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원의 마음상담소] 내가 뭐라고 우울이 없을까요?

입력 2023. 6. 2. 00:48 수정 2023. 6. 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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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심리치료를 업으로 하는 임상심리학자들도 때론 우울한지 궁금해하는 분이 더러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습니다. “저희도 예외 없이 우울하지만, 그 우울을 어떻게든 잘 데리고 다니려는 중입니다.”

한때 몹시 오만하게도 이제 저의 우울은 완전히 사라졌다고 믿고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5년 전 제 우울을 우연한 기회로 통렬히 마주하고는(이 이야기는 언젠가 할 기회가 또 있겠지요), 저는 우울을 계속해서 눈치채 주고 씩씩하게 잘 다루며 지내왔습니다.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우울이 들려주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고, 쉬어 가야 할 때와 애도해야 할 대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필요할 때면 동네방네 징과 꽹과리를 울려 우울의 습격을 알렸고, 지원군의 도움을 받아 제게 찾아온 우울을 잘 돌려보냈습니다. 작년까지는 그랬습니다.

「 임상심리학자들도 겪는 우울
아무리 커져도 마음보다 작아
때로는 통찰의 도구가 될 것

[일러스트=김지윤]

올봄에는 조금 다른 일이 벌어졌습니다. 문득 시작된 ‘우울에 대한 우울’이 문제였습니다. 나는 대체 언제까지 우울해야 할까. 전문가라면서 어째서 이렇게까지 버거운 것일까. 우울을 계속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내 직업이 문제였을까. 일하다가도, 아이를 보다가도, 운전 중에도 이런 생각이 꼬리를 물면, 그토록 암담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울에 대한 우울은 몇 달간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길, 문득 “아니, 내가 뭐라고 우울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미쳤습니다. 저는 저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에 대한 우울 역시 저의 두 번째 오만이었을 것입니다. 우울을 인지하는 것에서 바야흐로 수용하기까지 5년이 걸린 셈이기도 합니다. 다양한 우울장애 중 주요 우울장애만 따져도 인구 열 명 중 한 명인데, 제가 대체 뭐라고 우울이 없을까요? 그렇게까지 우울을 밀어내려고 할 건 또 뭐가 있을까요?

우울을 수용하기 시작하자 마음의 격랑은 삽시간에 고요해졌습니다. 우울을 알아차리고 어쩐지 수선스러운 기분이 들던 때와는 사뭇 다른, 무서우리만치 고요한 마음이었습니다. 우울이 사라졌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우울이 나를 비집고 들어오면 내 마음의 크기를 더 크게 내어주면 될 일이지, 내가 뭐라고 우울이 없기를 바라고 있을까?” 하는 단순한 통찰이 주는 위력이었습니다.

어제 개막한 세계인지행동치료학회(WCCBT 2023)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스테판 호프만(Stefan Hofmann)과 스티븐 헤이즈(Steven C. Hayes) 등 심리치료의 대가들은 20여년 전부터 이런 이야기들을 해왔습니다. 우울에 애써 도전하려 하지 말 것. 다만 우울을 잘 인식하고, 배우고, 자신에게 가치 있는 활동에 전념할 것. 이제 많은 임상가는 내담자에게 “우울을 극복하고 싶다는 생각이 증상일 수 있다”라고도 합니다. 실제로 우울은 그렇게까지 극복하고 정복해야만 하는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방 안에 의자가 있듯, 아득히 무한한 우리 마음의 공간에 우울 하나쯤은 있을 수도 있겠지요. 일상생활 내내 ‘내 방 안’의 ‘그 의자’를 신경 쓰며 비참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떤 날은 나에게 찾아온 우울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맞이하기도 하지만, 때로 우울을 돌보기 힘든 상황이거나 그날의 우울감이 유독 거대하다면, 그때엔 나의 마음의 크기를 더욱 크게 하여 우울을 품어버립니다. 우울이 아무리 커져 봤댔자 우리 마음의 공간보다 커지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울을 그 자리에 두고도 우리는 제법 잘 지낼 수도 있습니다.

외면하고 있던 우울을 발견할 때 혹은 우울이 어쩌면 영구히 나의 마음에 들어앉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슬프고 불편한 느낌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 ‘하등 쓸모없는 우울’이 사라지길 여전히 간절히 바랄 수도 있습니다. 이번 학회에 참석 중인 또 다른 심리치료의 대가 로버트 리히(Robert Leahy)가 2018년 한국 방문 당시 했던 이야기도 덧붙이고자 합니다.

“심리치료의 목표는 모든 것을 쉽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고 느끼게 해 주고, 무력감에 반박하는 것. 하여, 매일 불편감을 감내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치료의 목표입니다. 매일의 불편한 일을 기록하는 것이 숙제로 제공되며, 이때 내담자들은 대인관계, 운동, 공포의 대상 등을 적어옵니다. 다음 회기에서 내담자들은 자랑하기를, 자신이 선택한 일이 얼마나 불편했는지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신경증적이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님을 이제 압니다. 불편감은 성취의 도구이며 성취의 과정 그 자체입니다.”

우울하고 불편해도 괜찮습니다. 그게 어때서요. 그만한 자리 하나 우리 마음에 자비롭게 내어주고 지금의 역사를 쓰세요. 모든 감정은 우리의 삶의 통찰을 얻기 위한 도구이며, 구도의 과정 그 자체입니다.

허지원 고려대 심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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