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정치, 그리고 목사

2023. 6. 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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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가 해야 하는 일과 관련해서 혼란이 있습니다.

목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내용은 정치 이야기인데 저에겐 목사직에 관한 물음과 답변으로 읽혔습니다.

정치가처럼 목사도 일종의 권력을 부여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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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책] 직업으로서의 정치(막스 베버 지음/전성우 옮김/나남)


목사가 해야 하는 일과 관련해서 혼란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외국 문화의 부적절한 잔재로 여기기도 하고 또 어떤 이들은 교회가 고용한 영적 교통순경이나 교회 경영 관리자쯤으로 생각합니다. 목사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어야 할까요.

이 질문은 목사인 저에게 오랜 숙제입니다. 이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지만, 어렴풋이나마 말할 수 있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몸과 마음이 지칠 대로 지쳤던 날이었던 것 같아요. 교인들이 만든 교회 서고에서 얇은 책을 무심코 꺼냈는데,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정치’였습니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고 담백한 책인데,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글자가 종이 위를 뛰어다니는 듯한 경험을 했습니다. 내용은 정치 이야기인데 저에겐 목사직에 관한 물음과 답변으로 읽혔습니다.

베버는 책에서 정치가의 자질을 세 가지 요소, 열정 책임의식 균형감으로 꼽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목사에게도 똑같이 중요합니다. 정치가처럼 목사도 일종의 권력을 부여받습니다. 아니라고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공동체 의사결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이지요. 베버는 열정을 “하나의 대의와 이 대의를 명령하고 규정하는 주체에 대한 열정적 헌신”이라고 규정하면서 “열정에는 중간이 없다”고 설명합니다. 바꿔 읽으면 목사의 열정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열정이지만 까딱하다간 하나님을 빌어 악마의 일에 헌신할 수도 있다는 말도 됩니다.

실제 그런 경우를 자주 봅니다. 그러니 열정만 가진 목사라면 곤란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헌신의 열정은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어야 하고, 더 나아가 이 책임의식이 목사 자신의 행동을 주도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균형감입니다. 베버에게 균형감이란 내가 속한 공동체를 냉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능력, 즉 사물과 사람에 대해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 균형감은 후천적으로 길러지고 함양됩니다. ‘목사는 책을 많이 읽고, 양질의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좋은 교육을 통해 좋은 목사가 만들어집니다. 교육을 통해 균형감이 함양되기 때문입니다.

24시간 기도만 하고 불 받아야 균형감이 길러지는 게 아닙니다. 혼자 ‘영빨’ 있다고 혼자 다 안다고 잘난 체하다간 균형감이 무너지고 결국 사물과 사람에 대한 거리감을 상실하고 맙니다. 거리감의 상실은 그것 자체로 공동체를 책임져야 하는 목사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를 파괴하는 가장 큰 죄에 속합니다. 돈 혈연 학연 지연에 따른 인간관계가 목사의 행동과 사리판단 기준이 될 때, 그것은 거리감이 상실됐다는 신호입니다. 거리감이 상실되면 정치든 목회든 필연코 무능의 길로 빠지고 맙니다. 목사에게 관심 있는 사람 모두에게 이 책을 추천합니다.

최주훈 목사(중앙루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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