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신부 "윤석열, 국민의 가장 기본인 저항권 짓밟아"

윤성효 2023. 6. 1. 10: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일, 고 양회동 미카엘 열사 추모기도회 개최... 백남해 신부, 미리 보내온 강론 통해 정부 비판

[윤성효 기자]

 창원 한서빌딩 앞 광장에 있는 고 양회동 건설노동자 시민분향소.
ⓒ 윤성효
 
"동지 여러분 사랑합니다. 투쟁!"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에 맞서 분신사망했던 고 양회동(49) 건설노동자가 남긴 유서의 한 대목이다. 고인은 천주교 신자로 세례명은 '미카엘'이었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백남해 신부)가 오는 2일 저녁 창원 한서빌딩 앞에 있는 시민분향소에서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미카엘) 열사 추모기도회를 연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건설노조 경남건설기계지부는 지난 5월부터 이곳에 시민분향소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추모기도회가 열리기는 처음이다.

천주교 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는 "전 세계 노동자가 투쟁으로 쟁취한 노동절에 고 양회동 미카엘 열사는 정권의 폭력에 맞서 자신의 몸을 산하해 갔고, 이제 우리가 동지의 뜻을 이어 노동자의 자존감을 되찾고 노동을 탄압하는 정권에 맞서 당당히 투쟁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하며 추모기도회를 연다"고 밝혔다.

이날 추모기도회는 천주교 신자뿐만 아니라 건설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한다. 추모사에 이어 참가자들이 추모노래를 부른다.

백남해 신부는 <오마이뉴스>에 미리 보내온 강론에서, 포스코 광양제철소 고공 농성장의 무력 진압을 언급하며 "경찰들은 오직 성과와 건수 올리기에 급급하여 노동자들을 일부러 자극하면서 폭력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백 신부는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절망케 한다.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불법적으로 막으려는 이 정권은 오히려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저항권마저 짓밟고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백남해 신부의 강론 전문이다.

양회동 열사 추모식 강론

지난 5월 9일자 신문 지면에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노조 활동 수사에 항의하며 분신해 숨진 고 양회동 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을 위해 강원지역 건설업체 관계자들이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처벌불원서를 써준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기관은 이 업체들이 양 지대장 등으로부터 협박과 강요를 당한 '피해자'라고 영장에 적었는데, 정작 업체 관계자들은 '노조 덕분에 고용을 편하게 했다'거나 '협박이나 강요는 없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건설 현장에 관한 이해 없이 무리한 수사를 밀어붙였다는 비판이 나온다."

결국 윤석열이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윤석열의 하수인 경찰들이 사람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이것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5월 31일 새벽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고공 농성장을 무력 진압하려던 경찰에게 항의하던 금속 노련 김만재 위원장을 5, 6명의 경찰이 달려들어 땅 바닥에 패대기치고 비참하게도 무릎 꿇리면서 머리를 짓누르고 뒷 수갑을 채우면서 폭행을 가했습니다. 현장에 있던 박옥경 한국노총 광양지역 기계·금속·운수·산업 노동조합 위원장은 말합니다.

"'경찰관 5~6명이 한꺼번에 둘러싸고 김 위원장의 머리를 무릎으로 눌러서 뒤로 수갑을 채웠다. 말 그대로 땅에 패대기 쳐졌다. 우리가 도둑질을 한 것도 아니고, 마약사범이나 조직범죄 수괴도 아니고 집회를 한 것 뿐인데 현장에서 우악스럽게 많은 사람이 달려들어 체포할 일이 맞냐! 우리는 고작 5~6명이었고 경찰은 50~60명이 동원되었는데 뭘 그렇게 패대기를 쳐서 잡아야하는가!' 그때 상황을 더 들어보면, 김만재 위원장은 고공 농성 중에 경찰이 무리한 진압을 하면 뛰어내리겠다는 감사무처장의 말에 놀라서 진정시키고, 경찰에게 절충안을 내서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했던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보십시오. 경찰들은 오직 성과와 건수 올리기에 급급하여 노동자들을 일부러 자극하면서 폭력행위를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제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이 더욱 우리를 절망케 합니다. 노동자들의 당연한 권리인 집회와 시위를 불법적으로 막으려는 이 정권은 오히려 국민들의 가장 기본적인 저항권마저 짓밟고 있습니다.

1987년 7월 9일 뜨거운 여름. 독재자가 쏜 최루탄에 맞아 절명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고 문익환 목사님께서 열사들의 이름을 애 터지는 심정으로 한분 한분을 부르짖으셨습니다. 그 전문을 읽어 보겠습니다.

"전 나이 일흔 살이나 먹은 노인입니다. 이젠 살 만큼 인생을 다 산 몸으로 어제 풀려나와 보니까 스물한 살 젊은이의 장례식에 조사를 하라고 하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아까 백기완 선생도 지난밤 한잠 못 잤다고 했지만, 저도 한잠 못 잤습니다. 너무너무 부끄러워서. 왜 나왔던가. 어제 저녁에 여기서 박수를 치는데 제가 거절을 했습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당신들의 박수를 받을 것이냐? 밤을 꼴딱 새면서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이한열 열사를 비롯한 많은 열사들의 이름이나 목이 터지게 부르고 들어가려고 나왔습니다. 모두 사십여 명 된다고 하는데, 제가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 밖에는 몰라서 스물 다섯 사람의 이름을 적어가지고 나왔습니다. 빠진 이들이 있다고 하면 제가 다 부른 다음에 그 가운데서 누구나 일어나서 불러주세요."

스물 다섯명의 열사들 이름 뒤에 문익환 목사님 말씀대로 빠진이가 있어서 제가 감히 문익환 목사님의 뒤에 경남 지역의 노동 열사들, 그 이름을 부르겠습니다.

전태일 열사여, 박창수 열사여, 김주익 열사여, 곽재규 열사여, 최강서 열사여, 배달호 열사여!, 서영호 열사여, 양봉수 열사여, 양회동 열사여.
 
 건설노동자 고 양회동(미카엘) 열사 추모기도회.
ⓒ 천주교마산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