진은 대전의 임시보호(임보)처에서 시루를 만났습니다. 이날 현장에는 시루의 입양적합도를 평가할 12년차 행동전문가 미애쌤도 동행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자 시루를 꼭 닮은 두 퍼피가 다가와 냄새를 맡더군요. 시루는 신중한 성격이어서 낯선 사람에게 달려들지 않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습니다. 임보처에서 만난 12㎏ 크기의 백구와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시루의 현 임보자는 “시루는 처음에는 낯을 가리지만 1주일 정도 지나면 금세 보호자를 따른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산과 수유를 마친 시루에게 마지막 고비가 남았습니다. 개st하우스에 출연하는 많은 견공들을 괴롭히는 심장사상충을 치료하는 과정입니다. 심장사상충은 심장과 폐혈관에 기생하는 최대 길이 30㎝의 기생충입니다. 경감염(1~2기)은 치료약 주사 및 후처치약 복용으로 큰 탈 없이 치료되지만 이미 기생충 번식이 시작된 중감염(3~4기)은 치료 기간도 길고 사체가 혈관을 막아 위험해지는 경우도 많습니다.
인근 동물병원에서 시루의 혈액검사 및 심장초음파 검사를 했습니다. 예상대로 시루의 상태는 심각하지 않았습니다. 앞선 혈액키트 검사에서는 양성 반응이 나왔지만 초음파로 확인해보니 심장사상충이 심장과 폐까지 침투하지 않은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시루는 앞으로 3개월간 꾸준히 내복약을 먹고 치료주사를 맞으면 무난히 완치될 겁니다. 치료비 60만원 가운데 40만원은 개st하우스의 유튜브 구독자들이 모아준 슈퍼챗 기금으로 충당할 예정입니다. 지혜씨는 “시루의 치료를 도와주신 구독자 여러분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했습니다.
제보자와 소중한 인연을 쌓은 검둥개 시루의 입양자 혹은 임보자를 모집합니다. 관심있는 분은 기사 하단의 입양신청서를 작성해주시기 바랍니다.
- 1살반, 8㎏ 암컷(중성화x)
- 신중한 성격, 보호자에게 적응이 빠름
- 다른 동물과의 사회성이 좋음
- 심장사상충 1기(경감염) 치료약 복용 중. 3개월의 치료 과정
✔시루의 임시보호 혹은 입양을 고민하는 분들은 아래 신청서를 작성해주세요
- https://naver.me/xD62tT7H
- 인스타그램 help.dog11로 DM 문의도 받습니다.
✔시루는 개st하우스에 출연한 112번째 견공입니다. (92마리 입양 성공)
- 시루의 입양자에게는 반려동물 브랜드 로얄캐닌이 동물의 나이, 크기, 생활습관에 맞는 '영양 맞춤사료' 1년치(12포)를 후원합니다.
이성훈 기자 최민석 기자 tellme@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이태원 참사로 공황장애”… 박희영 구청장 석방 요청
- “식당에서 젓가락 떨어뜨리면 안 줍나요?” [사연뉴스]
- 망원시장 ‘침 꼬치 테러’ 日개그맨…방송사 사장 ‘사과’
- “아기 굶어서” 분유 훔친 미혼모…경찰이 한 일 [아살세]
- “엄마업고 지하철역” “너 좋아해”…오경보가 낳은 ‘진풍경’
- 9개월 아기, 굶다 심정지…학대 엄마가 “연명치료 중단”
- “코로나 견뎠는데…잔고 0원, 폐업” 133만 유튜버 고백
- 또래 명문대생 죽인 ‘공시생’ 정유정…“신분 탈취 노려”
- [단독] ‘의사가 없다’ 국내 첫 어린이병원, 휴일진료 중단
- 못난 20대들…청소년에 ‘1갑 3천원’ 받고 담배 ‘댈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