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혹세무민, 빨간펜 첨삭지도 들어갑니다

이봉렬 2023. 6. 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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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째 수출 역성장, 무역수지 15개월 연속 적자가 '성장통'이라는 조선 기획기사

[이봉렬 기자]

 5월 31일 자 <조선일보> 1면 머릿기사 "중국을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
ⓒ 조선일보PDF
지난 5월 31일, <조선일보> 1면에 "중국을 벗어나니 세계가 보인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선일보> 경제부, 산업부, 국제부 기자들이 대거 동원되어 내놓은 특별기획의 시작을 알리는 기사였고 관련 기사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빠르게 낮아지는 대신 대미 수출 비율이 늘고, "유럽과 신흥 시장에서도 이 같은 '탈중국'에 나선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은 넘치고 있"는 등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겁니다.

"재빨리 미국 등 다른 시장에서 기회를 찾은 기업들의 결단력과 순발력", "놀라운 반전을 일궈냈다",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우리는 훨씬 당당하게 중국을 마주할 수 있을 것" 등의 희망찬 문장들이 기사 전체를 뒤덮고 있습니다. 이 기사만 보면 당장 우리 무역수지가 다시 흑자로 전환되고, 우리 기업들이 사상 최대의 실적을 발표할 것처럼 느껴집니다. 속된 말로 '국뽕' 가득 차오르는 기사입니다.

<조선일보> 보도대로 우리 기업들이 중국을 벗어나 더 넓은 세계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일보> 보도가 과연 우리 수출의 현주소를 제대로 짚어내고 있는 걸까요? <조선일보> 기사에 대해 빨간펜 첨삭 지도를 해보겠습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의미"?
 
 김완기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2023년 5월 수출입 동향을 발표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날 5월 통관기준 수출이 전년 동월보다 15.2% 줄어든 522억 4000만 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수입은 14.0% 줄어든 543억 4000만 달러였고 무역수지는 21억 달러 적자로 15개월 연속 적자였다.
ⓒ 연합뉴스
 
수출 감소와 무역수지 적자가 오래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까지 수출은 7개월 연속 감소했고, 무역수지는 14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이다.

이 첫 문장에서 <조선일보>의 깊은 고뇌가 읽힙니다. 기사가 나온 날은 5월 31일, 하루만 더 기다리면 5월의 무역통계가 발표됩니다. 그러면 최신의 정보를 가지고 보다 정확한 현실 진단이 가능한데 그 하루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6월 1일 발표되는 무역통계를 기사에 넣으면 8개월 연속 수출 감소와 15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라는 더 심각한 통계를 써야 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이면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빠르게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03년 이후 약 20년간 중국은 한국의 수출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우리나라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매년 25% 내외로 2위 수출국인 미국보다 늘 두 배가량 높았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대중 수출 비율이 19.4%까지 떨어져 2004년 이후 19년 만에 20% 아래로 내려갔다. 반면 대미 수출 비율은 17.9%까지 올라 격차가 크게 좁혀졌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는 날이 조만간 올지도 모른다.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율이 줄고 미국의 비율이 늘어나서 한국의 최대 수출국이 중국에서 미국으로 바뀌어 가는 걸 두고 <조선일보>는 "의미있는 변화"라고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말하는 "의미"가 과연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확인하기 전에 우선 도표 두 개를 보겠습니다.
 
▲ [도표1]  2000년 이후 교역 상대 최상위 5개국의 수출액 변화. 일본을 제외하면 시간에 따라 꾸준히 수출이 늘었습니다. 미국은 3배, 중국은 8배가 넘게 증가했습니다.
ⓒ 이봉렬
 
[도표1]은 2000년 이후 우리의 교역 상대 최상위 다섯 곳에 대한 수출액을 연 단위로 표시한 겁니다(참고로 유럽연합이나 아세안처럼 경제권역 단위로 비교하는 건 산업통상자원부가 매달 수출입 동향을 발표할 때 사용하는 방식입니다).
일본(50% 증가)을 제외하면 상위 네 곳은 꾸준히 성장을 거듭해서 20년 동안 3배에서 8배까지 수출액이 늘었습니다. 중국으로의 수출이 늘었다고 해서 미국으로의 수출이 줄지 않았고, 중국으로의 수출이 줄었을 때 미국으로의 수출이 늘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에 대한 수출은 세계 경기에 따라 함께 움직이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 [도표2]  2021년 이후 수출액 변화입니다. 2022년 2분기를 기점으로 전체적으로 수출액이 줄어 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그 때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 이봉렬
 
2021년 이후 수출액을 월 단위로 자세히 만든 [도표2]를 보면 2022년 2분기(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시기)를 전후로 중국과 아세안을 향한 수출이 줄어드는 게 도드라져 보입니다. 그에 비하면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향한 수출 증가 폭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숫자로 확인해 보면 올해 4월까지 대중 수출은 29%가 줄어서 <조선일보> 보도대로 전체 수출에서 중국 비율이 크게 줄었습니다.

반면에 대미 수출은 금액으로는 약 4억 6000만 달러, 비율로는 1.3% 증가하는 데 그쳤습니다. 미국에 물건을 많이 수출해서 비율이 증가한 게 아니라 중국에 대한 수출 물량이 줄어서 미국의 비율만 올라간 걸 알 수 있습니다. 이걸 두고 "의미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을까요? <조선일보>가 말하는 "의미"는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윤석열 정부의 내부 요인도 찾아봐야
 
최근 대중 수출 감소는 미·중 갈등, 반도체 불황, 중국의 경기 부진과 내수화 정책 등 주로 외부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미국에 대한 수출 증가는 우연히 이뤄진 게 아니다. 대중 수출이 2018년 1621억달러(약 214조원)에서 2022년 1558억달러로 뒷걸음질하는 동안 대미 수출은 727억달러에서 1098억달러로 51% 늘었다. 중국에서 위기를 맞았을 때 재빨리 미국 등 다른 시장에서 기회를 찾은 기업들의 결단력과 순발력이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신흥 시장에서도 이 같은 '탈중국'에 나선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은 넘치고 있다.

<조선일보>는 대중 수출 감소의 요인으로 "미·중 갈등, 반도체 불황, 중국의 경기 부진과 내수화 정책 등 주로 외부적인 요인"을 언급했습니다. 만약 외부적인 요인이 전부라면 중국과 무역을 하는 모든 나라들이 비슷한 수준의 수출 감소를 겪어야 합니다.

중국 해관총서의 자료를 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수입은 전년 동기대비 7.1% 감소했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상위 10개 수입국 가운데 러시아(32.6%), 호주 (11.2%), 중남미 (6.5%) 같은 나라는 오히려 중국으로의 수출이 늘었습니다. 아세안(-6.1%), EU(-2.4%) 등은 대중 수출이 줄긴 했지만 그 비율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중국과 갈등을 겪고 있는 미국의 대중 수출도 1.7% 감소에 그쳤습니다.

그에 반해 한국은 28.2%가 줄어들어 상위 10개국 가운데 최악의 수출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내부적인 요인도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요? 윤석열 정부의 "탈중국 선언"이나 대만 관련 강경 발언 같은 것 말입니다.

올해 들어 4개월 동안 우리나라 전체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3%나 줄었습니다. 앞서 대중 수출은 29%가 줄었고, 대미 수출은 1.3% 증가에 그쳤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교역규모 2위인 아세안에 대한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21%가 줄었고, 일본에 대한 수출도 13.1%가 줄었습니다. 수출이 증가한 지역은 EU(5.2%)와 러시아를 포함한 독립국가연합(CIS) 지역 (26%) 정도입니다.

하지만 EU는 수출이 늘어난 것보다 수입이 더 늘어 무역수지는 역성장했고, CIS의 경우는 해당 지역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의 2% 남짓에 불과합니다. <조선일보>는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과 신흥 시장에서도 이 같은 '탈중국'에 나선 한국 기업들의 활약상은 넘치고 있다"고 했는데 그 넘치는 활약상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요?

그다음 두 문단은 현대차·기아차의 인도 진출, CJ의 미국 시장 개척, 엔터테인먼트 업체의 최대 실적을 중국을 벗어나 세계에서 성공한 사례라고 소개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업들의 성공사례가 중국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거라 단정할 수 없을 뿐더러, 지난 20년간 우리의 수출 현황을 봤을 때 중국에서의 성공과 또 다른 시장의 개척이 동시에 이룰 수 없는 두 마리의 토끼는 아닐 겁니다.

<조선일보>가 현대차의 탈중국을 보도한 다음 날인 6월 1일, 현대차그룹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시에서 연료전지 시스템 생산공장 준공식을 개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기업들은 탈중국 하는 게 아니라 시장이 있는 곳에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정부 부담 덜어주기 위해 짜낸 기사?
 
 14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인 무역수지. 2023년 누적 무역수지 적자는 271억 달러에 달합니다.
ⓒ 이봉렬
 
2000년대 초 급성장하는 중국에 위협을 느낀 미국과 유럽이 반덤핑 규제를 강화하자 당시 보시라이 중국 상무부장은 "서구보다 훨씬 가난한 중국이 이제 겨우 그들과 경쟁하려 하니 문을 걸어 잠그는 것은 이중 잣대"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된 후 중국은 경제와 무역을 정치·외교적 지렛대 삼아 많은 나라를 상대로 압력을 일삼았다. 중국 시장을 걸어 잠그면 한국 경제가 휘청일 것이고, 그러면 한국을 더 쉽게 길들일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고 많은 전문가는 봤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한국 경제는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고도 살아남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전광우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은 "최근 무역 적자는 20년간 이어져 온 중국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이지만, 체질 개선이 끝나면 우리는 훨씬 당당하게 중국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개월 연속 감소한 수출과 14개월 연속 적자 행진 중인 무역수지 정도는 "중국 의존증에서 벗어나기 위한 일종의 성장통"으로 여기는 대범함에 혀를 내두르게 됩니다.

2022년의 우리나라 무역적자는 470억 달러가 넘어 사상 최대이자 14년 만에 첫 적자였습니다. 올해는 5월까지 누적 무역적자가 271억 달러를 넘어 전년 동기 대비 3배 이상 더 커졌습니다. 수출은 8개월째 역성장을 기록했고 무역수지는 무려 15개월 연속 적자입니다.

무슨 성장통이 이렇게 사람 잡을 듯 무시무시합니까? <조선일보>는 "체질 개선이 끝나면 우리는 훨씬 당당하게 중국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지금은 체질을 개선 중이 아니라 병원에서 산소호흡기를 하고 있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릅니다.

<조선일보>의 이번 기획 기사는 아무리 기사를 꼼꼼히 읽어 봐도 탈중국과 좌충우돌 외교로 인해 집권과 동시에 끝없이 이어지는 무역적자 행진을 자초한 현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억지로 짜낸 기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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