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는 건 사진"이라는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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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수 기자]
▲ 스케치작업 이전에 찍었던 사진들이 그림의 소재가 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그 사진을 담을 당시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나에게 사진 한 장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과 같은 역할을 한다. |
ⓒ 김민수 |
디지털카메라로 사진을 담으면서 2005년부터 지금까지 컴퓨터 폴더에 일목요연하게 사진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들풀과 들꽃은 가나다순으로 정리를 하고, 나머지 사진들은 년도와 월별로 정리를 한다. 요즘은 세세하게 분류를 하지는 못하지만, 월별로는 반드시 정리를 해놓고 시간되는대로 분류를 한다. 이렇게 하면, 사진을 굉장히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다.
▲ 애기자운영 사진 속에 남아있는 정보를 통해서 이런 일련의 추억들이 2009년임을 알게 되었다. |
ⓒ 김민수 |
때론 완성을 하기도 하고, 그리다 말기도한다. 하지만, 어떤 사진이 되었든 그림의 소재로 사용되는 순간부터 그 사진에 얽힌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다.
애기자운영과 얽힌 추억은 이렇다. 해남 땅끝마을 아낙 사진을 찍기 전날, 대구 야산에서 애기자운영을 만났다. 편의점에서 우유와 빵을 사서 양지바른 야산 무덤가에 앉았다. 그때,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애기자운영을 행운처럼 만난 것이다.
대구를 간 이유는 수리산에 피었다는 깽깽이풀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도 물론 만났지만, 애기자운영은 덤으로 주어진 행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기억은 이어진다. 사진은 마치 마르셀 푸르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등장하는 홍차와 마들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너무 생생하다. 애기자운영을 만난 후, 순천만 일출을 본다고 달렸다. 결국, 우포늪에서 노을빛을 만나고 순천만 일몰은 보지 못했지만. 그리고 해남땅끝마을로 이어진 여정, 자정 가까울 무렵에 도착하여 싸구려 여인숙에서 잠을 청했다. 사진 덕분에 14년 전의 기억을 생생하게 어제 일처럼 기억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진들은 도통 기억을 소환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런 사진의 경우, 그냥 그런 사진들, 인증샷 정도로 찍는 것들이다. 그래서인지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들은 추억을 소환해내질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이런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다.
▲ 해남 땅끝마을 아낙 목줄을 한 강아지와 함께 빈 병을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아낙, 전형적인 시골의 모습이 정겹다. |
ⓒ 김민수 |
사진 한 장 속에 담긴 추억들을 새기며 그린 그림을 드디어 완성했다. 마음에 썩 들지도 않고, 사진보다 덜하지만, 그냥 그런대로 예쁘게 느껴지는 것은 그림을 그리며 몰입했던 시간에 소환된 추억들 때문일 것이다.
그 추억이 비록 좋은 것만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잃어버린 기억들을 소환해주니 고마울 뿐이다. 아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 사진에 대한 추억에 그림을 그리던 추억이 상기될 것이다.
젊어서부터 사진이든 글이든 그림이든 남기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것을 남김으로서 손해본 일은 없다.
여행 끝에 '남는 게 사진'이라는 말이 있는데, 왜 아니겠는가? 그 사진 속에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억들이 있으니 말이다. 추억이 들어있는 사진은 좋은 사진이다. 기억하지도 못할 사진들 말고, 좋은 사진들을 찍고 잘 분류하면 언젠가는 좋은 재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2005년부터 정리를 했지만, 그 이전에 '단 한 장의 사진' 그 사진의 진가를 알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늦지 않았다. 오늘은 머지 않아 과거가 될 것이고, 내가 남기는 사진은 단 한 장의 사진일 터이고, 그 사진은 언젠가 잃어버린 시간을 소환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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