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익의 Epi-Life] 냉국이 아니라 찬국

서지영 2023. 6. 1.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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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이 1925년에 발표한 소설 ‘감자’의 감자는 고구마라고 하면 사람들이 멈칫합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감자라고 부르는 그것의 이름은 그때에 무엇이었을까’하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감자는 마령서(馬鈴薯)라고 불렀어요. 적어도 1970년대까지 지금 우리가 감자라고 하는 것의 공식 명칭은 마령서이지요.” 마령서라는 말을 처음 듣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순발력이 뛰어난 분은 당장에 이 말부터 합니다. “그러면 감자탕이라는 이름도 최근에 생긴 것이겠네요?” 맞습니다, 맞고요.

제가 한국산 돼지고기 수출이 1960년대부터 있었다고 하니까 그런 자료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네이버의 뉴스라이브러리에서 검색을 해도 나오는 평범한 자료인데도 그는 자료를 찾지 못하였던 것이지요. 돼지고기를 예전에는 돈육(豚肉)이라는 한자어로 썼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에서의 사정은 모르겠고, 우리나라에서 음식에 대한 기록을 찾는 일은 다소 번잡합니다. 옛날에 썼던 말과 현재에 쓰는 말이 다른 경우가 의외로 많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 예전에 썼던 말이 훨씬 나은 경우도 발견하게 됩니다. 찬국이 그 예입니다.

찬국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못 알아듣습니다. “냉국이 찬국입니다” 하면 “아하!” 하고 감탄사가 터집니다. “‘냉(冷)’은 한자고 ‘찬’은 한글이지요. ‘국’은 한글이잖아요. 그러니까 ‘국’ 앞에 ‘찬’이 붙는 것이 어울리겠지요. 찬국. 그런데 찬국은 사라지고 다들 냉국이라고 부릅니다. 아름다운 순우리말 찬국을 살려보면 어떨까요.”

1927년 6월 17일자 동아일보에 ‘외찬국’이 실려 있습니다. ‘외’는 오이이고 찬국은 냉국이니, 요즘 말로는 오이냉국입니다.

“쓰지 안은 연한 외를 얇게 써러서 그릇에 담어가지고 초와 간장을 너어서 잘 저른 후에 그릇에 담고 물을 넉넉이 붓고 간을 적당하게 맛촌 후에 파를 잘게 써러 너코 고초가루를 처서 상에 놋는 것임니다.”(띄어쓰기만 현대 어법을 따랐습니다. 아래의 인용 문헌도 같습니다.)

현재의 오이냉국 조리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924년 발간된 이용기의 ‘조선무쌍신식조리제법’에는 냉국을 창국이라 표기하고, 그 아래의 괄호 안에다 ‘찬국 冷湯(냉탕)’이라 병기해두었습니다. 이 책에는 김창국, 외창국, 메역창국 세 종류의 냉국 조리법이 적혀 있습니다. 요즘 말로 고치면 김냉국, 오이냉국, 미역냉국이지요.

1931년 동아일보는 6월 19일과 23일 두 차례에 걸쳐 냉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목은 ‘찬국 맨드는 법’입니다. 김찬국, 외찬국, 미역찬국, 파찬국, 북어찬국, 쇠머리찬국, 외지찬국, 가지찬국, 짠지찬국 등의 다양한 찬국 조리법이 나옵니다. 북어찬국과 쇠머리찬국은 현재에는 해먹지 않는 음식이라 흥미롭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옮기겠습니다.

북어찬국. “북어를 대가리 잘으고 물에 불린 후에 뼈와 지네미를 다 버리고 껍질과 살만 불려서 한치 기리씩 되게 죽죽 찌저서 장과 기름과 파 힌 것 채친 것과 호초가루, 깨소곰, 고고가루를 치고 함께 주물러서 냉수를 붓고 초를 치고 먹습니다.”

쇠머리찬국. “쇠머리를 물으게 삶아 넓고 둑겁게 썰어 냉수에 담그고 얼음 한 덩어리를 큰 걸로 너코 장, 초, 파 대가리 썬 것과 풋고초를 굴게 엇썰어 너코 깨소곰을 왼알업시 잘 찐 것을 풀고 실백을 띄우고 모도 휘저노앗다가 조흔 합주를 한 탕기 마신 후에 사실 국물을 떠먹고 쇠머리 조각(꼬뚜리가 제일입니다)을 풋고초와 겹처 조흔 초장에 찍어 먹으면서 열무김치나 함께 우물려 씹으면 쾌창한 맛이 더할 수 업습니다.”

쇠머리찬국을 먹는 방법이 재미납니다. “조흔 합주를 한 탕기 마신 후에” 먹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합주는 合酒입니다. 여름에 마시는 찹쌀막걸리입니다.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꿀이나 설탕을 타서 시원하고 벌컥벌컥 들이키는 술이지요. 이 술을 한 탕기(사발) 마시고 쇠머리찬국을 안주로 삼으라는 것이니 여름 풍류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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