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지켜온 ‘세계 1위’, 어쩌다 뺏겼나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3. 6. 1.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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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알맹이 ‘쏙’ 기술 유출 무방비
中 정부 보조금·저가 공세로 ‘어퍼 컷’

한국은 2004년부터 일본을 제치고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 1위를 지켜왔다. 하지만 2010년대 중반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중국이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결국 2021년 한국은 중국에 1위 자리를 내줬다. 17년 동안 이어진 ‘한국 디스플레이’ 시대의 종말이었다.

정부는 반격의 시간을 외치고 있다. 액정표시장치(LCD)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로 무게 추가 옮겨진 만큼 역전의 발판은 마련됐다는 입장이다. 구체적으로 2027년까지 세계 시장점유율을 50% 수준으로 끌어올려 1위 자리를 되찾겠다고 강조했다. 반격에 나서기 전 ‘패인(敗因)’ 분석은 필수다. LCD 패권을 중국에 넘겨주고, 디스플레이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뺏긴 이유는 무엇일까.

패배 요인(1) ‘韓’ → ‘中’ 기술 유출

‘공정 표준화’로 낮아진 기술 장벽

디스플레이 전문가들은 중국이 LCD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낮아진’ 기술 장벽을 꼽는다. 주목할 점은 ‘낮아진’이라고 표현한 부분이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LCD 시장에 뛰어든 시점은 1990년대다. 당시만 하더라도 LCD는 고급 기술이었다. 진입장벽이 높았다는 의미다. 대표 사례가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1991년 계열사 삼성전관(현 삼성SDI) 사업을 이관해 LCD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기술력도 없고, LCD 기술력을 이해하는 인재도 많지 않았다. 결국 삼성전자는 선두 업체에 도움을 요청했다. 당시 LCD 시장은 일본 업체(샤프, 도시바, 히타치 등)가 장악했다. 삼성전자는 이들에게 기술 이전을 문의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문제였다. 사실상 ‘무조건 반대’를 외쳤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는 LCD 시장 진출 이후 수년간 ‘낮은 수율’과 ‘높은 원가’로 고생했다. 그럼에도 삼성전자는 꾸준히 투자를 이어갔고 결국 ‘결과’를 냈다. 1995년 12.1인치 패널을 도시바에 공급했다. 이를 기점으로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 사업은 빠르게 확장했다.

반면 중국 기업들의 LCD 시장 진출은 상대적으로 손쉬웠다. 중국은 2000년대부터 LCD 시장에 관심을 보인 후발 주자다. 그럼에도 한국 디스플레이 기업들과 기술 격차를 빠르게 좁혔다. ‘기술 먹튀’를 통해 기술력을 단기간에 끌어올린 덕분이다. 중국 대표 디스플레이 기업 BOE의 ‘하이디스’ 인수 후 청산이 대표 사례다.

BOE는 2002년 11월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서 분사한 LCD 부문 자회사 하이디스를 인수해 LCD 시장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6년 9월, BOE는 돌연 하이디스를 부도 처리하고 중국으로 철수했다. 한국 디스플레이업계는 BOE의 ‘기술 먹튀’를 의심했다. 하이디스 LCD 기술을 중국으로 빼돌리기 위해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는 판단이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2008년 검찰 수사 결과, BOE는 2004년 하이디스와 LCD 기술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명분으로 양 사 전산망을 통합해 중국인 임직원들이 하이디스 개발 서버에 저장된 기술 자료에 접근할 수 있게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으로 누출된 하이디스 기술 자료는 총 4331건, TFT-LCD 핵심 기술 자료는 200여건에 달했다.

이주호 한국신용평가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시장 진출 당시 LCD는 이미 장기간의 기술 개발로 공정 표준화가 이뤄져 업체 간 품질이 거의 균일했다”며 “중국 업체가 단기간 내 안정적 수율을 확보할 수 있었고 캐파(CAPA) 증설은 곧 양산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관련 업계가 디스플레이 세계 1위 탈환을 외치고 있다. 사진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QD-OLED 생산라인을 둘러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패배 요인(2) 중국의 전폭적 지지

전체 설비 투자액 절반이 정부 지원금

중국 기업들이 시장을 집어삼키는 데 걸린 기간은 약 20년이다. 진입장벽이 낮다 해도 후발 주자가 급속도로 시장점유율 1위로 치고 올라온 건 이례적 현상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들은 중국 정부의 공격적 정책 지원이 현재의 중국 디스플레이 산업을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중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LCD 사업을 지원한 건 2009년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전자정보 산업 조정·진흥 계획’을 실시했다. 6세대 이상 TFT-LCD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기업을 지원하겠다는 내용이다. 이후에도 ‘디스플레이 과학 기술 발전’ ‘디스플레이 산업 혁신·발전 행동 계획’ ‘초고화질 영상 산업 발전 행동 계획’ 등을 진행했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중국이 내놓은 굵직한 LCD 디스플레이 관련 정책만 6개다.

정책 대부분은 연구개발(R&D), 생산라인 투자 등에 필요한 자금을 ‘직접’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중국 디스플레이 기업들은 공장 설립 시 필요한 자금의 약 절반을 정부 지원금으로 해결했다. 한국신용평가가 지난해 발표한 ‘끝없는 추격전, 향후 디스플레이 경쟁 구도는 어떻게 될까’ 리포트에 따르면 BOE와 차이나스타의 대형 LCD 공장의 경우 중앙, 지방 정부를 통한 자금 조달 비중이 최대 45%에 달한다. 반면 한국은 정부 차원 디스플레이 산업 지원이 사실상 전무했다. 지난해까지도 주요 제조업 지원 정책에서 디스플레이는 제외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반도체, 배터리는 포함돼도 디스플레이는 빠지는 식이었다.

패배 요인(3)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

‘수익’보다 ‘출하량’ 늘리기 집중

기술력을 확보하고 정부 지원을 등에 업은 중국 기업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인 ‘중저가 물량 공세’를 시작했다. 디스플레이업계 종사자들은 사실상 대응이 불가능했다고 털어놨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설비 자체는 가격이 똑같지만 인건비 차이가 상당하고, 정부 지원에서 차이가 크다”며 “이런 것들이 모여 가격 경쟁력 격차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기업 가격 경쟁력은 지표로도 드러난다. 출하 점유율과 매출 점유율을 비교하면 중국이 얼마나 저렴하게 LCD를 시장에 공급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옴디아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중국의 캐파·출하 면적 점유율은 매출 점유율보다 높게 유지됐다. 중저가 제품을 판매하다 보니, 매출 점유율이 출하 점유율을 밑돈 것. 통상 제조업의 캐파·출하 면적 점유율이 매출 점유율보다 낮은 것과 상반된다. 같은 기간 한국 기업의 캐파·출하 면적 점유율은 단 한 번도 매출 점유율보다 높았던 경우가 없다.

자리를 뺏긴 한국 기업들은 2010년대 중반부터 OLED로 사업 구조를 전환했다. LCD 비중을 줄이고 OLED 설비 투자에 집중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디스플레이 부문부터 OLED를 적용했고 LG디스플레이는 대형 디스플레이 부문에서 OLED로 사업 구조를 전환했다.

초기에는 사업 구조 전환 전략이 먹혀들었다. 한국 기업들이 OLED 시장을 거의 독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중국 기업들이 OLED 시장까지 진출, LCD 시장을 장악할 때와 비슷한 방식으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스마트폰으로 대표되는 중소형 OLED의 경우 한국 기업 점유율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중국 기업 점유율은 상승세다.

글로벌 시장조사 업체 스톤파트너스 조사에 따르면 2021년 한국과 중국의 중소형 OLED 시장점유율은 각각 79%, 21%로 나타났다. 하지만 스톤파트너스는 올해 예상 점유율을 한국 61%, 중국 39%로 내다봤다.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셈이다. 디스플레이업계 관계자는 “OLED는 LCD 때보다 더 빠르게 따라잡히고 있다”면서 “인력 유출도 심각한 문제인데, 자금력을 바탕으로 기술 인재 영입에 힘쓰고 있어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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