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리샹푸 제재 안 푸는 美…샹그릴라 개막 후에도 자존심 싸움
아시아ㆍ태평양 주요국 안보 수장들이 참석하는 아시아 안보회의가 미ㆍ중간 자존심 대결로 비화하고 있다. 중국은 리샹푸(李尚福) 국방장관에 대한 제재를 풀지 않은 미국에 장관 회담을 보이콧한 데 이어 “모든 책임은 미국에 있다”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미국 역시 회의 기간 남중국해에서 미ㆍ일ㆍ필리핀 3국 간 첫 해상훈련에 돌입하며 중국을 자극했다. 양보 없는 신경전 속에 양국 국방장관의 접촉 여부는 이번 회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샹그릴라 대화’로 불리는 다자간 안보회의는 2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해 4일까지 이어진다.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 주관으로 총 49개국 600여 명의 국방 관리, 무기 제조업체 및 보안 분석가들이 참석했다.
중국 매체들은 당국의 분위기를 반영한 듯 회의 당일부터 날 선 기사를 쏟아냈다. 환구시보는 이날 “바이든 행정부가 중국 국방장관에 대한 제재 해제를 거부하고 있는데 두 국방장관이 만나지 않는 일에 왜 놀라야 하나”라며 “미·중 관계의 핵심 문제는 미국의 말과 행동 사이의 엄청난 간극”이라고 비난했다.
이어 “미국은 양국 관계의 진전이 없는 것에 대해 중국 탓을 하지만 미국이 어떤 선의의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라며 “G7 정상회담 성명서에서 미국은 중국을 가장 날카롭게 공격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리 장관 제재 해제는 중국 정부가 지속해서 주장해 온 사안이다. 지난 3월 국방장관에 임명된 리샹푸는 지난 2017년 중국이 러시아 전투기 SU-35 10대, S-400 지대공 미사일 시스템 관련 장비를 구매한 것과 관련한 중국 군 당국의 핵심 관계자로 지목돼 2018년 9월 미정부 제재 대상에 올랐다. 당시 그는 중국 중앙군사위원회 장비개발부장이었다.
장관 임명 이후 중국은 리 장관이 미국군 최고위 관리들과 접촉할 때의 '모양새'에 관해 미정부에 문제를 제기했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G7 정상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곧 풀릴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정작 미 국무부가 이를 부인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제재는 4년 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달 30일 “현재 양국 군 간 교류 중단의 책임은 전적으로 미국에 있다”며 “중국의 입장을 무시하고 있으며 인위적으로 장애물을 만들고 있다”고 비난 성명을 냈고 결국 양국 장관 회담은 시작도 전에 무산됐다.
중국의 불편한 속내에도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달 31일 미 인도태평양사령부는 중국군 J-16 전투기가 남중국해 상공에서 미군 RC-135 정찰기 앞을 위협 비행했다고 공개했다. 중국 인민해방군 남부전구는 “중국 해군 17척이 훈련하고 있는 곳을 미군이 고의로 침입해 정찰하고 간섭했다”고 반박했다.
리하이둥(李海東) 중국외무대학 국제관계연구소 교수는 “미국의 행동은 전형적인 여론전”이라며 “양국 간 군용기 조우 상황을 만들어 과장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아시아안보회의에서 ‘중국 위협’ 여론을 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키려는 '꼼수'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안보회의 기간 중 일본, 필리핀과 함께 남중국해에서 해상 훈련에 돌입했다. 남중국해 역시 중국이 대만에 이어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다. 로이터통신은 호주도 참여할 것이라며 이번 훈련은 대량살상무기를 탑재한 선박에 대한 요격 훈련이 포함된다고 보도했다.
환구시보는 "3자 훈련은 명백히 중국을 도발하고 있으며 남중국해의 긴장을 악화시킬 것"이라며 "미국은 일본,필리핀과 3자 군사동맹 구축을 향해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중국에 군사적, 정치적 압력을 가하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리 장관은 오는 4일 ‘중국의 신 안보구상’에 대해 연설할 예정이다. 그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미국 리더십 확대가 진영 대결로 이어져 지역 평화와 안정을 저해한다는 점을 지적할 것으로 전망된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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