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가라앉더라도, 나라 옮길 생각 없다" 마셜제도의 각오 [시크릿 대사관]

김선미 2023. 6. 1. 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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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만난 트레거 알본 이쇼다(45) 주한마셜제도 대사가 '스틱 차트'를 들고 있는 모습. 스틱 차트는 마셜 원주민이 나무와 조개 껍데기 등을 이용해 섬과 해류, 파도 등을 표현한 고유의 지도다. 김성룡 기자


나라가 가라앉고 있다면 어떨까.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태평양 마셜제도 공화국 국민에겐 생존의 문제다. 마셜제도는 적도 부근 29개의 환초(산호초가 고리 모양으로 배열된 것)와 1100여개 작은 섬으로 이뤄졌다. 총면적 서울의 약 3분의 1인 182㎢, 인구 5만여 명의 이 섬나라는 수몰 위기에 처해 있다. 문제 원인은, 기후 위기.

2021년 세계은행(WB)은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마셜제도의) 수도 마주로의 건축물 37%가 영구적으로 침수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마셜제도는 문제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세계 8곳에 대사를 파견했는데, 한국이 그 중 하나다. 서울에 국가 수몰 위기 해결의 사명을 갖고 부임한 트레거 알본 이쇼다(45) 주한마셜제도대사를 만났다. 지난달 29~30일 열린 한국·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중앙일보와 두 차례 만난 그는 "우리는 해결책을 기다리기만 하지 않는다"며 "기후위기의 피해자라는 생각에서만 벗어나 국제사회에서 변화를 주도적으로 끌어내려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2023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에서 여섯 번째)과 데이비드 카부아(왼쪽에서 다섯 번째) 마셜제도 대통령이 회담을 했다. 이 자리엔 이쇼다 대사(왼쪽 두 번째)도 배석했다. 대통령실 제공


이번 한·태평양도서국 정상회의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기후변화였다. 그는 이번 회의를 앞두고 막후에서 의제 조율, 성명서 준비 등을 맡았고, 양국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이쇼다 대사는 "경비가 삼엄해 정상들이 조금 긴장하기도 했지만 회담은 긍정적이고 밝은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정상회의에선 해수 온도 차 발전사업 등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협력과 한국의 주마셜제도 상주공관 개설, 2030 부산엑스포 개최, 양국의 유엔(UN)인권이사회 이사국 선거 입후보 등이 논의됐다고 한다.

회의엔 마셜제도를 비롯해 PIF(태평양도서국포럼) 18개 회원국이 참석했다. 태평양 지역은 기후변화 뿐 아니라 미·중 패권 경쟁의 전략지로도 주목 받는다. 지난해 4월 중국이 솔로몬 제도와 안보 협정을 체결하고, 미국이 파푸아뉴기니·통가 등과 군사적·외교적 협력을 추진하는 것도 같은 궤다. 하지만 이쇼다 대사는 "우리에겐 안보 등 다른 이슈보다 기후 문제가 더 우선한다"며 "이번 정상회의의 가장 큰 목표도 호주·뉴질랜드 외에 16개 태도국이 있다는 것과, 기후·환경·해양 등 분야에서 협력의 중요성을 한국 정상에 알리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Q : 현재 고국의 기후변화 문제 심각성은 어느 정도인가.
A : 마셜인에게 기후변화는 생존의 문제가 됐다. 해수면 상승으로 토지가 씻겨 내려가 묘지 등이 소실되고 있고, 식자재인 생선·산호초도 해수 온도 상승의 영향을 받고 있다. 기후변화를 목격한 사람들은 매주, 매달, 안전을 위해 고국을 떠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실제로 2021년까지 마셜제도를 떠난 인구는 약 4만 3000명에 달한다. 상주인구(5만 9000여 명)와 큰 차이가 없을 정도다. 이주자 대부분은 미국 전역에 퍼져있다. 1947~85년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은 마셜인들은 독립 후 맺은 자유연합협정(COFA)에 따라 비자 없이도 미국에서 일하고, 공부하고, 거주할 수 있다. 미국은 신탁통치 기간 마셜제도에서 60여 차례 핵 실험을 했다. 위·아래로 나뉜 수영복 '비키니'는 핵 실험으로 쪼개진 비키니 섬에서 따온 이름이다. 핵 실험 장면이 등장하는 애니메이션 '네모바지 스폰지밥'과 일본 영화 '고지라'도 마셜제도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Q : 최근 이주가 늘어난 까닭은.
A : 40~50년대엔 방사능 문제가 컸고, 70년대부턴 더 좋은 교육과 의료체계를 따라 떠났다. 하지만 지금은 기후변화가 주요 원인이다.

Q : 키리바시·몰디브 등 인근국에선 국가 이전 논의도 있다. 마셜제도의 생존 계획은.
A : 우리 외교 정책 중 하나는 국가 이전은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하는 것이다. 물속으로 가라앉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 땅에 머무를 것이다. 이주는 땅과 바다에 근거한 문화, 언어, 정체성을 잃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만의 해결책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온실가스나 화석연료에 대한 세계의 시선을 바꾸기 위해 국제무대에 서야한다.

마셜제도의 국기를 배경으로 만든 시계와 코코넛·히비스커스잎 등으로 만든 수공예품 '아미모노' 일본 위임통치를 받았던 마셜제도에선 일본어가 종종 사용된다. 김선미 기자


이쇼다 대사는 마셜제도의 기후 협상 담당자로 꼽힌다. 그는 2021년 국제해사기구(IMO)에 탄소세 부과 안을 솔로몬 제도와 함께 제안했다. 2050년까지 국제 해운업계의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골자다. UN에 따르면, 전 세계 운송업의 90%를 담당하는 해운업의 연 탄소배출량은 12억 톤에 달한다. 그는 "마셜제도도 2050년까지 화석 연료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게 목표"라며 "기후 문제에 있어서 대표성을 띈 사람들로서 문제 해결의 주체가 돼 도전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쇼다 대사는 "마셜제도도 2050년까지 화석 연료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것"이라며 "기후 문제에 있어 대표성을 띈 사람들로서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룡 기자

Q : 한국과는 어떤 협력이 진행되고 있나
A : 재생 에너지나 지속가능한 운송수단 등의 기술을 한국으로부터 배우고 있다. 대표적인 게 수면비행 선박이다. 바다 표면으로부터 온 조력을 이용해 바람이 해수면을 눌러 5~10m 위로 떠서 가는 배다. 화석연료 사용량을 3분의 1에서 5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의 디지털 기술을 배워 우리 목소리를 전할 다른 방식이 있다는 걸 마셜인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Q : 최근 기후변화 마지노선인 지구 기온 상승 폭 1.5˚가 5년 내 뚫릴 가능성이 크다는 세계기상기구(WMO) 발표가 있었다. 세계에 호소하고 싶은 말은.
A : 전 세계가 지금처럼 화석연료를 사용할 경우 그 숫자는 현실이 된다. 화석연료가 경제를 돌아가게 하는 유일한 연료가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고 변화하길 바란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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