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부다비를 경유하는 저가항공, 비극의 시작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기자]
짧은 중앙아시아 여행을 마치고, 저는 다음 여행지로 향합니다. 원래 이번 여행에서는 항공 이동을 최소화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니 원래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이란을 거쳐 아제르바이잔으로 향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투르크메니스탄은 코로나19 이후 아직까지 문을 열지 않은 극소수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이란은 국경을 열었지만, 지난해부터 여성의 히잡 착용 문제로 시위가 이어지고 있지요. 여학생에 대한 화학가스 테러도 발생하는 상황입니다. 아제르바이잔은 육로 국경을 열지 않았습니다.
▲ 아부다비로 향하는 비행기 |
ⓒ Widerstand |
짐이 분실된 것을 알아차리고 곧바로 공항 카운터에 신고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겠다고 해 초조히 기다렸지만, 결국 가방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고서를 작성하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물론 귀중품은 배낭에 두지 않고 따로 작은 가방에 빼 두었습니다. 그러니 엄청나게 큰 피해를 본 것은 아니죠. 항공사에서 얼마나 보상을 해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감당 가능한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 아부다비 시내 |
ⓒ Widerstand |
그나마 밥을 먹으니 약간 정신이 들었습니다. 그제야 상황을 좀 정리해 보았습니다. 같은 비행기에서 짐을 잃어버린 것은 저 혼자였습니다. 항공사 측에서도 특별히 이유를 찾지는 못했습니다.
▲ 아부다비 시내 |
ⓒ Widerstand |
사실 눈에 보이니 들고 왔을 뿐, 막상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이 배낭에 여럿 들어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배낭여행을 하고 있으면서도, 쓸데없는 무게를 어깨에 메고 있었던 셈입니다.
어찌보면 배낭의 무게는 불안의 무게입니다. 제 의지는 아니었지만, 저는 제 불안을 어디에선가 잃어버린 셈이지요. 제 불안이 사마르칸트 공항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인도에서 만났던, 작은 보따리 하나만 들고 여행하던 스님들도 떠올렸습니다.
▲ 아부다비의 루브르 박물관 분관 |
ⓒ Widerstand |
아랍에미리트는 연방제 국가입니다. 에미르(Emir)가 다스리는 에미르국(Emirate) 7개가 모여 만드는 나라입니다. 아부다비도 두바이도 이 7개의 에미르국 가운데 하나죠. 이 가운데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대통령이 되고, 두바이의 에미르가 부통령 겸 총리가 됩니다. 전제군주제이지만, 또 대통령제를 갖춘 나라가 되는 셈입니다.
전제군주제의 이슬람 국가이지만, 한편으로 사회적 분위기가 그리 경색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주 노동자를 비롯한 외국인이 많은 영향이 크겠죠. CIA 팩트북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의 인구 중 88.4%는 외국계 인구입니다.
▲ 아부다비 전경 |
ⓒ Widerstand |
결론부터 말하자면 배낭은 다시 찾았습니다. 끝내 항공사 웹사이트에서는 신고 현황에 변화가 없었습니다. 짐을 추적하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는 메시지 뿐이었죠. 공항 측에서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접 찾아보겠다고 공항 측에 요청했고, 사마르칸트에서 오는 다음 비행기편에 제 가방이 실려 있었습니다.
▲ 아랍에미리트의 국기 |
ⓒ Widerstand |
하지만 왠지 여행이 다시 시작된 것 같은 기분만은 남았습니다. 배낭 없는 배낭 여행자가 다시 배낭을 찾았으니, 생활의 전부를 되찾은 것과 다름 없지요. 작은 가방 하나가 삶의 전부를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합니다.
그렇게 찾은 배낭을 메고, 저는 다시 서쪽으로 향해 보겠습니다. 다시 서쪽으로 여행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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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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