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의 기만성... 국민 또 속인 건가 [김종성의 '히, 스토리']

김종성 2023. 6. 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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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성의 히,스토리] 일본 언론에 공개된 기금 운용 방향... 기금이 재벌 이익 추구하는 도구?

[김종성 기자]

 5월 10일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왼쪽)과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회장이 도쿄 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미래파트너십 기금 관련 기자회견에서 기금의 운용 방향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이 강제징용(강제동원) 해결과 관련이 있는 듯한 이미지가 조성돼 있다. 3월 6일에 윤석열 정부가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떠안겠다고 선언하자, 3월 16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재계가 이 기금 창설을 발표한 데 이어 5월 10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게이단렌(일본경제단체연합회, 경단련)의 주도로 기금이 출범했다.

양국 정부는 계속해서 기금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례로, 5월 15일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 경제인회의 일본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전경련과 경단련이 운영하는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을 통해 양국 청년들의 교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양국 기업인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라고 말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역시 서울에서 한일정상회담을 가진 다음 날인 5월 8일, 경제 6단체와의 만남에서 이 문제를 언급했다. 중소기업중앙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전국경제인연합회와 가진 간담회에서 파트너십 기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1995년 7월 18일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 국민기금(아시아여성기금)'이 발족해 민간 기금을 모아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을 지급하는 일이 추진됐다. 2016년 7월 28일에는 한일 위안부합의에 따라 일본 정부가 출연한 10억 엔을 기초로 화해치유재단이 발족돼 피해자들에게 위로금 혹은 지원금을 지급하는 일이 진행됐다. 이런 전례들이 있기 때문에, 징용 문제 봉합 뒤에 출범한 파트너십 기금이 이 문제와 관련 있는 듯한 분위기가 쉽게 조성될 수 있었다.

작년 11월 2일 <아사히신문>은 화해치유재단 잔금을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기금에 편입시켜 징용 피해자들에게 지급하는 방안이 윤석열 정부 내에서 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런 보도도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여성기금이나 화해치유재단 모델을 파트너십 기금과 연결시키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다.

파트너십 기금이 피해자나 유족에게 쓰이지 않더라도 양국 청년세대를 위해 사용됨으로써 어느 정도로나마 속죄 기능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미쓰비시나 일본제철 같은 전범기업이 파트너십 기금 출연에 참여할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이런 생각과 관련 있어 보인다.

기만적 행동
     
하지만 파트너십 기금에 관한 그간의 논의를 정리한 게이단렌의 6월 1일 소식지를 살펴보면, 양국 정부가 그동안 기만적 행동을 해왔음을 느낄 수 있다. 주간지로 발행되는 <게이단렌 타임스>에 실린 '일한·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의 향후 운영에 관해 발표'는 3월 16일 기금 창설 발표 및 5월 10일 기금 발족 기자회견 때 부분적으로 튀어나온 문제점을 보다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게이단렌 타임스> 제3장 '공동사업의 방향성'은 제1항에서 '청년 인재의 교류 촉진'을 언급했다. "게이단렌과 전경련은 청년층의 활약의 장을 넓히기 위해 관계 단체의 기존 실적을 바탕으로 젊은 인재의 교류를 촉진해 나간다"라며 "특히 양국 대학 간 제휴의 한층 높은 추진이나, 한국 고등학교 교원의 일본 초청, 인턴십에 관해, 양국을 둘러싼 환경 변화를 바탕으로 하면서 경제계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라고 밝혔다.

기금의 운용 방향을 설명하는 대목의 제1항에서 청년 교류를 언급했지만, 이것이 기금의 주된 목적이 아니라는 점은 뒷부분에서 드러난다. 제3장에서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제1항이 아니라 제2항이다. 제2항 '산업 협력의 강화'는 기금이 사용될 구체적 항목을 이렇게 세분했다.

1. 경제안전보장 환경의 정비(반도체 공급망의 강화, 자원·에너지 안전보장 등)
2.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의 유지·강화.
3. 그린 트랜스포메이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의 실현.
4.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규제 완화, 스타트업 기업 제휴,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산업의 진흥, 제3국 시장 협력 등).
5. 감염증 등 지구 규모 과제에 대한 대응.
6. 기타.

미래파트너십은 20억 원으로 출발한다. 자금이 더 불어날 수도 있지만, 징용 피해자를 대신해 양국 청년세대를 돕는 일에 사용될 20억 원은 결코 많지 않다. 여기에만 써도 모자랄 금액을 반도체 공급망 강화나 팬데믹 대응 등에 쓰겠다고 밝혔다. 기금을 더 불린 뒤에 양국 재계가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 기금이 청년 교류는 물론이고 경제문제와도 관계없는 전혀 엉뚱한 용도로 사용될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 제2항 2.에 있는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의 유지·강화'는 한·미·일 3국이 중국을 견제하고자 구사하는 인도태평양전략과 맞닿는 표현이다. 일본 정부가 즐겨 사용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과 의미가 통한다.

지난 5월 10일 도쿄 게이단렌회관 기자회견에 나온 도쿠라 마사카즈 게이단렌 회장 발언에도 동일한 내용이 언급됐다. 보도에 따르면, 2008년부터 전범기업인 스미토모화학의 대표이사로 재직 중인 그는 '산업협력 강화와 관련해 특히 주력하고 싶은 분야가 있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자유롭고 열린 국제질서의 유지·강화가 중요하다"라며 "일·한 양국은 민주주의, 법의 지배 등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다"라고 한 뒤 "동북아에서 이러한 같은 가치관을 지향해 나가겠다"라고 밝혔다.

한·미·일 3국 정부가 중국 견제를 다짐할 때 쓰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미래파트너십 기금의 운용 방향을 밝혔다. 이 기금이 미·중 패권 경쟁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줄 여지가 있다. 강제징용 문제는커녕 양국 청년문제와도 별 관계 없는 쪽으로 기금이 변질될 소지가 없지 않다.

기금의 우선순위
 
 1일 게이단렌 소식지에 실린 '일한·한일 미래 파트너십 기금의 향후 운영에 관해 발표'
ⓒ 게이단렌
게이단렌은 소식지 끝부분에서 "양국의 산업협력을 더욱 심화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경단련과 전경련은 7월 6일 한국 서울에서 한일산업협력포럼을 공동 개최한다"라고 밝혔다. 파트너십 기금의 중점 사업이 양국 청년들의 교류인지 양국 기업들의 이익 증대인지를 드러내는 대목이다. 한일'청년'협력포럼부터 여는 게 아니라 한일산업협력포럼부터 열겠다는 것은 기금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국제적 관심의 초점인 전범기업의 참여 문제에 대한 도쿠라 회장의 발언은 더욱 더 가관이다. 기자회견 때 '미쓰비시중공업과 일본제철도 참여 의사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그는 "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거나 배제한다거나 하는 생각은 없다"고 한 뒤 "앞으로 협력 사업에 따라 요청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대답을 제대로 해달라는 요청이 다시 나오자 그는 "두 회사의 참여 여부는 사업 주제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이라고 답했다. 파트너십 기금이 추진할 양국 경제협력 사업이 두 기업의 업종과 관련이 있을 때 참여가 가능하다는 답변이다. 전범기업들이 기금을 출연하더라도 그것이 강제징용과 관련있는 게 아님을 보여주는 답변이다.

이처럼 기자회견과 소식지에서 드러난 것은 파트너십 기금이 양국 청년 교류와도 큰 관련성이 없다는 점이다. 소식지 제3장 제1항은 "게이단렌과 전경련은 청년층의 활약의 장을 넓히기 위해 관계 단체의 기존 실적을 바탕으로 젊은 인재의 교류를 촉진해 나간다"라고 한 뒤 이런 문제를 "경제계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라고 말했다.

'경제계의 관점에서 검토한다'는 단서는 파트너십 기금이 청년 교류에 쓰일지라도 양국 재계의 이해관계에 의해 제약될 것임을 시사한다. 전범기업 대표이사인 도쿠라 게이단렌 회장 등의 영향권하에 놓인 이 기금이 역사적·외교적 관점 혹은 청년 관점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지를 생각해 보게 된다.

한일 미래파트너십 기금은 일견 아시아여성기금이나 화해치유재단 같은 이미지를 풍긴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된 이미지다. 이 기금은 강제징용 해결을 명분으로 양국 주요 재벌의 이익을 추구하는 도구에 불과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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