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노동조합, 이제 법치의 허들을 넘어야

2023. 6. 1.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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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30년 넘게 지속된 민주노총의
비타협 투쟁 노선 한계 드러내

노사 법치주의가 탄압이라는
주장도 원리적으로는 틀린 말
프레임 대결서 승리할 수 없어

법치만 내세우고 대화·타협엔
소극적인 정부 태도 비판해야
법치 타파가 아니라 법·제도
개선 요구하고 혁신 나서길

작년 말 화물연대가 선봉에 선 총력투쟁에서 별 재미를 못 본 민주노총이 투쟁 강도를 높이고 있다. 5월에만 건설노조와 금속노조의 1박2일 노숙투쟁, 금속노조의 ‘총파업’을 잇달아 배치했다. 지금은 7월 총파업으로 가는 빌드업 과정이자 시민사회단체와 정치적 연대를 확대하는 기간인 셈이다. 최대 조직 현대자동차 노조도 이번엔 불참이지만 7월 투쟁에는 동참하겠다고 선언했다. 최근 한 건설 노동자의 분신 사망 사건은 이들의 반정부 투쟁을 격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벌써 정권 퇴진 슬로건이 내걸렸다.

민주노총의 연례적인 총파업은 노동법상의 쟁의행위라기보다 대정부 투쟁 성격의 시위와 집회에 가깝다. 민주노총 자체로는 교섭하거나 파업할 상대가 없다. 다만 투쟁 사업장을 모아 세를 과시하고 시기집중 투쟁으로 효과를 극대화하는 대정부 투쟁 본부 같은 일을 할 뿐이다. 총파업도 사실은 총력 정치투쟁인 셈이다. 민주노총은 태생적으로 투쟁을 통한 쟁취에 길들여졌다. 협상력과 조직 확장의 원동력도 투쟁이라고 믿는다. 지도부 입장에서는 책임이 따르는 대화와 타협보다 대중투쟁에 편승하는 게 더 안전한 길일 수 있다. 사회적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도 반쯤은 여기에 있다.

30년 넘게 지속된 민주노총의 비타협적 투쟁 노선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지난 1년간 노골적인 불법과 폭력 행위가 크게 줄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명시적으로 법과 제도의 틀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지는 않았다. 최근 일부 조직에서 드러난 명백한 불법행위나 몇몇 간부들의 대공 혐의점에 대해서도 자체적인 조사나 재발 방지 대책, 대국민 사과와 같은 상식적인 대응이 아니라 노동 탄압 국면을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상투적인 말만 계속하고 있다. 내년 총선까지 법치와 노동 탄압의 프레임 대결이 치열하겠지만 민주노총이 이길 수 있는 싸움은 아니다.

노사 법치주의가 노동 탄압이고 노조 때리기일 뿐이라는 주장은 원리적으로나 현실 적합성 면에서 틀린 말이다. 노사관계도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 운용돼야 한다는 주장은 선진 노사관계의 기본 원리다. 이를 무시하면 강자의 위치에 있는 사용자만 좋을 뿐이다. 또한 윤석열정부는 법치주의 개혁에서 물러설 생각이 추호도 없을 것이며 국민도 민주노총의 전투적인 투쟁 문화에 질려 있기 때문에 이 싸움에서 그들이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노조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으로 추락한 지 오래다. 법치를 갖고 싸울수록 노조는 사회적으로 더 외면당할 것이다. 불법과 폭력을 제어하고 처벌하는 행위는 정부의 책무일 뿐이다.

노동계는 오히려 법치만 내세우고 대화와 타협에는 소극적인 정부의 태도를 비판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나 원리적으로 법치는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다. 노동법은 노동자 보호를 목적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사적 계약에 제한을 가하는 특별법적 지위에 있다. 지금 건설노조 투쟁의 목표는 법치 타파가 아니라 법과 제도의 개선이어야 한다. 일용직 채용 절차를 정비하고 중간 착취를 근절해 건설 노동시장을 현대화하는 법과 제도의 정비를 정부에 요구해야 한다. 양대 노총도 법치를 투쟁으로 돌파하겠다는 무모함이 아니라 법의 사각지대 해소를 요구하고 국민적 지지를 호소할 때다.

법치주의 개혁은 정부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노조를 큰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바라건대 노조가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크게 발전했으면 좋겠다. 노조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건강성을 지켜내는 기둥이자 기업의 지속 가능 성장을 촉진하는 자극제다. 길지 않은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전태일은 박정희 정주영과 함께 산업화의 영웅이자 민주화의 촛불이었다. 세상은 지금 대전환기를 맞아 국가와 기업, 기술과 제도 등 모든 것이 변화하고 있다. 혁신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노조도 예외일 수 없다. 저성장과 고령화, 인공지능(AI)과 로봇의 시대에 노조야말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통념과 달리 한국노총이 더 변화에 잘 적응해 왔다. 1987년 민주화로 큰 위기에 몰린 한국노총은 박종근과 박인상이라는 걸출한 리더십에 힘입어 점진적 혁신에 성공했다. 2000년대 중반 회계부정 사건 때도 과감한 자정 노력과 자기 혁신 선언으로 돌파한 경험이 있다. 민주노총도 지금은 법치를 받아들이고 대화와 타협을 요구할 때다. 양대 노총의 미래도 정치 투쟁이 아니라 혁신 경쟁에 달려 있다.

최영기(한림대 객원교수·전 한국노동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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