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장관이 꺼내든 ‘전세 개편론’…미리 본 전세의 미래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반진욱 매경이코노미 기자(halfnuk@mk.co.kr) 2023. 5. 31.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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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명이 다한 전세 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개편 작업에 들어가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거 사다리의 중요한 지름길인 전세를 인위적으로 없애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

정부가 전세 제도 개편 방안을 밝히면서 부동산업계가 시끌시끌하다. 원희룡 장관은 최근 세종시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전세 제도가 수명을 다한 게 아닌가 한다. 역전세, 전세사기 문제가 엉켜 있는데 전체적인 임대차 시장에 대해 큰 틀의 공사를 한 뒤 행정권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세사기, 깡통전세 확산 등 잇따른 논란으로 더 이상 현재의 전세 제도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한편에서는 전세가 오랜 기간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해온 만큼 존치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원희룡 장관 역시 “전세가 해온 역할을 한꺼번에 무시하거나 전세를 제거하려는 접근은 하지 않겠다”며 한발 뺐다. 향후 전세 제도는 어떤 식으로 개편될까.

일러스트 : 정윤정 기자
전세 제도 개편론 왜

임대차법, 무분별한 전세대출 영향

정부가 전세 제도 개편론을 들고 나온 배경부터 살펴보자.

2020년 7월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 전월세신고제 등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시장이 혼란스러워진 영향이 크다. 전월세상한제는 전월세 가격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다. 또한 계약갱신청구권을 통해 세입자가 기존 2년에서 4년(2년+2년)으로 계약 연장을 보장할 수 있도록 했다.

임대차법 부작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임대 기간을 4년 동안 유지해야 하고 임대료도 5%밖에 올리지 못하면서 집주인들은 앞다퉈 전세 물량을 거둬들였다. 전세 매물이 급감하다 보니 전셋값은 급등했고, 아파트 전세를 구하지 못한 서민층이 값싼 빌라 시장으로 대거 이동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서울의 전체 주택 매매 건수 중 빌라 매매 비중은 64.6%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빌라 매매, 전세 가격이 동시에 뛰었고, 부동산 시장을 뒤흔든 전세사기 사태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무분별한 전세대출도 전세사기를 불러왔다는 분석이다. 전세금을 매매의 지렛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자 전세자금대출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 전셋값, 집값 상승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제로금리’ 시대가 열리자 전세자금대출은 정점을 찍었다. 전세자금대출은 2017년 48조6000억원에서 2021년 170조5000억원으로 3배 이상 급증했다. KB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전세자금대출 이용 가구 비율은 2012년 5.6%에서 2021년 12.2%로 2배 이상 높아졌다.

특히 정부가 2018년 매매가 대비 전세가의 80%까지 해주던 빌라 전세 보증을 100%로 상향 조정하면서 전세사기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전세자금대출이 갭투자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의미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는 달라졌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여파로 급등하던 매매가, 전셋값이 동반 하락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2021년 대비 3.35% 떨어져 2001년 이후 가장 큰 하락폭을 기록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직방 조사를 봐도 지난 4월 전국 아파트 전세가격지수는 2021년 4월 대비 11.8% 낮았다. 전셋값뿐 아니라 매매가도 동반 급락했다. 집값 상승세가 지속됐다면 집주인은 새로운 세입자에게 더 높은 전세금을 받아 보증금을 돌려주는 데 큰 문제가 없었을 테지만 실상은 달랐다.

결국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 깡통전세가 전국 곳곳으로 확산됐다. 역전세는 전세 시세가 기존 계약보다 하락했을 때 보증금을 돌려줄 여력이 없는 집주인이 떨어진 보증금 차액만큼 세입자에게 지불하는 방식이다.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자료를 분석한 결과 5월 1~24일 체결된 수도권 아파트의 전세 갱신 계약 4004건 중 1713건이 보증금을 낮춘 감액 갱신으로 나타났다. 전체 갱신 계약의 42.8%에 달한다.

집을 팔아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깡통전세도 덩달아 급증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국토교통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서울 부동산 거래 중 임대보증금이 집값의 80% 이상인 거래의 비율(깡통전세 위험 거래)은 임대차3법 시행 전(2017년 10월~2020년 7월) 8.7%에서 시행 후(2020년 8월~2023년 3월) 34.9%로 4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정리해보면 철저히 시장 논리로 형성돼야 할 전세 가격, 계약 기간을 정부가 강제로 규제하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났고, 결국 전세 제도 개편론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정부가 전세 제도 개편 방안을 밝히면서 부동산업계 논란이 뜨겁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공인중개사사무소. (매경DB)
전세 제도 개편 방안 들여다보니

임대차법 대대적 수정 나설 듯

향후 전세 제도는 어떤 식으로 개편될까.

시장에서는 당장 임대차3법부터 손볼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본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9월부터 주택임대차법 개선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올 하반기부터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계획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전월세 임대료 인상률을 ‘직전 계약 대비 5% 이하’에서 ‘10% 안팎’ 또는 ‘주변 전셋값의 일정 수준’ 내에서 협의할 수 있도록 조정하는 안이 유력하다.

이미 임대차3법 중 하나인 전월세신고제는 손을 댔다. 정부는 전월세신고제의 계도 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 전월세신고제는 보증금이 6000만원을 넘거나 월세가 30만원을 초과하면, 계약 체결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의무적으로 계약 내용을 신고하도록 한 제도다.

신고 의무를 어기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정부는 2021년 6월부터 전월세신고제를 시행하면서 1년간의 계도 기간을 운영했고, 새 정부 출범 후 임대차3법 개정 요구가 커지자 계도 기간을 1년 연장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사태를 막기 위해 ‘에스크로 제도’를 전격 도입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에스크로 제도는 부동산을 거래할 때 이해관계 없는 금융사 등 제3자가 개입해 안전 결제를 보장하는 제도다. 기존처럼 집주인이 아닌 제3기관에 전세보증금을 맡겨놓는 개념이다.

지금까지는 집주인이 세입자 보증금을 전세 계약 기간에 활용해도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일부 집주인은 보증금으로 무분별한 갭투자에 나서다 전세 만기가 도래했는데도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면 전세사기 사태를 방지하고 전세보증금이 갭투자에 흘러가는 부작용도 차단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에스크로 계좌 제도를 도입할 때 보증금의 일부라도 예치하는 집주인에게 세금 감면 등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해볼 만하다”고 전했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전세보증금을 일종의 ‘무이자 대출’로 인식하는 집주인 반발이 변수다. 집주인이 에스크로 제도를 기피하면 자연스레 반전세, 월세 비중이 높아져 세입자 주거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임대인은 전세금을 받아서 활용하는 것이 목적이고, 임차인 입장에서 전세금 보호는 기존 전세보증보험 같은 제도를 적용해도 되는 만큼 에스크로를 전면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조건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일단 전세사기 예방 대책으로 전세보증보험 가입 조건을 전세가율 100%에서 90%로 조정했다.

더불어 전세보증보험 대상도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전세보증보험 대상은 현재 수도권 7억원, 이외 지역은 5억원 이하로 국한돼 있지만 이 금액 기준이 완화되면 보다 많은 주택이 수혜를 입을 수 있다. “금융기관이 전세대출을 내줄 때 정부 보증을 믿고 허술한 심사를 진행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세대출 보증 비율도 낮춰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한목소리다.

한편에서는 아예 전세보증금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온다. 자기자본 없이 보증금으로만 주택을 매입하는 ‘무자본 갭투기’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전세보증금이 집값의 70%를 넘지 못하도록 보증금 규모를 제한하는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하지만 전세보증금 규모를 강제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 만큼 현실성이 낮다.

전세 제도 부작용을 줄이고 ‘월세 시대’ 안착을 위해 월세 소득공제를 확대하는 등 월세 인센티브를 강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윤재호 메트로컨설팅 대표는 “월세 인센티브를 높이면 세입자들이 스스로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게 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 정부의 인위적인 개입을 줄이면서 자연스럽게 전세를 월세 수요로 전환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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