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평화만들기] 미·중 갈등 한복판의 한반도…남북 대화 채널 모색해야

정용수 입력 2023. 6. 1. 00:57 수정 2023. 6. 1.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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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 위성락 재단 사무총장,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왼쪽부터)가 한반도 포럼의 28년 활동사를 담은 『한반도 평화와 통일』 발간을 기념해 좌담회를 하고 있다. 장진영 기자

북한이 31일 군사정찰위성 발사에 실패했지만 한반도에 긴장이 몰아치고 있다. 올해로 정전 70주년을 맞았지만 남북관계는 여전히 냉탕과 온탕을 반복한다. 특히 최근 한반도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더해 미·중 갈등으로 요동치는 국제관계의 한복판에 서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이다. 이런 때 (재)한반도평화만들기(이사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와 재단의 세부 운영조직인 한반도포럼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1·2』(연세대 출판문화원·사진)를 출간했다. 남북 및 해외 학자들이 국내는 물론 중국과 북한 평양에서 진행한 학술회의 등을 통해 긴장 해소 방안을 모색했던 28년간의 기록 정리다. 옛것을 돌아보고 새것을 찾기 위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차원이다.

「 세계 질서 급변, 도전받는 평화
남북, 좌우 간의 톨레랑스 필요
자율적 민간 조직의 역할 중요
포럼 제시 비핵화 로드맵 주목

홍석현 이사장은 “최근 전개되고 있는 한반도와 세계 질서의 변화 양태는 기존의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도전”이라며 “북한의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해 진보와 보수의 정파를 초월해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출간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포럼 소속의 한반도 문제 전문가들이 책 발간의 의미를 짚어봤다.

평양 인민문화궁전서 연 포럼

『한반도 평화와 통일』

▶백영철 건국대 명예교수(전 한반도포럼 이사장)=한반도포럼의 전신인 한국통일포럼이 1995년 중국에서 남북, 해외 학자들을 모아 학술회의를 시작한 지 30년이 다가온다. 그동안 학술적인 논의와 함께 정책 대안도 제시했다. 20년 전인 2003년 평양의 인민문화궁전에서 개최한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가 포럼의 가장 큰 성과다. 북측과 신뢰가 쌓이면서 일궈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이었다. 95년부터 북측에선 학자들뿐만 아니라 통일전선부 실세였던 원동연 부부장, 남북적십자회담 북측 대표를 맡았던 최성익,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던 박영수 등 북한의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자신들이 참고할 만한 실질적인 논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비핵화를 꺼리던 북한의 한복판(평양)에서 6자 회담을 제안한 게 대표적이다. 때론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만, 실무협의에서 발표 내용을 조율하며 ‘지뢰’를 제거하고, 양측이 서로를 존중한 결과다. 훗날 북한 고위 당국자가 “어떻게 그런(6자회담) 아이디어를 냈나. 족집게”라는 얘기를 하더라. 또 “앞으로도 이런 행사를 계속하자”는 제안도 받았다.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발표한 ‘남북관계 3.0:한반도평화협력프로세스’는 진보와 보수 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집단 지성의 작품이다. 당시 여와 야, 진보와 보수 등 모든 정당에서 자신들의 공약에 반영했다. 특히 2015년 국회 남북관계특위와 공동으로 주최한 토론회에서 진영대결을 극복하고 초당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할 것을 여야가 합의하고 10개 항의 공동 선언문을 채택하는 결과도 있었다. 한반도포럼이 이념과 정파를 넘어,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인 대안을 제시한 결과이자, 남남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낸 사례였다. 이후 진전이 없지만 남북은 물론 국내 진보와 보수도 다른 이념과 신념의 주장이 아닌 서로를 인정하는 톨레랑스(tolerance·관용)가 필요한 때다.

이념·정파 넘은 집단지성 발휘

▶박명림 연세대 교수=한국에서 진영, 이념, 정당, 세대별로 가장 갈등이 심한 게 대북정책과 남북관계다. 그럼에도 포럼이 30년 가까이 이어오고, 더욱 확장할 수 있었던 건 (재)한반도평화만들기의 모체인 한반도포럼이 자율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고, 균형감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북측과 접촉하며 정부나 정권의 교체와 거리를 둔 자율적인 민간 조직이 필요하다는 점을 느꼈다. 남북뿐만 아니라 국제 축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는 점도 절감했다. 남북관계 개선에만 멈추지 않고 국제문제, 비핵화, 나아가 통일 프로세스 등의 노력과 성과를 역사적 기록으로 남기고자 했다. 스스로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이런 과거의 흔적이 향후 정책 수립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권만학 경희대 명예교수=1998년 중국에서 열린 회의 때다. 북한에서 보내온 참가자 명단에 박영수라는 사람이 있었다. 94년 판문점에서 서울 불바다 발언을 했던 인물이다. 회의 전날 서울 불바다 발언에 대한 사과를 요구했다. 북측에선 “공화국 사전에 사과는 없다”고 하더라. 박영수가 전쟁을 주장하는 주전파가 아니라면 설명을 해야 회의를 진행할 수 있다고 버텼다. 회의가 무산될 수도 있었다. 결국 박영수는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게 아니라 전쟁이 나면 평양뿐만 아니라 휴전선에서 서울이 멀지 않으니 서울도 불바다가 될 수 있다고 한 것”이라며 사실상 사과를 했다. 최근 한반도 상황이 긴박하다. 북핵과 미·중 갈등이 한반도에 합쳐진다면 ‘퍼펙트 스톰’(따로는 위력이 크지 않은 태풍 등이 다른 자연현상과 동시에 발생하면 엄청난 파괴력을 내는 현상)이 된다. 이를 막기 위해 남북 간 대화를 해야 하고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채널을 가동하는 게 시급하다.

▶박영호 전 강원대 교수=평양 학술회의가 열린 2003년은 이라크 전쟁으로 북한이 크게 위축돼 있었을 때다. 그럼에도 회의가 성사된 건 그만큼 신뢰가 쌓였다는 방증이다. 회의를 이어 오면서 김일성 주석 3년상 이후에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취임할 것이라거나 북한의 6자회담 수용 방침 등 북한 내부적인 움직임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진정성 있는 우리의 접근에 북한이 문을 연 것이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한반도포럼은 20년 전 2차 북핵 위기가 불거진 직후부터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비핵화가 물 건너갔다고 손을 놓아선 안 된다. 비핵화를 달성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북한의 핵에 대한 억제력을 갖추는 동시에 동결과 불능화, 완전 폐기 등 포럼이 줄곧 제시한 로드맵을 보완하고 이행해야 한다.

◆한반도포럼=진보와 보수, 노·장·청, 남북·해외 학자들이 참여하고 활동해온 학술 싱크탱크다. 1995년 1차 남북 해외학자 학술회의를 계기로 창립됐으며 한반도포럼으로 명칭을 변경한 뒤 2017년 (재)한반도평화만들기로 확대했다.

정리=정용수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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