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도 '다툼의 여지 있다'는데...중대범죄 단정한 윤 대통령

신상호 2023. 6. 1.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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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 2008년 정연주와 2023년 한상혁, 보수정권의 찍어내기 잔혹사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신상호 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30일 오전 과천 방송통신위원회로 출근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로부터 면직 처분을 받은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끝 모를 법정 싸움을 시작하게 됐다. 이미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조작에 관여한 혐의로 기소된 한 위원장이 추가로 임면권자인 윤석열 대통령을 상대로 면직의 적법성을 다투는 법정 싸움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지난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이 강제 해임되고 지난한 법정 다툼이 이어졌는데, 2023년 한상혁 위원장의 운명도 정 전 사장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대통령실은 지난 30일 윤석열 대통령이 한상혁 위원장 면직 처분을 재가했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면직 사유를 자세히 열거했는데, 한 위원장이 지난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과정에서 점수를 보고 받고 "미치겠네", "시끄러워지겠네", "욕을 좀 먹겠네"라고 발언했다는 내용을 담은 검찰 공소장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통령이 사실상 검찰 공소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였다는 방증이다.

대통령실의 면직에 한 위원장은 행정 소송으로 맞대응할 방침을 밝혔다. 한 위원장은 30일 방통위 기자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신속하게 면직 처분 취소 청구, 그리고 효력정지 신청까지 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방통위에 와서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하기에 의연하게 대처해 나가야겠다"고 말했다.

이날 한 위원장은 청사 집무실을 정리하고 기자실을 찾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해진 임기대로라면 7월 31일이 마지막이었어야 할 한 위원장의 출근길은 5월 30일 멈춰 서게 됐다.  

법으로 보장된 임기 지키자... 방통위 총 5차례나 압수수색

지난 2022년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여당의 노골적인 사퇴 압박에도 한 위원장은 "방통위원장 임기는 법률로 보장된다"며 자리를 지켜왔다. 방통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정치적 중립성을 위해 방통위원장 임기를 법으로 보장한 것이니 주어진 임기를 충실히 지키는 것이 위원장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장이 사퇴를 거부하자, 윤석열 정부는 사정 칼날을 휘둘렀다. 감사원이 지난해 7월부터 방통위에 대한 전방위 감사를 벌였고, TV조선 재승인 심사 의혹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면서 검찰의 강도 높은 수사가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한 위원장 사무실 등 방통위를 총 5차례나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TV조선 재승인 심사 의혹과 관련해 한상혁 위원장에 구속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법원이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는데도, 검찰은 지난 4월 한 위원장을 위계공무집행방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의 혐의로 끝내 불구속 기소했다.

하지만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을 보면 단순히 심사 결과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 고의 감점 지시로 이어졌다는 객관적 증거가 부족한 상태다. 뿐만 아니라 한 위원장이 TV조선의 재승인을 막을 목적으로 부당한 감점 지시를 했다고 검찰은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 심사 결과는 TV조선이 재승인에 충분한 점수를 받는 등 모순되는 점도 있다. 

그럼에도 대통령실은 검찰의 기소를 명분으로 한 위원장을 면직 처리했다. 한 위원장의 임기가 두 달 남은 시점이다. 언론현업단체와 시민단체는 '노골적인 언론 장악 시도'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법정 싸움 끝에 승소... 그러나 임기는 채울 수 없었다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정연주 전 KBS 사장이 지난 2012년 1월 13일 오전 <오마이뉴스> 팟캐스트 방송 '이털남 김종배입니다'에 출연해 '정연주와 터는 MB방송'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권우성
역사는 반복되는 걸까.

한 위원장의 운명은 지난 2008년 정연주 전 KBS 사장(현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강제 해임된 것과 비슷한 구도를 그리고 있다. 정 전 사장은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로부터 노골적인 퇴진 압박을 받았지만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자 감사원은 2008년 6월 KBS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했다.

감사원이 같은해 8월 '부실 경영'을 빌미로 KBS 이사회에 정 사장 해임을 요구했고, KBS 이사회의 해임제청안 의결, 대통령 재가까지 일사천리로 이뤄졌다. 당시 대통령이 KBS 사장에 대한 면직 권한이 있는지가 논란이 됐지만, 해임 처분은 그대로 확정됐다.

정 전 사장이 법원에 "해임 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소송을 냈지만, 패소하면서 결국 강제해임이 확정됐다. 여기에 더해 검찰은 지난 2008년 8월 20일 정 전 사장에 대해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당시 KBS가 국세청과 세금 소송을 벌이다 법원 조정에 따라 법인세를 납부 했는데, '법인세를 더 내서 회사에 피해를 끼쳤다'는 이유에서였다. 

정 전 사장은 이때부터 기나긴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배임 혐의에 대해선 1심과 2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았고, 지난 2012년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정 전 사장은 자신을 해임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상대로 해임처분무효소송도 냈는데, 이 역시 지난 2012년 대법원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다. 4년간 기나긴 법정 싸움 끝에 명예를 회복하며 승소했지만, KBS 사장 임기는 끝내 채울 수 없었다. 지난 2019년 문무일 당시 검찰총장은 정연주 전 사장 기소 등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한상혁 위원장 역시 2008년 정 전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법정 공방의 한복판에서 외롭게 서 있다. 한 위원장 면직과 기소와 관련해 적정성 논란이 벌어지는 것까지 비슷하다. 대통령실이 공소 사실만을 근거로 한 위원장 면직 처분에 단행한 것은 무죄추정 원칙에 반한다는 논란이 있고, TV조선 재승인 심사 관련한 검찰 기소 역시 심사위원 임명 등 방송통신위원장의 재량권 행사로 인정될 수 있는 부분을 무조건 위법으로 단정짓기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정 전 사장에 이어 한 위원장의 법정 싸움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한 위원장을 찍어낸 정부의 다음 목표는 KBS와 MBC 등 공영방송 사장을 비롯해,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찍어내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마치 전통(?)처럼 이어져오는 보수 정부의 언론 장악 시도는 언제까지 반복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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