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랑]“6개월 남았다”는 말에 휘둘리지 마세요

기고자/이병욱 박사(대암클리닉 원장) 2023. 6. 1.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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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께 보내는 편지>

암 환자들이 갖고 있는 갈증은 많습니다. 그 갈증의 근원은 ‘내가 과연 앞으로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내가 암을 이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이 때문에 암 환자는 언제나 보다 많은 정보를 알려고 하지만, 정작 이런 질문은 어느 누구도 가르쳐 줄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의사들은 흔히 “적게는 한 달, 더 적게는 이번 주를 못 버티겠다”, “6개월 정도를 예상한다”와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이런 말을 할 때 의사에게는 딜레마가 생깁니다. 환자에게 생을 정리할 시간을 주기 위해 예상되는 여명을 최대한 솔직하게 말해야 하는 것과 환자들의 치료 의지를 꺾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만약 생이 얼마 남지 않은 환자라면 정리할 시간을 갖도록 솔직히 가르쳐 주는 것도 분명 필요합니다. 정리에 대해서 전혀 생각지 않고 있는 환자라면 그것을 일깨우는 계기가 필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마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의사의 이 한마디가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로 들리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언제까지 살 수 있을 것이란 의사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미리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을 수 있겠지요.

사진=이병욱 박사의 <열심히 사는 사람들> 27.5X22.7cm Acrylic on paper(Upcycling) 2023​

“2~3개월 봅니다. 각오하세요.” 환자는 겁이 나면 의사에게 많은 것을 물어봅니다. 의사라면 이런 대답을 하기 전에 환자의 심리를 먼저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암에 대해서 묻는 사람에게 “각오하고 있으라!”는 식의 설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생이 얼마나 남았는지 의사가 안다는 것도 교만입니다. 6개월밖에 안 남았다고 하는 사람이 3~4년씩 잘 살기도 하고, 2~3개월도 힘들다고 한 환자가 3년 넘게 생존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반대로 3년은 생존할 거라고 한 사람이 몇 달 만에 죽을 때도 있습니다.

삶에는 예외가 너무 많습니다. 현대 의학이 아무리 진보한다고 해도 수치로 인간의 모든 걸 표현하지는 못합니다. 따라서 의사는 마지막 순간까지 환자에게 위로, 격려, 축복을 아끼지 않으며 하늘에 맡기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투병하다 어느 순간 고비를 넘으면 환자들이 그 징후를 먼저 느낍니다. 환자는 언제나 자신의 상태와 변화를 세심하게 바라봅니다. 어쩌면 날마다 주야로 암을 묵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환자보다 자신을 더 잘 아는 사람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종일 삶과 죽음을 생각하다 보니 의사보다 이런 부분에서 훨씬 더 예민합니다. 이때 이들이 “선생님 저 얼마나 살까요?” 같은 질문을 했다면, 의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말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는 것,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것입니다. 이런 순간 의사의 한마디는 환자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살 것 같습니까?”라고 묻는 환자의 심리는 거의 같습니다. 남은 날을 정확히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니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얼마나 살 것인지 간절히 묻는 겁니다. 앞으로도 오래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권위 있고 믿을 만한 사람으로부터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 의사는 환자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암은 전적으로 본인과 보호자가 노력하기 나름입니다. 낫게 된다는 믿음을 갖고 같이 노력하면 됩니다. 지금까지 암에 걸리면 무조건 다 죽는다고만 알고 있었다면, 이제부터 ‘나만큼은 예외다’라고 생각하세요. 당신은 분명 예외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거짓말도 아니고 환자를 위해 하는 립 서비스도 아닙니다. 일반적인 생존율은 사실상 무의미할 때가 많습니다. 암은 바로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의사의 말에 상처를 받고 와서 제게 하소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암 선고를 받을 때 의사로부터 3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3년째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환자가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는데, 그때마다 담당 의사가 “당신 아직도 살아 있느냐?”며 놀라워한다고 합니다. 그때마다 그는 몹시 씁쓸해진다고요.

그 환자는 운이 좋아서 저증사자가 안 데리고 간 게 아닙니다. 자신의 의지로 전혀 다른 삶을 개척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겁니다. 확률이 틀린 게 아니라 그의 의지가 승리한 것인데, 일부 의사들은 가끔 그 미묘한 차이를 무시하거나 깊게 생각하지 못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습니다. 환자들의 질문이 우문처럼 들릴지라도 그것은 결코 우문이 아닙니다. 환자들의 질문 하나하나는 선문답 같은 화두를 숨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암을 치료하는 의사들이라면 암 환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격려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습니다. 환자들 역시 어느 의사가 무심하게 “6개월 남았다”고 답했다 하더라도, 그 답에 휘둘리지 말기를 바랍니다. 할 수 있는 최선의 힘을 다한다면 병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축복하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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