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컬처]'매일 쓰기'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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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원생이던 시절, 세미나 자리에서 박사 수료생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논문만 너무 쓰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되고 다른 무언가를 계속 써야 한다고,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그것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정말이지 한동안 매일 자기 전에 이불을 뻥뻥 걷어차곤 했지만, 스무 살의 나부터 서른 살의 나까지 몇 편의 일기들을 보다 보면 내가 조금씩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 특히 나의 글쓰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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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자신을 기록하는 것
글과 책을 쓰는 첫걸음
내가 대학원생이던 시절, 세미나 자리에서 박사 수료생 선배가 말했다. 우리는 논문만 너무 쓰고 있는데 이래서는 안 되고 다른 무언가를 계속 써야 한다고, 그런데 그게 너무 힘들다고. 그때 나는 ‘논문이나 잘 쓰지…’ 하는 마음이었으나, 그 선배는 나를 보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민섭이는 좀 다르다고, 저렇게 매일 성실하게 일기를 쓰는 게 얼마나 글쓰기 연습이 되겠느냐고. 다른 과정생 선배가 "민섭이가 미니홈피에 올리는 일기 진짜 재밌잖아요. 제가 그거 보는 재미에 삽니다" 하고 거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계속 무언가 쓰기는 한 모양이다. 그게 몇 줄 안되는 일기라고 해도 말이다.
내가 대학생이었던 2000년대 초반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라는 것이 유행이었다. 모두가 가상화폐인 도토리를 사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꾸몄다. 거기에 들어오는 방문자의 수와 방명록에 남은 글들이 그가 ‘인싸’인지 ‘아싸’인지를 자연스럽게 드러내 주었다. 그때 나는 오랜 친구와 함께 톡드림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서로의 일기를 올리는 공간이었다. 거기에 ‘톡드림’이라는 메뉴를 만들어두고 언젠가 우리의 꿈이 실현될 때 오픈하겠다고도 공지해 두었다. 그 게시판은 3년 정도 함께 운영하다가 정리했지만 거기에는 두 사람의 3년치 일기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때 어느 후배가 나에게 "요즘 싸이질보다 재미있는 게 톡드림질인 거 아시죠. 일기 많이 써 주세요" 하고 말했던 게 아직도 떠오른다. 그런 칭찬과 관심들이 나에게 계속 무언가를 쓰게 만든 듯하다.
톡드림 이후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의 ‘다이어리 게시판’에 계속 일기를 썼다. 나는 그렇게 스무 살부터 서른이 넘을 때까지 나의 일상과 경험과 감각을 기록했고 아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공유해 나갔다. 그러면서 적어도 나의 언어를 가지게 된 것 같다. 어떠한 부사와 형용사가 나를 표현하기에 가장 어울리는지, 어떠한 온도의 문장들이 나의 감정을 가장 잘 담아낼 수 있는지, 적어도 조금씩 알게 됐다.
요즘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앱으로도 다시 나왔다. 앱을 설치하고 나니까 매일 "당신의 몇 년 전 오늘은…" 하고, 내가 쓴 일기들이 알림으로 왔다. 그래서 그것들을 살펴보다가 나는 정말이지 한동안 매일 자기 전에 이불을 뻥뻥 걷어차곤 했지만, 스무 살의 나부터 서른 살의 나까지 몇 편의 일기들을 보다 보면 내가 조금씩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지, 특히 나의 글쓰기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가 한눈에 보인다. 그래서 정말이지 일기 쓰기를 참 잘했구나, 하루에 몇 줄씩 쓴 이 글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하고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언어를 알아간다는 것,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자신을 닮은 언어와 익숙해진다는 것, 그게 어쩌면 글을 쓰고 책을 쓰는 첫 출발이 된다.
당장 훌륭한 작품을 써 나갈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다만 일기가 되든 무엇이 되든, 매일 자신을 기록하는 간단한 일부터 시작한다면 그것이 국문과나 문창과에 가서 등단을 준비하는 일보다도 훌륭한,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한다. 내가 알게 된 여러 작가들도 책 한 권으로 갑자기 잘된 것처럼도 보이지만 그들은 꾸준히 무언가를 써 온 사람들이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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