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3년? 홍콩의 밤은 더 화려해졌다

백종현 2023. 6. 2.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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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아 피크 전망대에서 본 홍콩의 야경. 홍콩을 대표하는 풍경이다.

중국 정부가 ‘제로 코로나’ 방침을 거두면서, 홍콩이 예전의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지난 몇 년간 홍콩은 여행자에게 사라진 도시였다. 2019년 민주화 시위, 2020년 국가보안법 시행과 코로나 확산까지 격동의 시절을 보내면서 국제 관광도시 홍콩의 면모는 빛을 잃었었다. 지난달 홍콩에 다녀왔다. 다시 열린 홍콩은 그사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추억의 관광지, 새로 뜨는 핫플레이스를 두루 돌아봤다.

연말까지 300개 넘는 축제·할인 행사

서구룡 문화지구의 해안 산책로. 관광객 몰리는 ‘스타의 거리’에 비해 한산한 매력이 큰 장소다. 바다 너머의 센트럴 도심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담기 좋다.

홍콩은 지금 절박하다. 코로나 기간 관광객이 끊기며 기반 산업이 무너져버렸기 때문이다. 연간 6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찾던 국제도시의 명성이 바닥까지 떨어졌었다. 지난 2월 홍콩 정부는 사실상 멈춰 선 관광산업을 다시 살리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름하여 ‘헬로 홍콩’. 연말까지 300개 이상의 축제와 이벤트, 각종 할인 프로모션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난달 8일 홍콩국제공항에 도착해 제일 먼저 목격한 것도 100홍콩달러(약 1만6000원)짜리 소비 바우처를 외국인 여행자에게 무료로 나눠주는 풍경이었다. 3500억원 규모의 홍콩 왕복 항공권 50만 장을 전 세계에 배포하는 무료 이벤트는 이미 전 세계에서 화제를 일으켰다. 지난달 한국에도 항공권 약 2만4000장을 뿌렸는데, 이벤트 홈페이지에 12만 명이 동시에 몰리면서 접속이 지연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대대적인 물량 공세가 통했는지, 3월부터 매달 200만 명이 넘는 여행자가 홍콩을 방문하고 있다. 개관 100년을 앞둔 페닌슐라 홍콩 호텔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제 절반가량 객실이 찬다. 객실 가동률이 한 자릿수에 머물렀던 지난해에 비하면 놀라운 변화다.”

디즈니 화·목은 폐장…“곧 매일 열 듯”

일명 ‘마블 히어로 퍼레이드’. 최근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홍콩에 도착해 디즈니랜드부터 들렀다. 연간 600만 명이 넘게 방문했던 홍콩 디즈니랜드는 코로나가 닥친 2020년 한 해에만 27억 홍콩달러(약 4000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지난해도 폐쇄 조치를 따르느라 6개월밖에 열지 못했다. 홍콩 최대 놀이시설의 오늘이 궁금했다.

일명 ‘마법의 성 야간 공연’. 최근 홍콩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평일이었는데도 파크 안은 의외로 시끌벅적했다. 디즈니 공주풍 드레스를 입은 어린 꼬마들, 세계 각지에서 온 단체여행객이 파크 곳곳을 활보했다. 그들과 어깨를 부대끼며 ‘어벤저스’ 주역이 총출동하는 히어로 퍼레이드를 구경했다. 디즈니·픽사 명장면을 3D 멀티미디어 맵핑 쇼로 구현하는 ‘마법의 성 야간 공연’를 비롯해 눈에 돌아갈 만한 신종 콘텐트가 여럿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디즈니랜드 관계자는 “지금은 화·목요일을 제외한 주 5일 개장하고 있지만, 예전처럼 매일 개장하는 날이 머지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홍콩 제일의 야경 명소로 통하는 ‘빅토리아 피크(552m)’에 올랐다. 전망대까지 45도 급경사를 오르는 명물 ‘피크 트램(1888년 개통)’에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낡은 전차 대신 커다란 파노라마 창으로 둘러싸인 새 트램이 도입됐는데, 15분에 한 번씩 210명(기존 120석)을 태우고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의 눈부신 야경만큼은 달라진 게 없었다. 홍콩에만 높이 100m 이상의 고층 빌딩이 4000개가 넘는다는데, 과연 밤하늘의 별보다 도시의 불빛이 더 크고 화려하게 빛났다.

‘스타의 거리’ 이소룡 동상 인기 여전

침사추이 한편의 이소룡 동상. ‘스타의 거리’의 상징이다.

홍콩은 작다(서울의 약 1.8배). 해서 바다를 매립해 땅을 넓히고, 그 위에 빌딩과 녹지를 조성하는 식으로 체급의 한계를 극복해왔다. 홍콩국제공항과 디즈니랜드가 그렇게 탄생했다.

침사추이 시계탑 앞에서 단체 여행객이 기념사진을 담고 있다.

근래의 변화가 가장 잘 보이는 장소는 구룡(주롱)반도 서남쪽의 ‘서구룡 문화지구’다. 무려 216억 홍콩달러(약 3조6400억원)를 투입해 해안을 간척하고 박물관·미술관·공원 등을 조성했다. 특히 전시실만 33개를 갖춘 대형 미술관 ‘엠플러스(M+)’의 반응이 뜨겁다. 2021년 11월 개관했는데, 4개월 만에 100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지난달 9일 하루만 해도 ‘구사마 야요이 회고전’을 비롯해 15개 전시가 동시에 벌어졌다. 미술관에서 홍콩 앞바다와 센트럴의 마천루를 내다보는 전망도 훌륭했고, 전시실 옆 카페의 분위기도 그윽했다. 건물을 빠져나오니 2㎞ 길이의 해안 산책로가 이어졌다.

서구룡 문화지구의 문화 공간 ‘엠플러스’.

구룡반도 침사추이의 오랜 명물 ‘스타의 거리’도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3년 전 대대적인 개보수를 거치면서 낡은 분위기를 벗었다. 배우 장국영의 얼굴을 새긴 해변 난간 앞에 유독 관광객이 많이 몰려 있었다. 거리의 상징이랄 수 있는 이소룡 동상 앞에서는 이날도 액션 영화 촬영이 한창이었다. 홍콩의 변화와 여전한 활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여행정보=홍콩 입국이 자유로워졌다. 격리 의무는 물론이고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사라졌다. 패키지여행이 아니라면 ‘옥토퍼스 카드’가 필수다. 충전식 교통카드로 MTR(지하철)·트램·버스·페리 등의 대중교통에서 두루 쓸 수 있다. 6월의 홍콩은 비가 잦은 편이라 우비를 휴대하는 것이 좋다. 캐세이퍼시픽을 비롯한 주요 항공사가 인천~홍콩 노선을 주 61편 운항한다.

홍콩=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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