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EU ‘경쟁 제한’ 딴지에 합병 난기류…아시아나 인수 먹구름 낀 대한항공

김경민 매경이코노미 기자(kmkim@mk.co.kr) 2023. 5. 3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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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갈수록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경쟁 제한 우려를 내비치면서 합병에 ‘빨간불’이 켜졌다.

美 법무부 양 사 합병 막으려 소송?

EU도 기업결합 ‘부정적’

미국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법무부는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막기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한국, 미국을 오가는 여객, 화물 운송 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상황이 심상찮자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은 최근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원유석 아시아나항공 대표와 함께 미국 법무부 차관을 면담한 것으로 전해진다. 면담에서 미국 법무부는 이번 합병이 대한항공의 시장 독점을 심화시킬 것이라며 독점을 해소할 대체 항공사를 찾아오라고 요구했다는 후문이다.

미국 정부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이 운항하는 한미 노선 13개 중 5개(샌프란시스코·호놀룰루·뉴욕·LA·시애틀) 노선에서 독점이 커진다고 주장한다. 인천-샌프란시스코는 유나이티드항공, 인천-호놀룰루는 하와이안항공이 운항하지만 점유율이 각각 20% 수준에 그친다.

대한항공은 미국 측에 한미 노선 이용객이 대부분 한국인이라 미국 소비자에게 영향이 없고, 다른 경쟁 항공사가 운항하지 않는 것은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미국 법무부로부터 합병 승인이 어렵다는 내용을 접수한 바 없고 소송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EU 경쟁당국이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관련 중간심사보고서를 발부하며 부정적 의견을 제시한 걸 두고서도 시끌시끌하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5월 17일(현지 시각) 중간심사보고서를 통해 두 항공사 합병에 이의를 제기했다. 양 사 합병이 한국과 프랑스,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4개 노선에서 여객 운송 서비스 경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EU는 한국과 유럽 전체의 화물 운송 부문에서도 경쟁 제한 우려가 있다고 봤다. EU 집행위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유럽경제지역(EEA)과 한국 사이의 여객, 화물 운송을 두고 경쟁하고 있다. 합병하면 해당 노선에서 가장 큰 여객, 화물 항공사가 되는데 소비자들의 대체 항공사가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중간심사보고서는 EU 집행위 심사 규정에 따라 진행되는 필수 절차다. EU 반독점법에 위반하는 사안이 있다고 판단할 경우 관련 기업에 통보한다. EU는 지난 2월부터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2단계 심사를 진행 중인데, 오는 8월 3일 최종 승인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EU가 경쟁 제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더라도 국내 항공 산업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양 사가 추가로 중복 노선 운수권과 슬롯(특정 시간대 공항을 이착륙할 수 있는 권리) 일부를 넘겨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대한항공은 영국으로부터 기업결합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아시아나항공의 인천~런던 노선 운수권과 슬롯을 영국 항공사 버진애틀랜틱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런던 히스로공항에 주당 각각 10개, 7개 슬롯을 보유 중인데, 이 중 7개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에 EU가 우려를 내비치면서 합병 승인을 받기 위해 대한항공이 또다시 일부 운수권, 슬롯을 유럽 등 외국 항공사에 넘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U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주요 4개 노선(파리, 프랑크푸르트, 로마, 바르셀로나) 점유율은 60%에 달한다. 대한항공은 오는 6월 말까지 EU에 경쟁 제한 우려 해소 방안이 담긴 시정조치 내역을 보낼 계획이다.

배세호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으로 중복 노선 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지만 EU, 미국, 일본 승인 과정에서 슬롯, 운수권의 추가 반납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미국, EU 등 주요국 경쟁당국 중 한 곳이라도 승인하지 않으면 합병이 무산된다. 기업결합 심사 대상인 14개국 중 한국을 포함한 11개국은 승인을 마쳤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결합은 EU, 미국, 일본 승인이 남았는데 일본은 대체로 EU와 미국 결정을 참고해 결론을 내린다. 카드를 쥐고 있는 EU, 미국을 둘러싼 기류가 불안한 만큼 대한항공 입장에서는 마냥 넋 놓고 기다릴 수는 없는 처지”라고 말했다.

양 사 실적도 불안

대한항공 이익 감소, 아시아나 파업 위기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 합병이 지연되는 가운데 두 회사를 둘러싼 분위기도 좋지 않다.

코로나19 시절에도 호실적을 거뒀던 대한항공은 올 들어 실적이 불안한 모습이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오른 3조1959억원을 기록했지만, 영업이익이 47% 감소한 4150억원에 그쳤다. 코로나 엔데믹으로 해외여행 수요가 늘면서 여객 매출은 급증했는데, 글로벌 경기 둔화로 화물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1% 감소했기 때문이다.

아시아나항공 내부도 뒤숭숭한 것은 마찬가지다.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가 최근 연 10%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김포공항 국제선 게이트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코로나19 기간 전 직원이 유급, 무급 휴직으로 급여의 절반을 반납하고 버텨왔다. 2021년과 지난해 1조20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이익에도 산업은행 눈치만 보며 4년간 총 2.5% 인상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항공화물 수요 증가로 매출 5조6300억원, 영업이익 7335억원을 달성했다. 앞서 2021년에도 455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대한항공은 지난해 10% 임금 인상에 합의했고, LCC 티웨이항공도 기본급을 13% 올렸다. 그런데도 아시아나항공은 호실적에도 동종업계보다 임금이 낮을 뿐 아니라 물가 상승률조차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 노조 주장이다. 그럼에도 양측의 의견 차이가 좁혀지지 못하자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는 지난 5월 10일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조정을 신청했다.

해외 경쟁당국 승인이 지연되면서 대한항공의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안갯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대한항공 제공)
아시아나항공 안팎이 불안한 상황에서 EU나 미국이 어깃장을 놔 기업결합이 불발되면 당장 아시아나항공은 생존 위기에 처할 우려가 크다. 올 3월 말 기준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은 1671.2%로 지난해 말보다 189.2%포인트 늘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은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에 3조6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지원한 만큼 산업은행 책임론까지 불거지는 양상이다.

“양 사 합병이 불발되면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한 산업은행의 공적자금 회수가 여의치 않게 되고 아시아나항공은 파산 위기에 처할 수 있다. 노선 운수권, 슬롯 관련 협상을 원만히 진행해 합병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대한항공 스스로도 글로벌 항공사 도약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위기에 빠져들 수 있다.” 항공업계 관계자들의 우려 섞인 진단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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