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7]‘꼬꼬무’에서 ‘해방 일지’로···[개척자 비긴즈]

최기영,이영은 2023. 6. 2.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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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척자 Y’다. 험난한 교회 개척 여정 가운데 늘 기도하며 하나님께 ‘왜(Why)’를 묻고 응답을 구하고 있다. 개척은 그 자체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자 지향점이다. 출발선(A)에 선 개척자가 도달해야 할 목적지(Z)를 바라보며 묵묵히 걸음을 내디딜 때 당도할 수 있는 마지막 계단이 알파벳 ‘Y’이기도 하다. 그 여정의 열일곱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개척 감사예배를 겸한 송구영신예배와 첫 주일예배 후 두 번째 주일예배를 준비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이 있었다. 근심이나 걱정과는 결이 다른 한숨이었다.

‘첫 예배를 준비하느라 긴장을 많이 했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쌓였나?’ 몸과 마음에 경직이 느껴졌다.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하게 머리 속을 돌아다닌다.

‘개척 감사예배 때 왔었던 성도들이 다음 주부터 안 오면 어떡하지?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많은 것도 아닌데 바닥이 드러나면 어쩌지? 개척 공동체가 시작은 됐지만 감당하지 못해 나도 성도들도 힘들어 진다면 어쩌지? 잘 할 수 있는 걸까?’

걱정과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개척 두 번째 주 설교의 제목으로 적어뒀던 것이 눈에 들어왔다. ‘숨이 되고 쉼이 된다’였다. 더 한숨이 나왔다. 설교자는 먼저 자신에게 설교를 하고 그 설교가 성도에게 흘러가야 한다고 배웠다. 머리 속에 한숨을 머금은 생각들로 가득 찼다. 그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정리해야만 했다. 마음이 원래의 궤도로 돌아와 자리를 잡아야 했다.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를 참 재미있게 봤다. 사랑을 통해 잊고 지냈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스토리에 흠뻑 취해 16회 드라마를 정주행했었다. 드라마를 보기 전 한 문구가 눈에 들어왔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만나지지 않는 당신, 당신, 누구일까요.’

개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개척 후에도 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사람일 것이다.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아직 만나지 않았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대상들이 이 드라마에서 나온 등장인물들이라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인간애를 잃은 채 일상을 살아가는 염미정, 술에 찌들어 오늘도 내일도 잊고 지내는 구씨, 일밖에 모르고 사는 아빠, 쉬고 싶지만 쉴 새 없이 일하고 밥하는 엄마, 사내 불륜 커플, 편의점 점주와 아르바이트 직원, 정직원과 비정규직, 나를 싫어하는 상사, 함께 밥은 먹지만 마음을 열기 힘든 직장 동료들, 언제 만나도 편한 동네 친구들까지.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삶 속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기화가 이루어질까. 연결이 되어서 같은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개척을 한 시점에서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찾아올 불특정 다수의 성도들을 생각하며 드라마 속 타인의 삶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만나게 될 사람들을 꿈꾸지만 쉽지 않은 것은 당연했다.

개척 후 두 번째 예배인데 성도에게만 설교할 수 없었다. 다짐은 가득한데 나오는 한숨은 걷잡을 수 없이 나를 감쌌다. 전달이 아니라 삶으로 먼저 살아야만 했다. 방법이 필요했다. 나의 해방일지에서 염미정은 구씨에게 할 일을 준다. 날 추앙해서 날 가득 채우라고 말한다. 구씨는 술로 복잡한 마음을 가득 채운다.

‘나는 무엇으로 가득 채워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중에 한 집사님에게 연락이 왔다. “목사님~ 항상 가시는 카페에서 뵐까요?” 구씨가 항상 다니던 슈퍼마켓처럼 내게도 항상 다니는 단골 카페가 있었다. 집사님은 그걸 아시고 그 카페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대화는 유려하게 흘렀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삶의 이야기, 앞으로 함께 걸어가게 될 교회 이야기, 따듯했던 첫 예배의 이야기들로 채워 나갔다. 그중 가슴팍에 훅 들어온 이야기가 있었다.

“목사님은 섬기는 걸 잘하시는 것 같아요. 아침에 성도들이 마실 커피를 준비하시고 직접 간식을 고르신다면서요? 힘들지 않으세요?”

‘내가 섬기는 걸 잘하는 것 같다고?’ 그 말이 마음 속을 채우기 시작했다. 콘텐츠, 달란트, 잘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감 등 한숨 섞인 고민이 그 말 한마디에 사라졌다. ‘다음 주는 몇 명이나 예배에 참여할까? 지난주에 왔던 성도들 중 다시 나올 수 있는 성도는 몇 명이나 될까? 우리 공동체는 가나안 성도들을 잘 품을 수 있을까? 첫 예배 잘한 걸까?’

이것도 저것도 다 고민이 되어 한숨으로 나왔던 것이다. 아닌 척 하며 살아왔던 것이 한숨으로 나왔다. 근심과 걱정과는 다른 결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들여다보니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바로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내게 엿보이는 장점을 말해줬던 집사님의 마음이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 것이다. 그제야 조금 ‘해방’이 되었다. 내쉬었던 한숨 중 하나인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집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알게 해 주셨다.

교회가 세워지고 새로운 관계가 시작되면서 한 몸으로 세워지는 것을 경험한 것이다. 동기화가 일어났고 연결이 되었다. 연결이 되니 한숨이 사라지고 정상 호흡으로 돌아왔다. 원래의 궤도로 찾아갈 수 있게 됐다. ‘다양한 삶의 이야기로 가득한 드라마 속 등장인물과 같은 성도들이 찾아왔을 때 나는 그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어렴풋이 답을 발견하게 됐다.

부교역자 시절에는 걱정하지도 않았던 것들을 걱정하게 되고, 고민하지 않았던 것들을 고민하게 되는 것이 개척이었다. 이런 고민과 걱정들은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닌 우리 삶 속에 언제나 늘 존재해왔다.

옆에 있어주는 것, 진심으로 그들의 말을 마음에 담는 것, 말의 위로가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연결인지 알게 되니 만나를 먹는 것 같았다. 성도들의 삶을 들여다 볼 때 그들이 내 쉬는 한숨에 집중할 때, 더 알게 되고 더 발견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이 개척자에게 주시는 ‘만나’였다. 개척을 하면 만나를 경험한다고 말씀들을 많이 해주셔서 단순히 어떤 필요의 채움으로 생각을 했다. 물론 필요한 것들도 채워 주셨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만나는 호흡이었고 함께 숨을 쉬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예배 때 우리는 함께 숨을 쉬고 쉼을 얻는다.(Y will be back!)




최기영 기자 일러스트=이영은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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