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완성한 전북 제일의 살림집 꽃담
[김정봉 기자]
먹거리가 풍부하고 다양해 맛이 나는 고장, 전라도. 역설적으로 조선후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착취와 수탈의 대상이 되었다. 질곡의 역사 속에서 민중은 소리로 글로 그림으로 멋을 부리며 고달픈 나날을 삭였다. 이래서 전라도는 멋과 맛을 아는 예술의 고장으로 불린다.
전북 제일의 집, 김명관고택
멋과 맛은 집안에서도 드러난다. 전라도 지역은 조선후기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농, 상업이 발달하면서 부농가옥이 생겨났다. 신분을 떠나 부의 축적에 따라 대규모 가옥들이 들어서고 새로운 주거양식이 도입되었다. 정원 가꾸기, 집안꾸미기, 담 치레에 부지런하여 여러 꽃담을 선보인다. 특히 전북지역에서 두드러진다.
전형적인 부농가옥인 장수의 장재영가옥(1856)과 권희문가옥(1773), 정상윤가옥(1938), 1920년대에 지어진 익산 김병순고택과 조해영가옥, 정읍 김명관고택(1784)과 진산동 영모재(1915), 고창 김정회고가(1862), 군산 임피 이돈희가옥(일제강점기), 전주 최부자댁에서 조선후기의 전통꽃담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다소 과장된 여러 꽃담이 발견된다.
▲ 김명관고택 둘째아들집 꽃담 김명관고택과 둘째아들집 골목 안에 있는 꽃담이다. 푸석해진 흙돌담에서 세 송이 꽃봉오리가 수줍어하고 있다. |
ⓒ 김정봉 |
고택은 정읍시 산외면 오공리 공동마을에 있다. 오공리(五公里)는 원래 지네를 말하는 오공리(蜈蚣里)이었다. 동네이름도 지네마을, 공동(蚣洞)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지금처럼 공동(公洞)으로 바뀐 것이다. 고택은 지네산이라 불리는 창하산이 둘러싸고 있다. 숨결이 열린 듯 창하산은 봄기운이 타오르고 고택 앞 동진강은 보드랍게 흐른다. 천하명당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네형 터는 길지로 여겨지고 있다. 지네는 다리가 많아 자손이 번성하고 재화를 많이 모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온 것이다. 실제로 입향조, 김명관(1755~1822)이 여기에 터를 잡은 후 아들 김상홍(1794-1880)대에 크게 번성하여 한 해 1200석을 거둬 천석부자 소리를 들었다.
서울에 살던 김명관이 광산김씨의 동족촌으로 공동마을에 터를 잡은 때는 1770년 대 전후다. 김명관은 1773년에 고택을 짓기 시작해 10년 넘게 걸려 1784년에 완공했다. 고택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김명관이 둘째아들을 분가시킬 때 건립한 집이고 왼쪽 집은 셋째아들집이다. 둘째아들집은 본집이 완공되고 30년 후에 착공하여 10년 만에 지었다 한다. 시기가 살짝 맞지 않으나 상량문에는 1834년으로 되어있다.
10년에 걸쳐 건립한 알뜰한 고택
▲ 김명관고택 정경 고택 행랑채 화방벽과 솟을대문은 드세 보이지만 고택 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알뜰한 살림집으로 아기자기하다. |
ⓒ 김정봉 |
너른 터에 솟을대문과 바깥행랑채, 사랑채, 안행랑채, 안채, 안사랑채, 사당이 오밀조밀 배치되고 각 건물을 중심으로 바깥마당에서 문간마당, 사랑마당, 안채마당, 안사랑마당까지 독특한 마당이 펼쳐있다.
▲ 문간마당 문간마당은 고택의 첫인상, 맑고 깨끗하다. 솟을대문을 통해서 본 화단 속 담홍색 박태기나무는 강렬했다. |
ⓒ 김정봉 |
문간방과 문간사랑채, 대청, 부엌이 구비되어 있어 따로 한 살림 차려도 될 법하다. 문간방은 하인이, 문간사랑채는 집안의 잡일을 맡아보는 청지기가 거주했다. '청지기가 벼슬인줄 안다'라는 속담이 있듯 혹시 청지기가 완장질을 했을지 모르지만 일반하인들이 집안일을 하다 짬을 내 주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 김명관고택 사랑채와 합각 집주인이 생각해도 사랑마루의 난간이 허접하게 보인 건지, 사랑채합각에 와수문을 새겨 상류주택의 권위를 드러냈다. |
ⓒ 김정봉 |
누마루 대신 마루 끝에 막대기로 기둥사이를 가로질러 만든 단출한 난간, 수더분한 용(用)자 문살과 키 작은 굴뚝에서 집주인의 따스한 정감이 읽힌다. 권위, 생색 대신 실속을 택한 것이다. 이 고택을 두고 모두 한 결 같이 알뜰한 집으로 평가하는 이유다.
▲ 김명관고택 안채 ㄷ자형안채를 더 큰 ㄷ자형행랑채가 감싸고 있어 마당은 꽉 짜여있는 느낌이 든다. |
ⓒ 김정봉 |
▲ 중문채 가는 길 사랑채에서 안채로 가는 징검돌 길이다. 고택 곳곳에 화단이 마련되어있어 기분을 좋게 한다. |
ⓒ 김정봉 |
이 길은 안채문이 잠겨있을 때 사랑채 주인이 안채의 작은 방인 부인방으로 은밀하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든 비밀의 길, 사랑의 길이다. 안채에도 대청이 닫혀있을 때에 출입이 가능하도록 별도의 퇴를 붙이고 문을 달아놓았다.
▲ 안채부엌 서까래 얼룩말무늬의 안채 부엌 서까래다. 섬약한 부재로 재창조된 이 고택의 미는 서까래에도 머물렀다. |
ⓒ 김정봉 |
다시 안채마당은 안사랑채마당으로 이어진다. 안사랑채는 손님이 유숙하거나 출가한 딸이 해산하러오면 머무른 곳이라 한다. 안채의 절반이 대청으로 이루어질 만큼 안채를 보완하는 기능이 크다. 안사랑채에 딸린 협문으로 나가면 골목과 함께 둘째아들집의 대문이 나온다.
은은한 둘째아들집 꽃담
▲ 둘째아들집 바깥꽃담 세 송이 꽃 중 맨 오른쪽 꽃봉오리다. 꽃이 살짝 피려고 하는지 암술과 수술 모양이 표현되어 있다. |
ⓒ 김정봉 |
조선말 이후 많이 완화되었지만 이웃 눈치보지 않고 자랑하듯 집밖에는 꽃담으로 쌓지 않는데 이 골목 안 바깥꽃담은 좀 다르다. 마을사람들이 다니기보다는 한식구나 다름없는 큰댁, 작은댁 사람들이 주로 이용하는 길이어서 바깥에 꽃담을 쌓아도 그리 흉이 되지 않는다 생각한 게다.
꽃담은 있는 둥 마는 둥, 미적 표현의 욕망은 자제되어 기교를 부리거나 장식을 하지 않아 질박하다. 이제 세월은 흘러 흙돌담은 푸석푸석해지고 꽃담마저 낯빛이 바랬다. 그러나 조잡하고 반질반질한 일부 현대 꽃담과 달리 은근한 끝 맛이 있다.
▲ 둘째아들집 꽃담 이집 꽃담의 꽃잎은 모두 세 잎이다. 전형적인 꽃잎새김으로 균형미가 있다. 바깥꽃담과 함께 집안의 번영과 번창을 기원한다. |
ⓒ 김정봉 |
사시사철 무지개가 떠있는 고택의 꽃담
▲ 사랑채 후원 정경 석물과 꽃담은 인공, 온갖 가지 꽃은 자연, 인공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후원은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 된다. |
ⓒ 김정봉 |
사랑채 후원은 이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이다. 석물(石物)과 동백, 목련, 무도철쭉, 산철쭉, 산수유, 집주인이 좋아하던 작약에다 ㄱ자형 내외담 꽃담까지 함께 어울려 있다. 살이 적어 햇빛이 많이 들어오는 용자문 사랑채 문을 통해 멀리 야리야리한 연록의 산과 가까이 연분홍 산철쭉, 연노랑 무지개꽃담을 보고 있으면 주인이 아니더라도 찰나의 나른한 행복감에 젖는다.
▲ 내외담 꽃담 수키와와 암키와, 삼화토를 이용하여 담장 양면에 연노랑 수파문(水波紋)을 낸 꽃담이다. |
ⓒ 김정봉 |
사랑채 양편 합각에도 와수문과 원형문양을 내어 소소한 멋을 부렸다. 부안 내소사 관심당합각무늬와 흡사하다. 우선 수키와 다섯 개를 이어 붙여 파도가 치는 와수문을 내고 그 위에 암키와로 직선을 구성하였다. 그 위에 수키와 두개를 겹쳐 원을 만들어 끊임없이 복을 가져다주는 복해(福海)의 바다에 둥그런 해가 떠있는 모양을 표현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전 세계 노인들 삶의 마지막 10년, 무서운 공통점 있었다
- '면직' 당한 한상혁 "다음 축출 대상은 KBS-MBC 사장"
- "집주인 통장 압류해봤자 잔액 '42원'... 바보라서 사기 당했겠나"
- 장어작살, 조새, 낙지호미... 맨손어업과 갯벌어로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양두구육과 양치기
- 병원 동의서에 서명하기 전, '이것'을 확인하세요
- "GS·우미건설 철근 빼먹어...올해부터 시공하는 아파트 사지말라"
- "이태원 참사, 우리와 무관치 않다"... 한 학생의 힘나는 응원
- 민주당 단체로 분노 유발한 국힘 이채익 “나라 망친 문재인! 석고대죄하라”... ‘우크라, 6.25
- [10분 뉴스정복] 보수 진영의 조급함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