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도시에 숨겨진 이 동네…1년전 생긴 '가자미 마을' 정체
불국사·첨성대·대릉원 등 ‘수학여행 1번지’로 꼽혔던 경북 경주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2년 후면 개항 100주년을 맞는 경주 감포항이 그곳이다. 감포는 1937년 제물포와 함께 읍으로 승격될 만큼 번성했던 곳이지만 현재는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쇠퇴일로를 걷는 시골 마을이 됐다.
이런 감포항에 ‘가자미마을’이라는 간판을 내건 사무실이 지난해 5월 등장했다. 생선 가자미를 파는 곳은 아니다. 감포를 새롭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3년 전부터 감포에서 크고 작은 활동을 시작한 청년 10여명이 감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건물에 사무실을 차리고 ‘가자미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감포 살리자” 경주 바닷가 마을 모인 청년들
이들은 감포에 30년 동안 문 닫혀 있던 낡은 목욕탕을 카페로 리모델링했다. 지역 특산물을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해 식당 운영했다. 주민과 함께하는 연주회나 마을 축제도 열었다. 청년이 마을에서 잠시 머물다가 떠날 것이라고 생각해 냉담했던 주민은 진심이라는 것을 알고 인사를 건네고 일손도 보탰다.
청년들은 현재 이른바 ‘가자미 여행사’ 기획으로 감포를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여행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경주시 시어(市魚)이기도 한 가자미로 캐릭터를 개발하고, 감포에서만 살 수 있는 밀키트 출시를 계획했다. 또 당일치기 골목여행 상품 개발도 추진중이다. 이렇게 지역과 결합한 문화 콘텐트를 만들어 감포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목표다.
왜 감포일까. 가자미마을을 운영하는 주식회사 마카모디 김미나 대표는 “감포는 사람도 없고 경제도 죽은 곳이지만 과거엔 늘 북적이던 피서지였다. 일제강점기 감포항이 개항한 이후 근현대사를 거치며 쌓인 감포 이야기를 잘 섞어서 상품화한다면 청년에게 큰 기회가 되고 지역도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옛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적산가옥과 골목, 캠퍼(camper)성지인 오류고아라해변과 나정해변 등 푸른 동해와 자원이 매력적인 동네인 것도 감포에서 가자미마을을 시작한 이유다. 김 대표는 “감포는 ‘숨겨진 경주’”라며 “경주 중심부에 전국에서 관광객이 몰려드는 것처럼 감포도 잠재력이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감포, 청년에겐 ‘새로운 기회’…상품화 추진”
가자미마을은 올해부터 지역 콘텐트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한 시도에 나설 계획이다. 김 대표는 “지난해 했던 프로젝트는 실제 상품이 되진 못했다. 올해부터는 동네 여행상품을 개발해 더 많은 사람에게 소개하고 이들이 감포로 찾아올 수 있게 할 생각이다. 나아가 청년이 감포에 정착해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는 지역 경제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전국 곳곳에 걷고 쉬고 함께하는 청년마을들
가자미마을처럼 청년들이 전국 곳곳에서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경북 영덕군 영해면에는 '뚜벅이 마을' 프로그램이 있다. 2021년부터 청년들이 기업형태를 꾸린 다음 다양한 지역 체험 프로그램을 운용한다. 단순히 걷기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고 시골 생활을 체험하면서 정착 가능성을 탐색할 수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 2년간 정착한 사람은 10여 명에 이른다. 이곳에서는 현재 20대 청년 10여명이 ‘한국의 산티아고’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부산에서 강원 고성까지 바닷가를 따라 이어진 해파랑길 가운데 영덕 구간을 트레킹 성지로 만들 계획이다.
이와함께 전남 목포시 영해동에는 ‘괜찮아마을’이 있다. 쉬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고, 실패해도 괜찮다고 말해줄 수 있는 곳이 이 마을 콘셉트다. 괜찮아마을에 머물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는 현재 2박 3일, 3박 4일 일정이 운용 중이다. 며칠간 푹 쉬면서 조용한 바닷가 마을을 여행하고 지친 마음을 회복하는 것만으로도 마을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됐다.
경남 함양 청년마을(고마워할매)은 지난해 6월부터 11월까지 함양군에 거주하는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며 세대 간의 공감과 이해를 증진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할머니와 함께 요리하거나 소통하는 ‘할매의 레시피’나 ‘할매랑 놀자’ 등이 주요 프로그램이다.
전국 청년마을 39곳 선정…지방소멸 대책 될까
정부는 2021년부터 청년마을 만들기 지원사업을 하고 있다. 청년에게 지역 살이 체험 기회를 주고 창업 활동공간과 주거기반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다. 청년마을에 선정되면 3년간 총 6억원을 받는다. 올해 선정된 12곳을 포함해 전국에 청년마을 39개가 있다. 정부는 가자미마을처럼 청년마을이 지방소멸을 막아내는 ‘청년 어벤져스’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정부 지원이 끊어진 뒤에도 청년마을이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도 있다. 실제 가자미마을이 위치한 감포읍 한 주민은 “청년들이 마을을 살리겠다고 열심히 활동하는 것은 좋지만, 정부의 지원이 끊어진 뒤에도 활동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가자미마을 김미나 대표는 “청년마을로 선정한 곳은 대부분 지역에서 어느 정도 뿌리를 내렸다고 할 수 있는 청년 기업”이라며 “정부 지원에 생사가 걸려있는 집단이 아니라 지역 불균형과 지방소멸을 정부와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파트너로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올해 행정안전부 청년마을 사업 모집공고에 전국 161개 청년단체가 지원, 12개 청년마을이 선정됐다. 이렇게 선정된 청년마을은 ‘스마트팜’ ‘와인’ ‘뮤직 빌리지’ 등 다양한 콘셉트로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경주=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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