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 정부 부채 협상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

입력 2023. 6. 2. 00:55 수정 2023. 6. 2.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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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 CSIS 키신저 석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화당 소속 케빈 매카시 연방 하원의장이 가까스로 정부 부채 한도 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장기간 대치 정국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이 출렁거렸다. 미국을 비판해온 이들은 이런 갈등으로 결국 중국이 아시아를 장악할 거라며 비웃고 있다. 미국에 우호적이던 호주 언론인은 “거버넌스와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을 놓고 끊임없이 싸우는 미국은 제대로 정상적인 기능을 하는 국가의 존재를 위협하는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부채 한도를 놓고 벌어진 극한 대치는 미국 리더십의 취약점을 드러냈고, 이러다 미국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줬다. 잠재적으로 경제적 위기로 번질 수도 있는 이런 정치적 위기가 어떻게 발생했는지 살펴보자.

「 민주당 정부와 공화당 극한 대치
세계 시장과 동맹에 불안감 안겨
그래도 미국은 ‘가장 덜 나쁜 동맹’

글로벌 포커스

공화국 초기부터 미국은 분권 체제를 수립해 어떤 전제군주도 다시는 개인의 자유를 위협하지 못 하게 했다. 이를 위해 대통령이 아닌 의회가 정부 지출과 부채에 대한 통제권을 갖도록 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다시 적자 지출에 들어감에 따라 연방 정부가 부채 상한을 올릴 때 의회의 승인을 받도록 법으로 규정했다.

글로벌 기축 통화인 달러와 안전하고 매력적인 미국 재무부 채권 덕분에 미국 정부는 부러울 정도로 무제한의 국채 발행이 가능하지만, 이는 재정 건전성을 취약하게 할 수도 있다. 지난 11월 중간 선거에서 그랬듯 공화당이 의회를 장악할 때마다 민주당 대통령이 추진하는 사회복지 예산에 대해 제동을 걸어왔고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런 프로세스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원했던 그림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문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부추기는 가운데 소수 강경 우익 공화당 의원들이 가혹할 정도로 비현실적인 예산 감축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타협하느니 디폴트(채무 불이행)를 감수할 태세다.

매카시 의장과 바이든 대통령이 결국 합의를 이뤄냈다. 민주당의 진보적 의원들이 불참하고 친트럼프 성향의 공화당 의원들이 반대했지만, 두 정당의 중도 성향 의원들이 힘을 모았다. 디폴트는 겨우 피했지만 글로벌 시장은 큰 타격을 받았다. 이 와중에 바이든 대통령은 예정했던 호주와 파푸아뉴기니 방문을 취소해야 했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 정상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고, 미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 진심이 아니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부채 협상 와중에 미국의 역량에 대한 신뢰도 타격을 입었다. 이념에 가득 찬 몇 안 되는 의원들에 의해 미국이 디폴트에 빠지고 글로벌 경기 침체까지 올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시장과 동맹국들은 큰 불안을 느낀다. 전 세계 눈앞에서 벌어진 이번 부채 한도 대치로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이런 불신을 완전히 지워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울지 모른다.

물론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계속 건재하겠지만, 정파적이고 무정부주의에 가까운 극우 세력은 어느 때보다 큰 위협으로 남았다. 게리맨더링(기형적 선거구 분할) 지역구 출신의 이들 의원은 각개전투 형태로 지지자들의 분노를 먹이 삼아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민주당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상황이다. 결국 국익은 후순위로 밀려난다.

이번 부채한도 위기 이면에는 고무적인 뉴스도 숨어있다. 바이든과 매카시 의장은 각각 당내 극단적인 목소리를 이겨냈다. 이제는 양극단이 아닌 중도를 위한 일련의 입법안을 위해 초당적 지지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소수 의원에 의해 때때로 정치가 실종될 수 있지만, 영원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미국 정치사에 정당들의 극한 대립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의 모습은 전 세계 시장과 동맹국을 동요하게 하는 새로운 형태를 띤다. 그런데도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의 유명한 말처럼 ‘민주주의는 여태까지 시도된 모든 다른 형태의 정치체제를 제외한다면 그나마 덜 나쁜’ 정치 체제다. 부채한도 대치에도 미국은 여전히 유럽과 아시아 동맹국엔 없어서는 안 될 초강대국 입지를 유지할 것이다. 처칠의 말을 살짝 비틀어 미국을 표현하면 ‘다른 모든 대안을 제외한다면 아마도 가장 덜 나쁜 동맹국’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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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그린 호주 시드니대 미국학센터 소장·미국 CSIS 키신저 석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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