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나쁜 정책에 마침표 찍기

이상렬 입력 2023. 6. 1. 01:02 수정 2023. 6. 1. 0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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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렬 논설위원

국회가 또다시 재정준칙 법안을 처리하지 않았다. 한국 국회의 현주소다. 국회의 관심이 나라의 장래와 미래 세대에 있다면 이럴 수는 없다.

한국의 재정은 이미 국내외에서 경고장을 받은 상태다. 지난해 말 국가채무는 1068조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일반정부 부채 증가 속도가 선진 35개국 중 다섯 번째로 빠를 것으로 예상된다(IMF 통계). 지금 추세라면 생산가능인구(15~64세) 1인당 국가채무는 지난해 2914만원에서 2040년 1억504만원, 2050년 2억1955만원으로 증가한다(한국경제연구원 추계).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가 무섭게 복지 청구서를 내밀겠지만, 인구 감소로 국가 수입은 줄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 ‘빚 지옥’을 물려줄 것인가. 게다가 코로나19 같은 위기가 오면 또 재정을 동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미리미리 재정을 건전하게 유지해 둬야 한다. 재정준칙은 그래서 필요한 거다. 나라 살림(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의 3% 이내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지난해는 5.4% 적자). 정치권과 정부가 나랏돈을 허투루 쓰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다.

「 국회, 재정준칙 법안 또 처리 안해
재정 낭비·부동산 실정·탈원전 등
정권 바뀌어도 정책 후유증 깊어

이런 ‘나랏빚 제동장치’는 보편화돼 있다. 이미 105개국이 운용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도입한 적이 없는 나라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이다. 재정준칙 논의는 문재인 정권 후반에 시작됐다. 나랏빚이 급속도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상한선이라도 만들어 둬야 빚을 함부로 늘리지 못할 것이라는 사회적 공감이 컸다. 정권 교체 뒤 윤석열 정부가 본격 추진했다. 하지만 국회에선 감감무소식이다. 여당도, 야당도 적극적이지 않다. 여야의 ‘오월동주’ 이유는 하나다. 재정준칙이 있으면 나랏돈을 갖다 쓰는 선심성 정책을 펼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직전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재정준칙 처리에 앞장서 주길 기대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우선 결자해지 차원이다. 민주당 집권 시절 나랏빚이 400조원이나 늘면서 재정 건전성이 크게 흔들렸다. 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상식적이다. 또 하나는 국회 다수당인 민주당이 법안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법안이든 민주당이 결심해야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기대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민주당이 집권 시절의 방만했던 재정운용을 반성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는 실정(失政)을 심판한다. 선거에 패한 진영에선 그것으로 응분의 책임을 졌다고 여긴다. 그러나 국가라는 큰 틀에서 보면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잘못된 정책의 후유증은 정권이 바뀐 뒤에도 계속 사회를 골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례가 부동산 폭정이다. 징벌적 성격의 종합부동산세 폭탄, 임대사업자 퇴출, 계약갱신청구권(최대 4년)과 전·월세 인상 상한제(5%)를 담은 임대차 3법 등이 전세 품귀와 전셋값 급등을 불렀다. 애초 많은 전문가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3년이 흐른 지금은 ‘깡통전세’와 ‘역전세’, 전세 사기라는 악몽이 세입자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공포로 과학을 억누르고 밀어붙인 탈원전 폐해도 질기게 이어진다. 지난 5년간 탈원전 비용이 22조9000억원인데, 올해부터 2030년까지만 따져도 추가로 24조5000억원이 발생한다는 것이 서울대 원자력정책센터 분석이다. 탈원전 기조는 폐기됐지만 원전 건설 지연이나 취소, 조기 폐쇄는 계속 경제에 짐을 지우기 때문이다. 모두 국민 부담이다.

흔히 결과는 나빴을지 몰라도 의도는 착했다고 강변한다. 그것이 진실이라면 그런 정책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민주당은 노무현 정부에서 종부세를 도입했고, 다시 집권하자 종부세를 강화했다. 이제는 재정준칙을 외면하고 있다. 선거에서 이기든, 지든 나쁜 정책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책임이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미래가 있다.

이상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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