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출로 떠받친 집값, 하락 땐 ‘부메랑’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5. 3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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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세 가속화…멀어지는 내집마련?

전세는 영어로도 ‘jeonse’라고 쓰일 만큼 한국에만 있는 제도다. 고려 시대(전당)에 뿌리를 두고 조선 시대(가사전당)를 거쳐 현재까지 이어졌다는 게 학계 정설이다. 다만 오늘날과 같은 전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은 건 1970년대 들어서다. 주택이 부족해 집값은 꾸준히 오르는데, 주택 금융은 턱없이 부족하던 시절이다.

시중 예금 금리가 10%대, 대출 금리는 20%에 육박하던 시절 전세는 ‘사금융’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목돈이 필요한 집주인과 월세 같은 고정비 부담을 줄이고 싶어 하는 세입자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다. 집주인은 목돈을 은행에 예금하거나 투자해 돈을 불리는가 하면, 가격이 오른 집을 팔아 시세 차익을 낼 수도 있었다. 부동산 상승기에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투자’가 집값 상승의 주범으로 꼽히고는 했다.

그래도 세입자는 일정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하면서 차근차근 내집마련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전세를 찾는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나 전세자금대출, 전세자금대출보증 같은 정부의 전세 우대 정책도 전세 제도가 자리 잡는 데 한몫했다.

하락기마다 터지는 전세 사고

저리 전세대출이 집값 밀어 올려

하지만 최근 불거진 전세 제도의 문제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거액의 보증금을 맡기는 사금융 성격이 강한 탓에 전세는 부동산 하락기마다 깡통전세, 역전세 문제를 겪는다. 매매가와 전세가 모두 빠른 속도로 하락하면서 2년 전과 같은 조건으로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면, 현금 없는 집주인은 집을 팔아도 기존 세입자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구조기 때문이다.

집주인의 도덕적 해이도 리스크다.

지난해 말부터 불거진, 임대사업자의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본금 없이 원룸이나 빌라를 수백 채씩 사들이거나 지은 뒤 전세 계약을 맺었다. 시세 차익을 낼 요량이었지만 지난해 기준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부동산 시장이 급랭하자 해당 주택들은 매매가가 전세금보다 낮아지는 ‘깡통주택’이 됐다. 이에 수백 가구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파산해 피해자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는 조직적인 범죄라는 정황마저 드러났다. 게다가 몇몇 ‘빌라왕’이 사망하면서 아예 보증금을 돌려받을 길이 사라진 피해자도 나왔다.

이런 깡통전세, 전세사기 피해는 집값과 전셋값이 치솟았다가 하락 전환하는 시기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2021년 하반기~지난해 초 정점을 찍었다가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이 본격화한 지난해부터 덩달아 하락하기 시작했다. 2021년 9월 6억2680만원이었던 서울 아파트 중위 전셋값은 지난 4월 기준 4억9833만원까지 떨어지면서 2020년 9월(4억6833만원) 수준으로 돌아갔다.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빌라의 평균 전세 가격 역시 하락세다. 지난해 4월 4억1972만원 수준이던 서울 빌라 중위 전세 가격은 올 4월 3억5050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1년 새 평균 전셋값이 16.5%나 내렸다.

실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이 시기에 전세보증 사고가 급증했다. 올 1~4월 전세보증 사고 금액은 1조830억원으로 4개월 만에 지난해 한 해 동안 발생한 사고 금액(1조1726억원)과 비슷하다.

이외에 자산이 부족한 서민에게 전세자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저리로 돈을 빌려주는 전세자금대출도 결과적으로는 부작용을 낳았다. 전세자금대출은 전세 보증금의 10%만 있어도 나머지 90%를 대출로 조달할 수 있는 구조다. 엄밀히는 임차 보증금의 80%까지 제공하지만, 빌라 같은 다세대주택은 매물을 내놓은 집주인이 시세를 20% 이상 부풀리면 어렵지 않게 100%까지 전세자금대출을 받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보금자리주택 정책은 청년·신혼부부에게 버팀목 전세대출 한도를 지속적으로 높여왔다. 그러다 주택 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전세 가격이 주택 가격을 넘어서는 깡통전세 현상이 속출했다.

전세 소멸? 현실적으로 불가능

빌라의 월세화…아파트 전세는 유지

이렇듯 전세 제도 허점이 드러날 때마다 시장에서는 전세 제도가 아예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심심찮게 나온다. 더군다나 이번에는 정부가 전세 제도의 전면적 개편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이참에 갭투자 수단으로 악용되는 전세 제도를 아예 없애야 한다는 폐지론까지 제기된다.

다만 전문가들은 정부가 나서서 전세 제도를 폐지하거나 통제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루아침에 제도를 없애면 집주인이 일시에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며 임대차 시장 전체가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전세 제도가 투자에 활용되면서 부작용을 낳은 것은 사실이지만 아예 없애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며 “전세 계약은 정부가 만든 제도가 아니고 개인 간 필요로 생겨난 거래인 만큼 전세를 필요로 하는 수요가 있다면 유지될 것이고, 적다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수요가 있어 시장에서 작동하는 전세 제도를 정부가 인위적으로 통제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며 “전세사기가 문제라고 해서 전세를 없애자는 식의 주장은 단순한 접근”이라고 말한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지적도 같은 맥락이다. 이 연구위원은 이어 “이미 국토교통부에서 제시한 전세사기 재발 방지 방안부터 시행하고 실행 과정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보완·수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덧붙였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5월 27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월세 → 매매’로 내집마련 시대 열릴까

주거비 부담만↑ 주택 공급 늘려 해결

물론 전세 제도를 손본다고 해도 최근 잇따른 전세사기 피해 여파로 당분간 전세 시장은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사고 위험이 적은 아파트는 전세가 유지될 테지만, 사기 피해가 집중됐던 빌라를 중심으로 ‘전세의 월세화’가 빨라질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실제로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적으로 발생했던 빌라는 전세 비중이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3월 서울 빌라 전월세 거래량은 2만8466건으로 집계됐다. 이 중 절반 이상(1만5246건·53.6%)이 전세 거래였다. 이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1년 이후 1분기 기준 가장 적은 수치다. 원룸 전세 비중도 급감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올해 3월까지 다방에 등록된 서울 원룸 전·월세 매물을 분석한 결과, 2021년 전세 비중이 전체의 36%, 월세 비중이 64%였던 것이 2023년에는 전세와 월세가 각각 27%, 73% 비중을 보였다.

김일수 DS투자증권 상무는 “전세사기 사태를 계기로 전세 수요가 급감하기도 했지만 사회적으로도 월세 비중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20~30대는 실질 소득 감소로 전세자금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전셋값이 급등해 부모 세대가 자녀 세대를 지원하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는 이유에서다.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가 대세가 되면, 부동산 시장도 다양한 변화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

우선 국민 생활비 중 주거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진다. 전세가 각광받았던 이유 중 하나가 주거비 안정이다. 실제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42개국 중 주거비 부담이 가장 낮은 국가다. 사실상 주거비가 ‘0원’인 전세 제도 덕분이다. 전세를 계약하면 주택 매매가의 70% 수준의 보증금만 준비하면 된다.

이마저도 전세자금대출로 상당 부분 저리로 충당이 가능하다. 그 뒤로는 별도의 주거 비용이 빠져나가지 않는다. 보증금은 어차피 계약이 끝나면 다시 받는 돈이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약간의 이자만 부담하면 된다. 한 번에 많은 돈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 부담에도 전세가 인기를 끌었던 이유다. 월세는 반대다. 보증금으로 준비해야 할 금액은 적다. 하지만 정해진 상당 금액을 주거비로 지불해야 한다.

이런 이유로 월세화가 진행될수록 내집마련 시기 역시 늦춰질 것으로 보인다. 월세 비중이 늘면 세입자는 주거비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주거비가 늘면 그만큼 내집마련 자금을 모으기 힘들어진다. 또한 전세가 줄고 월세 비중이 커질수록 내집마련 수단 중 하나인 ‘갭투자’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이런 변화에 맞춰 정부 역시 적절한 임대차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생애 주기에 맞춰 저렴한 임대 주택에서 살다 적절한 가격의 주택으로 갈아타 매매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하려면, 우선 값싼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높은 월세로 인한 주거비 비중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공임대주택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전세 제도 개편을 계기로 저렴한 공공임대주택을 많이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만하다. 특히 국공유지와 자금을 이용해 토지임대부주택 같은 값싼 중소형 주택을 대량 공급하는 것이 임대차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최선의 대책”이라고 설명했다. 서정렬 영산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의 월세화에 따라 다주택자들이 지탱하던 민간임대주택 시장은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물량 감소에 따른 혼란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공공주택 공급 확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내집마련 시기가 늦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공공뿐 아니라 민간주택 공급도 활발히 이뤄지도록 정책을 짜야 한다는 주장도 눈길을 끈다. “집값을 안정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집값이 폭등하는 지역에 집을 많이 지어 공급하는 것”이라며 “매매든 임대든 주택이 부족하지 않은 지역에서는 시장 가격이 안정되는 만큼, 주택을 충분히 공급해 안정적인 주거 사다리를 형성해야 한다.” 이은형 연구위원의 진단이다.

월세 시대…실수요자 대처는

공공임대 활용·신용 관리 필수

월세 비중 증가로 임대차 시장이 변화하면 실수요자 셈법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주거 비용 증가와 임대차 매물 감소는 실수요자 삶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 오랫동안 전세 제도가 보편화된 탓에 내집마련 계획에 전세를 산정하고 넣는 경우가 많다. 월세를 살다 대출 등으로 자금을 모아 전세를 마련한 뒤, 자가를 구매하는 게 일반적인 한국 중산층의 주택 마련 전략이었다. 사회 초년생이나 신혼 시기에는 전세로 사는 게 사실상 ‘필수’로 여겨졌다. 이제는 전세를 배제한 채 월세에서 매매로 넘어가는 전략도 생각해둬야 한다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 조언이다.

무엇보다 높은 주거비를 줄이라는 내용을 눈여겨볼 만하다. 월세에서 빠져나가는 주거비를 줄여야 돈을 모을 수 있고, 내집마련 시기가 빨라지기 때문이다. 이주현 월천재테크 대표는 “공공임대주택 자격 요건을 맞추는 등 다양한 준비를 통해 주거 비용 상승을 막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이자 비용을 낮출 수 있다면 주택 구매 자금을 마련해 매매 시기를 앞당기는 게 장기적으로 이익”이라고 강조했다. 한태욱 전 동양미래대 경영학부 교수도 “월세 시대가 오면 월별 실질소득이 줄어든 것 같은 심리적 착시로 주거 부담이 커질 것이다. 급여생활자의 경우 현재보다 더 체계적인 소비 패턴을 장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신용점수, 신용등급 관리 등도 지금과 다르게 ‘잘 준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월세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으면 보증금 규모는 줄어든다. 기존에는 월세를 납부하지 않으면 보증금에서 까는 형태가 일반적이었다. 외국처럼 내야 하는 보증금이 하락하면 임차인의 신용점수와 신용등급을 요구하는 집주인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진다. 월세 지급 여부를 보증금 규모가 아닌 신용도로 보고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태욱 교수 설명이다.

월세 시대가 안착하면 갭투자가 더 이상 활기를 띠기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전세 제도가 활성화됐을 때는 소액 갭투자를 활용해 이익을 남길 수 있었다. 그러나 월세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면 갭투자를 통한 이익 확보는 사실상 어려워지는 만큼 단순 투기보다는 실수요 기반의 부동산 투자 패턴이 안착될 가능성이 높다. “정부 입장에서는 전세사기와 역전세 논란을 피하기 위해 무리한 갭투자를 막으려 할 것이다. 임대인 1인당 전세보증 건수를 제한하는 등 파격적인 정책을 도입할 수도 있다. 갭투자 자체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소액 갭투자 의존을 낮추고, 입지와 미래 가치를 우선하는 투자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 이주현 대표의 주장이다.

전세사기 피해 대책 들여다보니
무이자 대출 확대, 정부가 경공매 비용 부담
근본적인 전세 제도 개편에 앞서, 정부와 국회는 ‘급한 불’인 전세사기 피해자 구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여야 합의 끝에 5월 25일 전세사기 피해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안 핵심은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정부가 경·공매 대행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근저당 설정 시점이나 전세 계약 횟수와 관계없이 경·공매가 이뤄지는 시점의 최우선변제금 대출이 가능하다. 최우선변제금 범위를 초과하면 2억4000만원까지 1.2~2.1%의 저리로 대출을 지원한다. 최우선변제금이란 세입자가 살던 집이 경·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야당이 요구해온 ‘보증금 채권 매입’은 정부 반대로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HUG가 전세사기 피해자의 경·공매를 대행해주는 ‘경·공매 원스톱 대행 서비스’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가 경·공매 비용의 70%를 부담한다.

특별법 적용 요건은 당초 정부·여당 안보다는 훨씬 넓어졌다. 전세사기 피해자 외에 ‘무자본 갭투기’로 인한 깡통전세 피해자, 근린생활시설도 지원 대상에 포함됐다. 이중 계약과 신탁 사기 등에 따른 피해도 적용 대상이다. 피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전세 대출을 상환하지 못하는 피해자를 위한 신용 회복 프로그램도 가동된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최장 20년간 전세 대출금 무이자 분할 상환이 가능하다. 상환 의무 준수를 전제로 20년간 연체 정보 등록·연체금 부과도 면제된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거주 중인 주택이 경매로 넘어갔을 때 우선매수권을 부여받는다. 경매로 주택을 낙찰받을 경우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피해자가 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을 경우 LH에 우선매수권을 양도한 뒤 LH가 공공임대로 활용하게 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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