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 55년 만에 개명 나섰지만…

명순영 매경이코노미 기자(msy@mk.co.kr) 2023. 5. 31.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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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안 내걸고 초심을 외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한국경제인협회’로 이름을 바꾼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최근 내놓은 ‘전경련 혁신안’ 중 하나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55년 만의 개명을 뒷받침할 만큼 변화를 이끌어낼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이 5월 18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전경련 제공)
개명 뒤 역할 변화 예고

젊은 기업 유치 공언도

김 회장 직무대행은 “전경련이 정부 관계에 방점을 두고 회장·사무국 중심으로 운영했던 과거의 역할과 관행을 통렬히 반성한다”며 혁신안 발표를 시작했다. 시민 사회에 집중하지 않고 정부 관계에 치중한 결과, 박근혜정부 당시의 국정농단이 발생했다는 반성이었다.

변화의 출발점은 개명이다. 전경련에서 한국경제인협회로의 ‘회귀’다. 한국경제인협회는 1961년 전경련이 설립될 당시 사용했던 이름이다. 이후 1968년 이름을 ‘전국경제인연합회’로 바꿨다. 회원 수 13명으로 시작한 단체가 160여개사로 늘어나며 회원과 활동이 사실상 전국권으로 확대된 데 따른 조치였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옛 이름으로 돌아오는 것. 김 회장 직무대행은 다시 한국경제인연합회로 이름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혁신안에는 조직 변화 구상도 담았다.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 변신하겠다는 것. 정치적 행보보다 회원 서비스에 집중하고, 회원이 필요한 정책을 제안하는 단체로 탈바꿈하겠다는 얘기다.

또한 업종 이슈별 위원회를 구성해 기업 참여를 활성화한다. 정책 건의도 위원회 중심으로 진행한다. 회원사에 대한 물질적·비물질적 부담을 심의하는 윤리경영위원회도 설치하기로 했다.

현재 11명인 회장단도 확대한다. 산업 흐름이 바뀌고 기업인도 젊어진 만큼 시대 흐름을 반영하겠다는 취지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포털(네이버·카카오) 같은 신생 대기업도 함께할 수 있도록 젊은 층을 많이 끌어들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숱한 개혁안 공염불로

존재 가치 의구심 여전

하지만 전경련 혁신안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최대 과제로 꼽히는 4대 그룹의 재가입과 차기 회장 선임과 관해 구체적인 언급이나 방향 제시가 없었다는 점부터 그렇다.

4대 그룹 재가입은 전경련 ‘명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년 LG를 시작으로 현대차, 삼성, SK 등 4대 그룹은 모두 전경련을 탈퇴한 상태다. 탈퇴 전만 해도 4대 그룹은 전경련 회비의 70%를 분담해왔다. 비용으로 보나 위상으로 보나, 4대 그룹이 전경련에 합류하기 전까지 힘이 실린다고 보기 어렵다.

김 회장 직무대행은 “전경련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조직으로 거듭나면 4대 그룹뿐 아니라 모든 기업이 전경련에 가입하고 싶어 할 것”이라며 “전경련이 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4대 그룹의 판단을 기다려보겠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일각에서는 전경련과 한경연 통합에 발맞춰 4대 그룹의 재가입 논의가 본격화하지 않겠느냐고 관측한다. 한경연 회원사인 4대 그룹이 총회에서 전경련과 한경연 통합에 찬성표를 던지며 전경련 복귀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4대 그룹은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전경련 혁신이 이뤄지면 재가입을 고려하겠다고 밝혀왔지만, 이번 혁신안에 대한 반응도 미온적이다. “실제로 지속 가능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는 평이 주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혁신안이 딱히 새로울 게 없다. 2016년 미르·K스포츠재단 후원금 모금 사건 이듬해 쇄신안을 내놨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전무(全無)하다시피 했다. 이번에는 ‘한국기업연합회’로 명칭을 바꾸고 사업, 회계 등의 투명성을 높이겠다고 했지만 이전과 비교해 눈에 띄게 달라진 내용은 없다. 한경연을 흡수, 통합해 싱크탱크형 경제 단체로 전환한다는 것도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됐다 유야무야 사라진 혁신안 중 하나다.

윤리헌장도 늘 들어왔던, ‘기시감’이 있다. 전경련은 1996년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협력, 지역 사회 발전 기여 등을 담은 기업윤리헌장을 발표했다. 1999년에는 정치권이나 정부와 건전하고 투명한 관계를 유지하고 기업윤리위원회를 매년 4회 이상 개최한다는 내용으로 더 강화됐다. 그러나 이후 국정농단 사태 등은 이런 장치가 무용지물이었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신사업, 젊은 세대 기업인까지 포함해 회장단 규모를 늘리겠다는 계획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전경련은 2013년 “경제계 대표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로 네이버 등 포털 업체를 언급하며 회원사를 늘리고 회장단을 새로 선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당시에도 다수 기업을 정해 접촉했지만 고사한 곳이 많았다.

전경련 가입 없이도 활동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점 역시 4대 그룹이 가입을 주저하는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4대 그룹이 지난 6년간 전경련 역할 없이도 어려움 없이 활동을 해왔는데 지금 당장 재가입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며 “전경련이 거창한 혁신안을 내놓고 구태를 반복한 ‘도돌이표’ 행태를 벗어나 존재 가치를 스스로 입증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김 회장 직무대행 체제에서 ‘재계 맏형’ 전경련을 이끌 수 있는 무게감 있는 차기 기업인 회장을 선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허창수 전 전경련 회장의 경우 후임자를 찾지 못해 12년간 자리를 지킨 바 있다. 이제 다음 회장 선임이 실질적 변화를 알릴 신호탄이 될 수 있다.

6개월로 임기를 못 박아뒀으나 정치인 출신 김 회장 직무대행이 정치와 거리를 둬야 하는 전경련 수장 역할을 맡은 것도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2월 선임된 김 직무대행 임기는 약 3개월이 남았지만, 아직까지 전경련은 차기 회장 선임에 대해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재계에서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이 거론된다.

다만, 4대 그룹이 최근 전경련 행사에 참여하는 등 친(親)전경련 행보를 보인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는 지난 3월 전경련과 게이단렌이 주최한 ‘한일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했다. 지난 4월 미국에서 전경련 주최로 열린 한미 재계 행사에도 4대 그룹 총수가 모두 자리를 함께했다.

정의선 회장은 특히 5월 25일 전경련의 국민소통 프로젝트 ‘갓생(God生) 한 끼’에 참여해 긴밀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보였다. 갓생 한 끼는 한국판 ‘버핏과의 점심’으로, 정 회장은 MZ세대 30명과 점심을 함께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1호 (2023.05.31~2023.06.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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