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위? 4천만원짜리 사약" 김기현 옆자리 외면한 현역들 왜 [현장에서]

윤지원 2023. 6. 1.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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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뉴스1


집권 여당 지도부의 일원이 되는 게 이다지 인기 없는 일일까. 국민의힘 최고위원 보궐선거 후보자 공모를 지난달 30일 마감한 결과 지원자엔 현역 의원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원외 인사 6명이 지원했지만 원래 최고위원이었던 태영호 의원에 비해선 상징성이나 이름값이 한참 미치지 못했다. 그나마 국민의힘은 이튿날인 31일 자격 심사를 통해 김가람 전 청년대변인, 이종배 서울시의원, 천강정 경기도당 의료정책위원장 등 후보를 3명으로 추렸지만 당내 아쉬움은 여전했다. 집권 2년차 여당의 지도부, 더군다나 내년 4월 총선 때 공천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지도부임에도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걸까.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이 3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 보궐선거 선거관리위원회의를 마치고 후보자 자격심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여권에선 최고위원 자리의 인기가 식어버린 걸 당내 민주주의 위기로 해석하는 의견이 많다. 3·8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국민의힘 지도부는 초선 의원과 원외 인사가 주축이다. 김기현 대표를 제외하고 4명의 선출직 최고위원 중 태영호 의원은 이미 사퇴했고 김재원 최고위원은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아 김병민·조수진 최고위원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마저도 조 최고위원은 양곡관리법 반대 주장을 펴는 과정에서 ‘공기밥 한 그릇 비우기’ 운동을 제안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아 소극적 행보를 하고 있다. 그나마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식물 지도부”라는 평가가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내에선 최고위가 아닌 친윤계 핵심 의원 몇몇이 당무에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호남 출신 재선으로 당초 최고위원 후보군으로 거론되던 이용호 의원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최고위원회의가 혹시 들러리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로 중요한 핵심 의제 결정은 다른 데서, 5인회가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이 언급한 5인회가 구체적으로 누군지는 당내 의견이 분분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당내 최고 의결기구인 최고위가 아닌 사적 모임이 당무를 좌지우지한다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익명을 요구한 지도부 인사는 “당원이 선출한 최고위원단을 패싱하고, 김 대표가 임명한 핵심 당직자 중심으로 사전 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게다가 당내에선 이번 보궐선거가 공모가 아닌 사실상 사모(私募)란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친윤계 지도부가 특정 후보를 밀고 있다는 얘기가 퍼진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중진 의원은 “남은 한 자리를 꿰찰 인물을 내정할 거였으면 차라리 당내 통합을 위해 비주류 인사 등 상징성 있는 인물을 지명해 대외적 메시지를 내는 게 좋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23일 라디오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이번 보궐선거에 현역 의원이 지원을 꺼린 이유를 냉정하게 헤아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역 의원 사이에선 이번 최고위원 당선이 “4000만원(기탁금 액수)어치 사약”이란 웃픈 얘기까지 나왔다. 영남권 재선 의원은 “지도부에 입성해봤자 공천 보장은커녕 지역구 관리 시간을 뺏길뿐더러, 재수 없으면 험지 출마를 강요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원 개개인 입장에선 합리적 선택일 수 있지만 집권 2년차를 맞은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 입장에선 뼈아픈 지점이다. 내년 4월 총선을 승리하려면 집권 여당이 성과를 내야 하는데, 그 일에 앞장서는 건 하고 싶지 않고 뒤에 서서 몸을 사리다가 그 과실을 누리고 싶다는 얘기다. 바꿔 말하면 당을 위해 희생해도 공천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이 의원들에게 퍼져있는 셈이다.

당원권 정지 중징계를 받아 자숙해야 할 김재원 최고위원은 31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저는 비유하자면 링 밖으로 나간 선수”라면서도 “집권당 최고위가 약체로 구성되면 굉장히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 또 링 밖으로 나간 (‘박치기 왕’ 프로레슬링 선수였던) 김일 선수가 계속 역할을 해야 되지 않나”라고 말했다. 평소 같으면 웃어 넘길 소리지만, ‘약체 최고위’라는 그의 말을 쉽게 부인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집권 여당의 현주소다.

윤지원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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