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급차 1시간 탈 뻔…인구 12만 도시, 유일한 산부인과 '기사회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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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3명 중 2명 태어난 그 병원
경남 통영시 무전동 통영자모산부인과. 지난해 통영 출생아 402명 중 259명(64.4%)이 여기서 태어났다. 3명 중 2명꼴이다. 인구 12만 통영에서 분만이 가능한 유일한 산부인과로, 임산부가 몰렸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 산부인과는 경영난과 의료인력 부족으로 문 닫을 위기에 놓여 있었다. 2012년 1551명이었던 통영 출생아 수가 최근 10년 새 25% 수준으로 하락, 분만 수요가 줄면서다. 인건비 등 고정 지출을 고려하면 적자를 피할 수 없는 구조였다.
정부 지원사업 선정…통영시 “급한 불 꺼”
통영자모산부인과가 폐업했다면, 통영에서 출산을 위해 차로 30분에서 1시간가량 걸리는 다른 지역에서 가는 임산부가 더 늘 수밖에 없었다. 산부인과 진료를 보는 병원은 2곳 더 있지만, 분만실을 갖추지 못했다.
다행히 지난 26일 보건복지부에서 실시하는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공모사업’에 통영자모산부인과가 선정됐다. 이 사업은 지역 분만산부인과가 의료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도록 시설ㆍ장비 구축에 필요한 재원과 운영비 등 연간 5억원(국비와 지방비 각 50%) 지원하는 사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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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4곳 중 1곳 ‘분만 사각지대’
전국 250개 시ㆍ군ㆍ구 가운데 산부인과가 아예 없거나, 있어도 분만이 어려운 지역이 72곳(28.8%)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4곳 중 1곳 이상이 ‘분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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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 가능 산부인과’ 10년 새 수백개 사라져
분만이 가능한 전국 산부인과는 2012년 739개에서 지난해 470개로 10년 새 269개나 줄었다. 전체 산부인과 수도 같은 기간 1457개에서 1322개로 135개 감소했다.
보건복지부는 출생아 수 감소, 낮은 의료 수가, 의료사고 부담 등에 따라 산부인과 병원·의사가 계속 줄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신생아 수 감소에 따른 운영비 증가와 의료사고 위험 등 근무환경 악화가 영향을 미쳤단 얘기다.
특히 출산율 저하와 맞물린 농어촌 지역을 중심으로 분만을 받을 수 있는 산부인과가 감소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농어촌 인구 감소→출산율 저하→농어촌 ‘분만 가능’ 산부인과 폐원→분만 환경 악화→젊은 인구 유입 감소→농어촌 출산율 저하‘라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단 게 복지부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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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된 악순환…’원정 출산‘ 산모 부담’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길게는 119구급차를 타고 1시간 가까이 다른 지역으로 가는 일도 발생한다. 한국농어촌경제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분만의료 도ㆍ농간 격차 해소 연구 보고’에 따르면 가임 여성의 응급분만의료시설 평균 이동시간이 농어촌 시ㆍ군의 경우 28.8분으로 30분 가까이 됐다. 도ㆍ농복합 시 지역은 20.2분, 군 지역은 55.1분에 달했다.
보건복지부는 "농어촌 산모의 주요 합병증 발생률은 도시 지역보다 통계적으로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진찰 때마다 원거리 이동하거나 대도시 원정 출산 등은 산모의 시간적·체력적·경제적 부담을 야기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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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성 지원보단 인프라 확충해야”
이에 일회성인 출산장려금보다 분만 사각지대 해소에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2011년부터 분만 환경을 개선하고자 지역 산부인과에 시설ㆍ장비구매비를 지원하고, 운영비를 보조하는 ‘분만취약지 지원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지원받은 의료기관은 51곳이다.
지자체도 나서고 있다. 경남도는 올 하반기 자체 시범사업으로, 기존의 ‘사천 청아여성의원’에 분만 산부인과를 설치할 계획이다. 분만 취약지의 인프라 확충과 공공의료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서다. 경남도 관계자는 “통영은 지난해 정부 지원사업 공모에서 떨어졌다가 올해 붙었다”며 “아직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한 지역에 선제적으로 분만 인프라 구축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창원=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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